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에서 전해지는 선사들의 일화에는 고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다. 모두가 은유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용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선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이해하는 것을 금기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행동이나 개념을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하여 상대의 의식을 전환시키는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 일들이다.

백장회해(百丈懷海:720~814)선사는 중국 선종사에서 총림의 청규를 세운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마조(馬祖) 문하의 특출한 걸승으로 남전보원(南泉普願), 서당지장(西堂智藏)과 함께 삼대사(三大士)로 불리어졌던 대선사였다. 백장산에서 선원을 세우고 청규를 제정하여 대중을 이끌고 농사와 선수행 병행하여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생활화 하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그가 남긴 말은 오늘날까지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백장이 스승 마조와의 문답을 기초로 한 공안에 “백장삼일이농(百丈三日耳聾)”이 있다. 백장이 삼일 동안 귀가 먹었다는 말이다. 〈연문염송설화〉 181칙에 백장이 두 번째 마조를 뵈오니 마조가 불자(拂子)를 세웠다. 이에 백장이 물었다. “이것에 의하여 활용하오리까,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오리까?” 마조가 불자를 본래 자리에 걸어 두거늘, 선사가 백장이 양구(良久:잠시 침묵을 지키는 것)하니 마조가 물었다. “그대는 훗날 어떻게 두 입술을 놀리면서 무엇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것인가?” 백장이 불자를 세웠다. 마조가 물었다. “이것에 의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백장도 또한 불자를 본래 자리에 걸어 두었다. 이에 마조가 할(喝: 크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을 하니 백장이 삼일 동안 귀가 먹었다.

나중에 백장의 제자 황벽이 하루 만에 하직하고 마조를 뵈러 가겠다고 하니 백장이 말하기를 “마조는 이미 천화(遷化)하였느니라.” 하였다. 황벽이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마조께서 무슨 말씀이 계셨습니까?” 백장이 두 번째 뵈러 갔을 때의 일을 말하고 “내가 그때 마조에게 한 차례의 할을 받고 사흘 동안 귀가 먹었다”고 하였다. 황벽이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혀를 빼거늘 백장이 또 물었다. “그대는 후일에 마조의 대를 잇지 않겠는가?” 하자 황벽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스님을 통해 마조대사의 큰 기틀의 작용을 보았을 뿐이요, 마조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만약 마조의 대를 이으면 뒷날 저의 자손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장의 ‘3일 귀먹은 이야기’와 황벽을 ‘혀를 뺀 이야기’가 선가에 나돌게 되었다.

이 ‘이농삼일(耳聾三日)’의 화두에 대하여 조선조의 청매인오(靑梅印悟:1548~1623) 선사가 지은 게송이 〈청매집(靑梅集)〉에 전해진다.

금강 같은 할 한 번에 단박에 못을 뽑으니 金剛一喝抽釘急

맑은 하늘에 번갯불이 번쩍 하구나 白日靑天電影忙

빗장 밖 길로 고개 돌릴 틈도 없는데 無暇轉頭關外路

가을 빛 재촉하는 기러기는 형양(衡陽) 지나가네. 雁拖秋色過衡陽

형양(衡陽)은 중국 호남성 동남부에 있는 지명이름이다. 이곳에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인 남악(南嶽)이 있고 마조의 스승 회양(懷壤: 677~744) 선사가 이곳에 있었다. 백장의 사조(師祖)가 된다.

청매 인오(靑梅 印悟 1548~1623)는 서산(西山)대사 휴정(休靜)의 제자로 묘향산에서 서산대사를 모시고 있다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으로 전쟁에 참가해 3년 동안 승군을 이끌고 왜군과 맞섰다. 전쟁 속에서 그는 처절한 참상을 느끼고 깊은 고뇌에 시달리다 다시 한 번 크게 발심하여 전남 부안 아차봉 마천대 기슭에 월명암을 짓고 일대사 해결을 위한 혹독한 정진에 들어갔다. 이때 그가 머물던 선실의 이름도 청매당(靑梅堂)이라 하였다. 매서운 추위 속에 피어나는 매화와 같이 고고한 깨침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또 그림에 능해 광해군 9년(1617)에 왕명으로 벽계(碧溪)ㆍ벽송(碧松)ㆍ부용(芙蓉)ㆍ청허(淸虛)ㆍ부휴(浮休) 등 5대사(五大師)의 초상을 그려 조사당(祖師堂)에 모시고 제문(祭文)을 지어 봉사하였다. 또 십무익송(十無益頌)이란 글을 지어 수행자를 경책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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