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가다보면 항상 만나게 되는 이정표는 지역 명찰로 가는 표지판이다. 합천하면 해인사, 속리산하면 법주사, 김천하면 직지사가 연상되듯이 지역 문화에서 사찰은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사찰로 가는 길을 알려주던 표지판이 없어질 상황이다.

현재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한국의 명찰(名刹)들의 이름을 삭제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표지 제작·설치 및 관리지침’에 어긋난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현재 도로표지 관리지침은 2003년 개정된 것으로 이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중 건조물·사적지 등을 명기할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지침이 개정되면서 고속국도에서는 제외됐다.

하지만 이 같은 지침 개정은 10여 년 전에 이뤄진 것인 데다 그동안 문제없이 표지판에 사찰명이 명기됐다는 점에서 의문을 낳는다.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관계자의 설명도 석연치 않다.

또한 놀이공원과 스키장 등 소위 위락시설은 고속도로 표지판에 표시할 수 있지만, 공공재며 문화재인 사찰을 표지 않는 것은 해당 부처의 몰지각한 문화재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교계에 책임도 없지 않다. 10년 전 지침 개정이 이뤄졌을 때 살폈어야 할 부분이었지만, 전혀 문제 제기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조계종에서 공문으로 항의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더 긴밀히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역시 지침 개정 의지를 피력할 필요가 있다. 이미 국토부는 2008년 ‘알고가’ 사태를 통해 불교계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제2의 알고가 사태’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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