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전통의식 가운데 재(齋)를 지내는 풍습은 매우 특이한 의미를 가지고 행해지는 의식(儀式)이다. 재는 범어 우포사다(Uposadha)를 번역한 말인데 본래의 뜻은 신(身)·구(口)·의(意) 삼업을 정제(整齊)하여 악업이 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전어(轉語)가 되어 식사(食事)를 뜻하는 말이 되어 정오를 넘기지 않는 식사를 재라 하였다. 그러다가 또 뜻이 조금 달라져 법회 때 대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재라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도 재라 하게 되었다. 불공을 드리는 것을 재를 올린다고 하였으며, 또 요즈음 와서는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것을 재라고 하게 되었다. 49재나 천도재, 수륙재 등은 흔히 쓰는 말이다. 천도(薦度)는 천혼(薦魂) 또는 천령(薦靈)이라고도 하는데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부처님이나 보살들에게 재를 올려 영가(靈駕: 영혼)들로 하여금 극락등 부처님 세계에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주로 망인을 두고 천도한다 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제도(濟度)한다고 말한다. 재를 지내는 것이 중생회향(衆生廻向)에 해당한다. 중생이라는 말은 부처와 상대되는 깨닫지 못한 불각의 상태에 있는 범부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죽은 이를 두고도 중생이라 한다. 그러니까 육체의 목숨이 붙어 있는 살아 있는 상태의 생물학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다. 영가를 천도하는 것도 중생회향이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지내는 재다.

그런데 죽을 사람이 살아남을 사람을 위하여 재를 지내주는 사례가 있었다. 이를 우치재(愚癡齋)라고 한다.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을 일깨워 준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치하고 몽매하여 지혜의 눈이 열리지 못한 사람, 세속적인 정에 얽매여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을 오히려 죽을 사람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기 위하여 지내는 재이다.

이 우치재를 지낸 유명한 스님이 바로 중국 선종 가운데 조동종을 개창한 동산 양개(洞山良价807~869) 스님이다. 우리나라 고려대장경에만 수록되어 있는 『조당집(祖堂集)』에 의하면 어느 날 동산 스님이 법상에 올라가 법문을 하다가 갑자기 대중에게 지금 바로 자신이 열반에 들겠다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에 깜짝 놀란 대중이 너무나 당황하여 울음을 터뜨려 법당 안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숨을 거두었던 양개 스님이 얼마 후 다시 깨어나 대중을 조용히 달랬다는 것이다. 자신이 입적하는 것을 슬퍼하거나 울음소리를 내지 말라 하였다. 대중이 조용해지자 스님은 다시 숨을 거두었다. 얼굴빛이 다시 사색이 되는 것을 보고 대중이 다시 울음을 토했더니 한참 만에 양개스님이 다시 깨어나 하는 말이 “안 되겠다. 내가 오늘 가려 했더니 대중이 소란을 피우니 할 수 없이 입적하는 날을 일주일 연기해야 되겠다.”

이렇게 말하고 원주를 부르더니 저자에 가서 재를 지낼 시장을 봐 오라고 명을 하였다. 이리하여 일주일 동안 재를 지내며 대중과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양을 하게하고 양개 스님은 일주일 후에 열반에 들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치재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다.

종교적 신앙이 깊은 사람은 죽음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부처님은 사성제 법문에서 태어남도 괴로움이요, 죽음 또한 괴로움이라 하였다. 그러나 생사를 초월한 사람은 괴로움을 괴로움이 아닌 것으로 전환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원효스님이 사복이와 함께 사복이 어머니 장례를 치루면서 했다는 영가법문 이야기가 있다.

“태어나지를 마시오, 죽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죽지를 마시오. 태어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莫生兮也 其死也苦 莫死兮也 其生也苦)

그런가 하면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지혜가 으뜸이었던 사리불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도 아니하고 죽는 것을 원하지도 아니한다. 품팔이가 품삯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내게 올 인연을 기다릴 뿐이다. 나는 사는 것을 원하지 않고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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