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아래에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하늘 위·아래에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 승인 2017.11.03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자유 향한 태자의 여정 ‘팔상탱’
석가모니부처님이 탄생하는 장면, 〈석가탄생도〉 조선전기 15세기 추정, 현재 일본 후쿠오카 본악사本岳寺 소장

유사 이래, 어떤 영웅 또는 제왕의 일대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구현되었을까요? 팔상탱(또는 팔상도)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불화를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묘사한 것을 불전도(佛傳圖)라고 합니다. 불전도의 전통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현재까지 매우 유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성행한 지역은 인도에서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는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사아 지역까지 참으로 넓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설한 것은
육신 아닌 완전한 존재의 탄생
我는 ‘깨달음의 覺性’을 의미해
부처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상동


싯타르타 태자의 ‘깨달음 여정’
부처님 열반 이후 약 500년 동안은 그 어떤 형상으로도 부처님을 조성하지 않았기에 이를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라고 합니다. 부처님을 신성시하여 함부로 묘사하지 않았고 또 무언가 상을 만들어 우상화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본질적인 가르침에도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을 형상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염원에 따라, 기원후 1세기부터 간다라 지방과 마투라 지방에서 각기 다른 양식의 부처님 형상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간다라의 불전도는 탄생·성도·설법·열반의 네 가지 장면을 위주로 조성됩니다. 그 후 대승불교가 일어남에 따라 법신·보신·응신의 삼신(三身)의 불신설이 성립되고,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는 여덟 장면의 팔상탱가 정립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전기 〈석보상절〉의 편찬을 계기로 팔상탱의 내용이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의 8폭으로 확립됩니다.

팔상탱의 첫 장면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 마야부인이 태자를 잉태하는 태몽을 꾸는 장면입니다. 속세의 차원에서 보면 ‘마야부인의 꿈’으로 표현되지만, 법계의 차원에서 보면 ‘보살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왕림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첫 장면의 제명이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이란 뜻에서 ‘도솔래의상’입니다.

하얀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태에 들어가시는 이 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전생의 모습으로, 세세생생 동안 공덕을 쌓아 도솔천에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래 세상 중생들의 고통을 보시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태자로 몸 받아 나시게 됩니다.

팔상탱 두 번째 화폭은 ‘비람강생도’인데,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입니다.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채색 불화의 비람강생도는 15세기 조선 전기의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유출되어, 일본 후쿠오카 혼카쿠지(本岳寺)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전례 없이 아름다운 이 명작은 ‘석가탄생도’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야부인의 룸비니동산의 외출, 무우수(아쇼카 나무) 아래에서의 출산, 사방 칠보 걸음과 석가모니 최초의 사자후, 구룡 욕불(浴佛 또는 灌佛, 탄생불을 목욕시키는 의례), 정반왕의 친견 행차 등 싯타르타 태자의 탄생과 상서로운 징조가 한 폭에 장엄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처음 나시어 잡는 것 없이 사방 일곱 걸음씩 걸으시니, 자연히 연꽃이 땅에서 올라와 발을 받들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사자의 목소리로 이르시되, ‘하늘위 하늘 아래 나만 홀로 높구나. 삼계가 다 수고로우니 내가 편안하게 하리라’하니, 곧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 대천 세계가 모두 밝았다. 〈석보상절(釋譜詳節)〉

금빛 몸체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고,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와 아래에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의 사자후(獅子吼)를 외쳤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하신 첫 말씀이기에 이 문구의 의미는 자못 큽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탄생 부처님을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는 장면, 도판01의 부분.

천상천하 유아독존!
불교는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말합니다. ‘무아’라면서, ‘나만 홀로 존귀하다’니요? 실제로 탄생게의 ‘아(我)’를 개체적 자아(自我)로 단정 짓고, 탄생과 관련한 다양한 상서로운 징조들을 시대적 윤색 또는 역사적 허구로 단정 짓는 해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승적 관점에서의 불신관에서 본다면, 여기서 지칭하는 ‘아(我)’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아’와 같은 맥락입니다. 법신과 열반의 덕체(德體)로서의 ‘여여(如如)한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다음에 연달아 나오는 문구는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我當安之)”입니다. 그러니까 청정법신(淸淨法身) 또는 반야지혜(般若智慧)로서의 ‘내(我)’가, 그렇지 못한 번뇌와 무명 속의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탄생게’의 시원이 되는 역사적 석가모니의 생생한 증언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의 전형적인 탄생게의 원형으로 지적되는 대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세상의 제일 앞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 위이다. 나는 세상의 최고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팔리어本 〈대본경(마하빠다나-수따)〉)
“천상과 천하에서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제도하려 하노라. (중략) 마치 사자가 걸으면서 두루 사방을 살핌과 같이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을 걸은 사람의 사자도 그러하였다. (중략) 양족존은 이 세상에 나오실 때에 고요하고 편안하게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고 큰 소리로 외쳤나니 마땅히 나고 죽는 고통을 끊으리라.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날 때 짝할 이 없는 부처와 같고 스스로 나고 죽는 근본을 보아 이 몸은 마지막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라.” (한역本 〈대본경〉)

또 깨달음을 얻고 녹야원으로 첫 설법을 가던 도중에 하신 말씀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한 사문이 그의 안색에 광명이 넘치므로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너의 스승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니 부처님 대답하시길,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렵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자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자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 이루어 고요하다./ 이제 법을 설하려 가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의 북을 울려라〈율장〉”라고 하셨답니다.

여기서 ‘나’란 ‘깨달음의 각성(覺性)’ 그 자체를 가르킨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완전하게 ‘자각(自覺)된 마음’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몸으로서의 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않습니다. 이는 결국 부처님 마지막 유언인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과 상통합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진리)을 등불로 삼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라. 이 밖에 다른 그 무엇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

즉, 부처님은 탄생 직후, 득도 직후, 입멸 직전의 중요한 시기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숫타니파타〉에는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나를 스스로 등불삼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나옵니다.

불교상식 -'석가모니 부처님' 존명의 뜻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로 약 2,500년 전에 인도 북부 지방의 사캬 부족의 태자로 태어났다. 사캬무니란 사캬 부족의 존경할 만 한 자 또는 성자라는 뜻이다.

‘사캬’ 족의 왕자가 ‘붓다’가 되었다하여, 존자(尊者, 높으신 분)라는 의미의 ‘무니’가 존칭으로 붙게 되었고, 이를 음사하여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된 것이다. 즉 석가모니, 석가세존(釋迦世尊) 또 이의 약칭으로서의 석존(釋尊), 모두 같은 의미이다. 사캬의 뜻은 ‘지극히 어질다’라는 뜻으로 능인(能仁)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성(姓)인 고타마는 ‘최상의 소를 가진 자’라는 뜻이고, 싯다르타는 ‘목적을 성취한 자’라는 뜻이다. 싯다르타는 태자의 신분으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존재와 존재의 욕망이란 것은 생로병사의 고통 앞에서 부질없음을 알고 29세의 나이에 출가를 한다. 그리고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그 후로 45년간 중생 구제를 위한 설법을 하고 80세에 열반에 든다. 영원한 자유를 향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여정은 조형 예술로 시각화되어 불교문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에서도 현대불교
뉴스를 받아보세요
많이 본 기사

금주의 베스트 불서 7/26 ~ 8/1

순위 도서명 저자 출판사
1 천태소지관 천태대사/윤현로 운주사
2 우리는 늘 바라는 대로
이루고 있다
김원수 청우당
3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스님 수오서재
4 요가 디피카 B.K.S.아헹가/현천스님 선요가
5 진흙에서 핀 연꽃처럼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당선작)
법보신문 편집부 모과나무
6 부처님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가르치셨나 일아스님 불광출판사
7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 이은윤 민족사
8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통나무
9 백용성의 금강경 강의 백용성/김호귀 어의운하
10 마음공부 길잡이
(원불교 입문서)
김일상 원불교출판사
※ 제공 : 불서총판 운주사 02) 3672-7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