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봉은사 한복 패션쇼 및 불교식 혼례 재현 행사 ‘한복에 홀린’

강남 봉은사는 10월 22일 경내 미륵광장에서 한복 패션쇼 및 불교식 혼례 재현 행사 ‘한복에 홀린’을 개최했다. 이날 이유숙 디자이너의 한복 70여벌은 모델들의 워킹을 통해 살아있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신랑 신부는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 것을 부처님 앞에 다짐합니까?”

“네!”

낭랑하고도 우렁찬 신부의 목소리에 장내에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얀 웨딩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에게서 순간 색동저고리 입은 아이의 천진함이 비쳤다. 주례 보던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도 흐뭇한 웃음을 짓고, 청중들은 큰 박수로 신랑 신부의 앞날을 함께 서원했다. 모두에게 행복이 깃든 순간이었다.

한복의날 맞아 전통 우수성 알려
이유숙 디자이너 작품 70여점 선봬
사찰서 패션쇼 ‘이색’ 광경에 ‘화제’
불교식 혼례 재현 “편견 깨는 계기”

강남 봉은사는 10월 22일 경내 미륵광장에서 한복 패션쇼 및 불교식 혼례 재현 행사 ‘한복에 홀린’을 개최했다. 한복의날(21일)을 맞아 열린 이번 행사는 우리의 전통의복인 한복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사찰에서 한복 패션쇼가 열린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라 불교와 전통문화, 현대의 융합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깊었다.

1부는 ‘거닐다, 스치다, 만나다, 맺다’를 주제로 패션쇼가 열렸다. 미륵대불 앞에 펼쳐진 런웨이가 진풍경을 연출했다. 도심사찰의 밤과 조명, 미륵대불을 둘러싼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전문 패션쇼장 못지않은 화려함을 뽐냈다. 이에 더해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감독을 맡았던 이유숙 디자이너의 한복 70여벌은 모델들의 워킹을 통해 살아있는 예술로 재탄생했다. 밤하늘 별처럼 봉은사의 밤을 수놓은 한복의 미에 관객들은 연이은 감탄을 쏟아냈다.

2부에서는 불교식 혼례 재현 행사가 이뤄졌다.

남궁진여성(59) 씨는 “절에서 패션쇼를 한다기에 의구심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화려한 무대에 경이로움까지 느꼈다”면서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웃어보였다. 배수현(25) 씨는 “사찰이 전통문화 홍보를 위해 직접 나선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오늘 무대에 오른 한복 디자인들이 상용될 수 있도록 사찰에서 대여ㆍ판매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모델로서 무대에 선 엄예진(18) 씨는 “절에서 패션쇼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일반 패션쇼도 이렇게 큰 장소는 많지 않은데, 넓은 공간 덕분에 무대를 잘 마칠 수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장엄한 산사의 분위기가 잘 어울려 더욱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2부는 ‘고하다, 밝히다, 서약하다, 혼례 치르다’를 주제로 불교식 혼례를 재현했다. 불교식 혼례는 한국 불교의례 교과서로 불려지는 <석문의범(釋門儀範, 1935년 간행)>을 통해 전해오고 있다. <석문의범>에는 ‘사찰 혼례의식’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사찰 혼례는 타종, 촛불 점화, 삼법공양, 도량결계, 고유문 봉독, 헌화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이날 가상 신랑 신부는 이유숙 디자이너의 웨딩 한복을 입고 미륵대불 앞 광장을 버진로드 삼아 행진했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 꽃 장식은 없었지만 부처님 전에 백년가약을 약속한다는 것만으로도 환희를 자아냈다.

패션쇼가 피날레에 이르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터트렸다. 사진제공=봉은사

“천생연분은 하늘이 지어준 연인이란 뜻이다. 맞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서로가 천생연분이란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불보살님의 가피력으로 항상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원명 스님의 주례가 끝나고 신랑 신부는 부처님 전에 7송이 꽃을 올렸다. 헌화 의식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선혜’란 수행자로 살 때, 연등 부처님에게 공양할 꽃을 구하던 중 ‘구리’란 궁녀에게서 7송이 꽃을 구했다는 설에서 유래한다. 선혜와 궁녀는 훗날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신랑 신부가 퇴장하자 청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한복과 불교가 만들어낸 절묘한 조화에 저마다 감탄을 터트렸다.

피날레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것은 역시 이유숙 디자이너였다. 이 디자이너는 “‘결혼식에서 전통 한복을 입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주지 스님의 깊은 뜻에 크게 공감해 이 자리를 마련다. 가을날, 봉은사라는 멋진 공간에서 한복 패션쇼를 연 것은 가슴 떨리는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 패션쇼장을 찾은 1,000여 관객들은 한복의 미에 감탄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전통한복 입는 불교 혼례, 충분히 화려하고 의미 깊어”

[Interview]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

“저도 가끔 주례를 봅니다만, 요즘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이 다 똑같습니다. 특별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의식으로 백년가약을 약속합니다. 이 가운데 부처님 앞에서 부부간 서약을 한다면 얼마나 뜻 깊을까요? 불교식 결혼 예법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이번 행사에서 불교식 혼례법을 재현한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은 요즘 획일화된 결혼식에서 불교식 혼례가 참신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똑같은 순서와 예복, 공간 대신 전통한복을 입고 사찰서 올리는 결혼식이 더 의미가 깊다는 것.

특히 원명 스님은 불교식 혼례가 ‘촌스럽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스님은 “불교식 결혼 예법이 있음에도 불구, 불자들마저도 자녀들에게 불교식 혼례를 장려하지 않는다”면서 “불교식 혼례가 촌스럽다는 편견이 있는데, 전통 한복을 입고 결혼하는 것도 충분히 장엄하고 화려하다. 불교식 혼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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