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비워야 살고 막히면 죽는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가득 찼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충만하다.”

-법정스님의 수상록 〈텅 빈 충만〉 中

 

중국의 선종사(禪宗史)에 마조 스님의 법을 이은 방거사(龐居士)라는 인물이 나온다.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호였는데, 어느 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배에 싣고 호수에 나가 미련 없이 버렸다. 그리고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딸과 함께 평생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의 어록에 이런 게송이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래의 내 모습 드러난다.”

소유와 경쟁의 시대라는 물질문명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쁜 숨을 쉬며 지쳐만 가는 것 같다. 이럴 때 오래 전 선사(禪師)의 말씀을 듣게 되면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들이 마음의 수면위로 떠오르며 자각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비우고 버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우리들은 많은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버리고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삶일까? 아니면 최대한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없고,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는 우리들에게 과연 적당한 소유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참 중요하다. 그것을 위한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일이다. 비우는 삶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장이 막혀 화장실에서 볼일을 못 보면 아주 괴롭고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땀구멍 숨구멍 등 여러 가지 구멍들이 막히면 질병이 생기도 결국 죽는다. 뚫려있고 열려있어야 흐르게 되고 그것이 삶을 유지시켜준다. 스마트폰에 앱이 많이 깔려 있거나 다운받은 콘텐츠가 많으면 용량 초과로 사용에 불편함을 겪게 된다.

또한, 우리들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정작 좋은 생각들이 가려져 많은 생각들 모두 쓸모가 없어진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일어나는 한 생각이 더 쓸모 있는 법이다.

어렵고 깊은 수행법 아니라도

일상생활서 쉽게 空 체험 가능

‘텅 빔’에서 오는 충만감 느껴

마음에 깨끗함·안정 찾아와

텅 비어있는 상태는 우리의 삶에서 생존과 번영 그리고 영속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空)이라고 한다. 텅 비어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꽉 차있는 상태이다. 전문용어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한다.

이러한 텅 빈 충만의 상태인 공을 체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에서 가르치는 보편적인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관겸수(止觀兼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로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지관겸수는 그치고 관찰한다는 의미이다. 그치는 ‘지(止)수련’과 보는 ‘관(觀)수련’을 겸해서 닦는다(兼修)는 것이다. 그리고 정혜쌍수는 지관겸수의 결과에 해당한다. 선정을 의미하는 정할 정(定)과 슬기로움 혜(慧)를 동시에 닦는다(雙修)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止)와 정(定)은 멈추고 집중하는 수련이다.

이를 통해 선정에 들면 번뇌망상이 없는 고요한 삼매의 상태가 된다. 이를 통상적으로 사마타 수련 또는 집중명상이라고 한다.

또한 관(觀)과 혜(慧)는 관찰하는 수련이다.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을 통해서 지혜가 계발되는 상태이다. 보통 위빠사나수련 또는 통찰명상이라고 한다. 근래에는 마음챙김명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집중명상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청정도론(淸淨道論)과 오정심관(五停心觀)으로 알려져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호흡과 몸과 마음을 비롯해 40가지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전통에서는 오정심관이라하여 5가지 번뇌의 장애를 가라앉히는 명상법으로 부정관 명상(不淨), 자애명상(慈), 연기관 명상(緣性緣起), 요소 구별 명상(界差別), 호흡명상(阿那波那念)등이 전해진다.

통찰명상의 구체적인 방법인 마음챙김은 신수심법(身受心法)을 관찰하는 수련법이다. 관찰 대상에는 몸ㆍ느낌ㆍ마음ㆍ법(身受心法)의 네 가지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4가지 대상은 간단하게 육체적인 현상(色)과 정신적인 현상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몸을 관하는 것을 신념처(身念處)라고 하는데, 14가지 육체적인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을 수념처(受念處)라 하며 고(苦)와 락(樂) 그리고 불고불락(不苦不樂)의 3가지 육체적 정신적인 느낌(感受)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마음의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을 심념처(心念處) 라고 하며 16가지 마음 상태를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법념처(法念處)는 깨달음을 위한 최종의 상태인데, 육체적 정신적 현상을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공(空)과 법(法)의 상태를 관찰하는 궁극적인 마음챙김이다.

스님들께서 쓰신 책의 제목에서 위에 살펴본 ‘공’과 ‘지관겸수(정혜쌍수)’에 대해 팁을 얻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과 정목 스님의 〈비울수록 가득하네〉 는 참된 공의 상태인 ‘진공묘유’의 이치를 알 수 있다. 또한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는 공을 이루기 위한 방법인 지관겸수를 뜻하고 있다.

어렵고 깊은 수행법 말고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공을 체험할 수 있다. 차를 마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청소를 하면 내 마음도 가지런히 정돈이 된다. 목욕을 하면 내 마음도 깨끗하게 씻긴 듯하다. 뭔가 가벼워지고 편안하고 깨끗해진 상태도 일상생활에서의 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텅 빔을 통해 채워지는 충만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의 〈텅 빈 충만〉의 글을 소개하며 갈음하겠다.

“숲은 나목(裸木)이 늘어가고 있다. 응달에는 빈 가지만 앙상하고, 양지쪽과 물기가 있는 골짜기에는 아직도 매달린 잎들이 남아 있다. 때가 지나도 떨어질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잎들이 보기가 민망스럽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산뜻하게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빈자리에 새 봄이 움이 틀 것이다.”

한 해가 가고 곧 새로운 해가 올 것이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금의 불필요한 것들을 남김없이 비우고 버려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