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공덕을 기르기 위해선

說悲品第二十三

世間人天阿修羅等。受身有種種苦。唯有菩薩徹髓悲者。知一切善法以悲為首。智人當知。如似一切諸字悉曇為首。一切善法皆入悲中。如似一舍眾色皆入。若見虛空淨即見大悲淨。見虛空無邊大悲亦無邊。佛說。若欲現前見我當恭敬大悲。若欲見我。當觀三界皆悉受苦。苦無邊故大悲亦無邊。苦住故大悲亦住。大悲住在。何處住在。一切眾生貪欲瞋恚愚癡生老病死種種苦聚與諸眷屬在中而住。有大悲心能知他苦。此名與佛共住。有三種施一切功德養身。猶如乳母。是名大悲。


번역|설비품 제23
세상의 인간과 하늘, 아수라 등의 몸을 받으면 가지가지 괴로움이 있습니다. 오직 보살만 철저하게 자비심을 따르는데, 일체 선법(善法)을 알고 자비심으로써 으뜸을 삼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응당 아는바 일체의 모든 글자가 실담(悉曇: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머리로 삼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의 선법(善法)이 다 자비 가운데 들어가나니, 하나의 우주에 뭇 색이 다 들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허공의 깨끗함을 볼 수 있다면 대비심의 깨끗함도 보게 됩니다. 허공이 가없음을 볼 수 있듯이 대비심도 역시 한계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현재 나를 보고자 한다면 응당 대비심을 공경하라” 하셨고, “나를 보고자 한다면 응당 삼세(三世)가 모두 다 고통 받는다는 것을 관찰하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이 가없기 때문에 대비심도 가없습니다. 괴로움이 머물기에 대비심도 역시 머무는 것입니다. 대비심이 머물러 있다면 어느 곳에 머물러 있겠는지요. 일체 중생의 탐욕과, 어리석음과, 생로병사와, 가지가지 괴로움이 모인 곳과 더불어 모든 권속 가운데 있으며 머무릅니다. 대비심이 있어야 능히 타인의 괴로움을 압니다. 이것을 일러 부처님과 함께 머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보시가 있어야 일체 공덕의 몸을 기릅니다. 마치 어머니의 모유와 같은 이것을 대비심이라고 합니다.

해설|보시에는 세 가지 보시가 있는데, 이것을 삼종시(三種施)라고 한다. 삼종시(三種施)는 법을 설하는 법시(法施), 가진 재물을 보시하는 재시(財施),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를 이르는 말이다.

법보시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엄경〉 십지품 중에서, ‘가령, 스스로 바른 행을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로 하여금 바른 행을 닦게 함은 있을 수 없다(若自不能修行正行,令他修者,無有是處)’는 말씀이 있다. 나는 스님이요, 당신은 중생이라는 생각으로 가르치듯이 법을 베풀어서는 곤란하다. 십지품에서 보살은 ‘부끄러움을 옷으로 삼는(慙愧爲衣)다’는 게송도 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며, 함게 부처님 공부를 한다는 겸손함이 있을 때 법보시의 참된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

재시(財施)의 주의할 점은 미리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내가 얼마를 주었으니 스님은 나를 위해 얼마를 기도해야 하고, 내가 얼마만큼의 기도 응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등을 놓아야 한다. 보시란 말 그대로 베푸는 것이요, 공양하는 것이다. 인과의 법칙이 역연할 줄 알면 당연히 좋은 과보도 따라올 것을 믿어야 한다.

무외시(無畏施)는 중생의 두려움을 이용한 돈벌이 수행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돌아가신 조상을 들먹이거나, 귀신을 들먹이거나, 지옥의 고통을 들먹여 추종하게 만들며, 재물을 바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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