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 권의 책

법정 스님께서 내게 권하는 책은 3권이었다. 첫 번째의 책은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법정 스님께서 ‘영혼의 모음’이란 제목으로 어린 왕자에게 띄우는 편지를 쓰셨을 정도로 가까이하셨던 책이었다. 스님은 〈어린 왕자〉를 스무 번도 더 읽어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그 세계가 넘어다보였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어린 왕자가 여섯 개의 별나라 여행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인간화를 고발한 동화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내재율의 울림이 큰 철학적인 장시(長詩)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프랑스 생텍쥐페리 재단의 후원을 받아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어린 왕자 특별전’을 다녀와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어쨌든 어린 왕자는 지구별로 돌아와 사막에서 만난 여우에게 ‘내 비밀을 알려줄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거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깨닫는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나선 선재동자의 구도 이야기와 같은 맥락의 서사구조이다. 아래 글은 법정 스님이 어린 왕자에게 띄우는 편지글 일부이다.

일러스트 정윤경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방울처럼 울려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중략)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듯이.’

두 번째 책은 문명을 버리고 자연으로 귀의한 소로우의 〈숲속의 생〉. 일본어판을 소장하고 계시던 스님께서 어느 날 내게 샘터사에서 출판할 수 없느냐고 문의하셨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숲속의 생〉을 발간해보라고 당부하셨다. 일본어판을 번역하는 책이므로 중역(重譯)인 셈. 그런데 중역이 얼마나 위험한 번역인지 그때 알았다. 이호중 화가의 표지화를 받아 정성들여 편집했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영역판과 차이가 났고 독자의 항의편지가 날아왔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편집회의를 한 끝에 절판시켰다.

세 번째는 민족사학자 신채호의 민족혼을 일깨우는 〈신채호전집〉. 어느 날 스님께서 내게 그 〈신채호전집〉을 미국여행 가는 지묵 스님에게 주어버렸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지묵 스님에게 “어머니가 문둥이여도 버려서는 안 되듯이, 내 나라가 아무리 썩고 잘못됐다 하더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십여 년 뒤 〈신채호평전〉을 구해 읽었는데, 선생이 이순신 전기를 한말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나도 〈이순신의 7년〉이란 대하소설을 집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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