대공의 난

정의성 지음|현대불교신문사 펴냄|2만 2천원

불법이 꽃피던 통일신라, 그러나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더욱 밝게 열리듯이 법멸의 월식 기간이 있었으니, 그 시대를 건너야 했던 왕과 여왕, 화랑과 고승들, 그리고 천하제일을 다투는 검객들의 사랑과 운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오늘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이 소설은 통일신라시대 중기에 일어난 대공의 난을 다루고 있다. 모름지기 소설은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작가 정의성의 <대공의 난>은 그 첫째를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 소설은 암흑의 시기를 통과하는 청춘 남녀들의 사랑과 비극이 폭염 속의 단비 같고, 장마 속의 햇살 같은 신들린 작가의 손에 의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절묘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삼국유사의 불교관을 토대로 삼국사기, 신당서, 구당서, 책부원귀, 제왕운기, 동국여지승람, 경상도지리지, 화랑세기 등등의 사료에 근거해 쓰였다. 특히 소설에 나오는 불교용어를 포함한 신라시대 당시의 용어와 배경을 페이지 하단에 각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저자는 “소설 본연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를 방해할 여지가 있다. 가볍고 재미나게 읽으려는 독자들에게는 사족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그 픽션의 박진감을 느끼기 위해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충담이 기파의 가슴서 천을 들어내자, 벌어진 기파의 상처 사이사이로 피가 다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스님은 곱게 빻아진 뼛가루를 숟가락으로 떠서 기파의 상처 속에 꼼꼼히 뿌려 넣었다. 그러자 뼛가루가 상처에 녹아들면서 신기하게 피가 멎기 시작했다.

“저는 출가 전 어린 시절에 사냥을 좋아해서 무수히 많은 동물들을 사냥했습니다. 또 제가 쏜 화살에 상처 입은 짐승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가지고 노는 잔인한 행동도 즐겨 했지요… 추수가 끝난 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사냥을 나가는데 논둑 가에 있는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마구 울어대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개구리를 모조리 잡아 버드나무가지에 꿰어버렸지요. 서른 마리쯤 되었습니다. 나뭇가지에 꿰어져 버둥거리는 개구리들을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서 그대로 연못 속에 던져버리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저는 사냥을 하러 다시 그 논둑을 지나게 되었지요. 그런데 또다시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득 예전에 장난쳤던 개구리들이 생각나서 연못에 가보니… 글쎄, 개구리 서른 마리가 버드나무가지에 꿰인 채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광경은… 너무도 충격이었습니다… 저의 치기어린 장난으로 인해 그 긴 시간을 고통 속에 지냈을 개구리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제 자신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공이 순식간에 몸을 밀어 넣으며 소도로 융의 검을 내리누르는 동시에 머리위에 든 대도를 내려베었다. 융이 살짝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대도가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다. 대공은 그치지 않고 전진하며 쌍도를 연속으로 뻗어 융의 몸통을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융이 그때마다 뒤로 물러나며 다막검을 중심에 놓고, 들어오는 칼날을 살짝 살짝 옆으로 걷어내는 바람에, 대공의 공격은 매번 손가락 한마디 정도 좌우로 빗나가고 말았다. 대공이 다시 몸을 밀어 넣으며 대도로 융의 목을 찔러 들어가는 순간, 융의 다막검이 대공의 대도를 비비듯 스치면서 중심을 빼앗아 비껴내고 대공의 목을 되찔러 들어갔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반격에 화들짝 놀란 대공이 황급히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칼날을 피했으나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버렸다.

만월은 말을 멈추고서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강둑에 앉아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기파도 그 옆에 앉아 만월의 시선을 따라 흐르는 강물을 응시했다. 강물은 누가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석양을 받아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고, 간혹 물고기가 퐁당 튀어 올랐다. 한동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강물만을 응시하던 만월은 가만히 기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둘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문두루비법은 불력이 대단한 고승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펼쳤다간 목숨을 잃게 되어 있어. 언덕을 만들려면 다른 땅의 흙을 퍼 옮겨야 하듯이, 비법이 시전되면 시전자의 법력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게 되어있느니라. 일단 비법이 시작되면 마음대로 멈출 수도 없을뿐더러, 법력이 바닥나면 계속해서 생명력을 끌어당기기 시작하지. 그래서 불력이 대단히 충만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죽게 되느니라. 사조께서는 세월이 지날수록 승려들의 법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그래서 당신 이후로 비법을 감당해낼 만한 승려가 나오기 힘들 것이란 걸 염려하셨느니라.”

불교TV 대표이사 석성우 스님은 추천사를 통해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갖는 비통일적인 특성들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결합, 재창조되어 역사 속의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눈앞에 되살려냄으로써 특별한 재미와 함께 인생사의 오묘한 이치를 사유하게 한다”며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방대한 자료조사, 검술과 진법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갈고 닦은 내공이 작품속에 녹아 있어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박진감을 선사하면서, 여화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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