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있는 것만 알지 마시고 한계 없는 것도 좀 알아야!

두려움 없이 저승세계에 가려면

질문 저는 제가 평생을 통해서 불법을 공부해 왔기에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심장이 움직이지를 않아 응급실에 실려 갔다 오면서 정말 참 공부는 글자와 이론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꿈결 같은 어둠 속에서 제가 살아온 모습들이 병풍처럼 비쳐지는 그 가운데에서 저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깨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제가 정말 어떠한 공부를 하여야 두려움 없이 저승세계에 갈 수 있는지 가르침 주십시오.

몸을 살려 놓고 미지의 저승세계에 가서

죽은 사람을 보고 얘길 하고 죽은 사람들이 사는 도리를 다 알고서야

산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답변 그래서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죠. 어느 스님께서 조용히 산등성이의 돌 위에 가서 떠억 앉아 있으려니까 어느 노승이 지나가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여보게 자네, 앉을 때가 옳은가, 앉았다 일어날 때가 옳은가?” 하더랍니다. 그러니깐 “앉고 서고 그런 게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하니까 “허허, 그래? 그러면 솥에 넣어서 푹 삶은 자갈은 물렀겠지?” 하거든. ‘솥에 넣어서 푹 삶은 자갈은 익었겠지.’ 도대체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경이라는 경은 다 제껴 봐도 그런 문구가 없어. 그 스님을 찾으려고, 경을 다 버리고 찾으려고 애써도 이름도 성도 묻지 않은 것도 실책이고, 그 스님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마을에를 들어섰는데 동짓날이 됐더랍니다. 동지가 됐는데 마당에다 큰 솥을 걸어 놓고선 팥죽을 쑤고 있거든요. 팥죽을 쑤면서 큰 주걱으로다가 휘휘 젓거든. 그런데 그 팥죽이 벌렁벌렁 끓는 걸 보고서 그때서야 ‘아이고,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면서 “스님! 찾았습니다, 스님!” 이랬답니다. 그러니 거기서 그 소리를, 그 대답을 못한 스님이나 그 말씀을 하고 간 스님이나 둘이겠습니까? 무슨 까닭에 그걸 보고서 (손바닥으로 법상을 쳐 보이시면서) “어이구, 찾았군!” 했는가 말입니다. 그 팥죽 끓는 걸 보고서 그 솥 안의 돌이 말랑말랑한 걸 알았겠느냐 이 소립니다.

천칠백 공안이라고 하더라도 이 삼천대천세계 어느 것이 화두 아닌 게 없고, 어느 것이 법 아닌 게 없고, 우리 생활 자체가 그대로 공안 아닌 게 없고, 참선 아닌 게 없으니 여러분이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똑바로 일러 줬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가다 보니까 단전이다 명상이다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딴 데로 나가고 있어요, 기껏 가르쳐 봐도.

본래 이 세상에 여러분이 “응아” 하고 나왔으면 그게 칼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화두입니다. 어느 어린애든지 나올 때 “응아” 하고 소리 안 지르고 나오는 애가 없습니다. 그리고 물주머니에서 안 나오는 애가 없고. 내가 있다는 겁니다, 있다는 거! 그럼 갈아야죠! 그게 화두예요. 내가 난 게 화두고, 바로 우리가 이렇게 움죽거리고 생활하는 것이 참선이에요. 일분일초도 끊어지지 않는 참선! 숨 들이쉬고 내쉬고 이러는 게 참선이야, 그냥. 숨 들이쉬고 내쉬는 데서, 그 한 구멍으로 들고 한 구멍에서 나니 두드러지지도 않고 줄지도 않더라.

여러분은 날더러 “스님은 경전에 있는 심오한 뜻은 얘기 안 하고, 왜 이렇게 만날 저런 얘기만 할까?” 그러시겠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솥 안에 넣고 그 솥 안의 자갈은 말랑말랑하게 익었겠지?” 한 거는 뭐며 팥죽을 쑤는 걸 보고선 (법상을 치시며) “아이쿠, 이제는 익었구나!” 돌이 익었다 이거야. 돌이 그랬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몸은 살려 놓고 저승에 가서 죽은 사람을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몸을 살려 놓고 미지의 저승세계에 가서 죽은 사람을 보고 얘길 하고 죽은 사람들이 사는 도리를 다 알고서야 산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똑바로 행할 수 있고, 똑바로 자비를 베풀어 에너지를 공급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기를 자기가 모르고서야 어찌 공급을 할 수가 있으며, 길을 인도할 수 있으며 또는 여러분의 눈을 띄울 수가 있겠습니까? 밥은 내가 대신 먹어 줄 수 없지만, 그 밥을 먹게끔 할 수 있는 길잡이로서, 자기가 해 먹어 봐야 해 먹을 수 있다고 말을 하고, 해 먹을 수 있는 물리를 틔어 주게끔 해 줄 수 있지요. 그렇게 같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하나가 돼 줄 수 있는 그러한 에너지, 광력·전력·자력 이런 게 다 동시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은 그냥 얘기만 듣고 가려고 하지 마세요. 얘기만 하려고 그러면 뭐, 만담하는 식이게요. 그건 소용없는 거라. 어느 만큼 얘기하는 사람이 얘기하면서도 함이 없이 하느냐? 그만큼 둘이 아니게 할 수 있겠느냐? 그만큼 자비를 베풀 수 있겠느냐? 그만큼 네 아픔과 둘이 아니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내 몸과 같이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거기 대두되는 것입니다.

몸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질문 스님께서는 나를 발견하고 의식에서 벗어나면 되는 줄 알지만 의식에서 벗어나도 자기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가르침 주십시오.

답변 우리는 지금 몸뚱이라는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몸뚱이가 살고 있는 집은 지구입니다. 지구인데 우리 몸뚱이가 수명이 있듯이 지구도 수명이 있다고 봅니다, 물질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인간만 생명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체 생명이라고 볼 때 그래도 고등 동물이라고 한다면 인간을 최고로 치죠. 인간이 돼야만이 부처를 이룰 수 있고, 한마음으로 전체가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지혜를 가질 수 있고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우리가 이 공부를 해서 그렇게 깨달아서 포용력 있게, 지혜롭게 참 걸림 없이 갈 수 있다면, 예전에도 자주 주장자 얘기 했듯 저런 달세계나 저런 모든 혹성들에게도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을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건 어떻게 해서 가지고 있느냐.

여러분은 지수화풍에서 소생돼 가지고 지수화풍을 지금 쓰면서 살고 있고 지수화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지수화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수화풍에서 지수화풍을 먹고 삽니다. 그 속에서, 복합적인 재료가 다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요. 그 질량은 수만 개의 이름을 가졌다 하더라도 거기서 다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계발이 되는 것도 그렇고, 참 과학이 발전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은 다 거기에서 나오는 거고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계발이 되고 또 인간이 많이 늘어나고, 그것이 증강된다고 할까요? 우리가 먹고 사는 것도 또 생각을 안 해 볼 수 없는 거고. 그러니깐 그건 식량이라고도 할 수 있죠.

또 우리가 자원이나 식량을 더 만들지 않고 곶감 꼬치 빼 먹듯 빼 먹으면은 그것은 마치 은행에 예금해 놓은 것을 꼬박꼬박 빼다 쓰기만 하고, 벌지 않아서 나중에는 통장이 비는 것처럼 살림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마음공부를 해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없을 때는 가져올 수도 있고 있을 때는 남에게 줄 수도 있는, 그런 영향력과 지혜로운 마음이 생길 수 있죠. 즉 이 육체에서 마음이 벗어나면은 이 몸뚱이라는 물질도 굴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면은 굴릴 수 없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독 안에 들어 있다면 독을 굴릴 수가 없고, 독 안에서 벗어난다면 독을 굴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독이 혹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 혹성 안에 있는 재료를 마음대로 용도에 따라서, 크나 작으나 앞에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재료라든가 이런 거는 어디에서 어떻게, 그렇게 멀고 먼데 어떻게 조달이 되느냐고, 구름 잡는 얘기라고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진리이고 길입니다. 또 그 길을 부처님께서 가르치셨고요. 또 나 역시 없는 거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 한생각은 체가 없어서 요기 요거 (법상을 가리키시며) 생각하는 거나, 저 달세계 생각하는 거나 둘이 아니라 이 소립니다. 그런 까닭에 그것도 서로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간다 하더라도 도가 아니라고 한 것은, 오고 가기만 하면 뭘 합니까? 교류가 돼서 우리가 맛을 봐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여러분이 장사를 해도 이익을 봐야 되고, 회향이 돼야 되는 거죠.

그와 같이 예를 들어서 본다, 듣는다 또는 가고 올 수 있다, 그 마음을 서로가 교환하고 알 수 있다 또는 그것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고 있다 이럴 때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거기에 통신력과 광력·전력·자력이 충만히, 우리가 지수화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충만히 교류가 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모든 재료나 우리 살아나가는 계발의 문제라든가, 또는 식량 문제라든가 이런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살아야 하는 건데 ‘깨달으면 한계가 없는 것도 알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한계가 있는 것만 알지 마시고 한계가 없는 것도 좀 아셨으면 하는 겁니다. 무한량, 한계가 없이 영원하다는 그 문제도 좀 생각해 보실 수 있는 그런 영향력과 지혜를 가지시라 이거죠.

그러면 만약에 그런 멀리 있는 것과 우리가 교류가 되지 않는다면, 벽이 쌓아진다면 우리는 어디로 피난을 가겠습니까? 내 집이 망가진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또 한 가지, 우리가 식량이 부족하면 어디로 가서 얻어먹겠습니까? 또 재료가 없다면 어디서 나서 쓰겠습니까? 이런 거 세 가지만 말해도 우리는 이 마음 자체가 그렇게 충만하고 교류가 될 수 있고 벽이 없고 그렇다는 부처님 말씀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몸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몸인데, 그럼 몸하고 지구하고 우리가 비교해서 볼 때 ‘몸을 이끌어 나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는 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 주인이 없으면 얼른 망가질 거고, 내가 깨달아서 주인이 있다면 내 몸도 고쳐서 쓸 것입니다. 그러면 가고 싶으면 가고 그냥 벗고 싶으면 벗고 말고 싶으면 말겠죠. 그것이 자유입니다, 이 옷을 벗는 것도. 그런데 그렇게 한계가 있듯이 그럼 지구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한계가 있겠죠. 그러나 이게 겉껍데기가 있고 속껍데기가 있고, 그 안에 셋째 번에 아주 그 얇은 껍데기가 우리 뱃가죽에도 있듯이 또 있습니다. 별성도 껍데기를 벗으면 새 빛이 나면서 다시 살듯이, 인간도 이 껍데기를 벗고서 다시 또 몸을 바꿔 가지고 다시 나오는 이치에 의해서 우린 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몸이 없어졌다가 다시 나고, 났다가 다시 꺼지고 이러는데, 이러한 혹성이나 저러한 별성 같은 거는 이것이 꺼멓게, 예를 들어서 그 껍데기를 벗으면서 그대로 속에서 새 빛이 다시 날 수 있는 것이 그게 한계가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서 같이 교류를 할 수 있는 그런 영향력이 있다면 그렇게도 할 수 있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자주 천수경도 하시고 염불도 하시죠? 염불하시는데 내 마음이, 한마음이 즉 관세음(觀世音)이고 지장(地藏)이고 독성(獨聖)이고 산신(山神)이고 용왕(龍王)이고 이렇게 일체가 내 한마음에 들었다고 돼 있죠. 그 한마음에서 그 이름이 나가는 거고 한마음에서 씀씀이가 다 가락대로, 차원대로 나가죠.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소릴 하느냐 하면, 여러분은 말로만 ‘내가 관세음이고, 내가 부처고, 내가 지장이고, 이 마음에, 그 한마음에 다 들었다는데, 뭐.’ 이렇게 꼿꼿이 세우는 마음이 있단 말입니다. ‘내가, 내가 부처니까 인간은 다 부처가 될 수 있고, 다 부처다.’ 하는 그 마음만 알고 이론만 알고 있지 진짜 행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내가 이 공부를 빨리 해야지.’ 하는 급한 마음을 가지시기 이전에 여러분은 자기의 아집이라든가 아상을 놔 버려야 하고,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하고, 또는 시간도 지켜야 하고, 의리도 지켜야 하고, 도의도 지켜야 하고, 사랑도 지켜야 하고 그러니까 자만이나 아만을 부리지 말고, 착을 놔야 하고, 욕심을 놔야 하고,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모든 악한 것은 내 마음으로 안아서, 예를 들어 이 물 한 컵에 있는 (법상 위의 물컵을 들어 보이시며) 물방울이 아주 악인이라고 합시다. 악인이라 하더라도 그걸 내 물그릇에 넣어서 같은 한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행입니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 여러분의 이름에 속한다고 볼진댄 그렇게 넣어서 안아서 녹여 주고, 병자가 있으면 병자가 있는 대로 여기 넣어서 안아 주고, 또 가난이 있으면은 내 가난과 같이 생각해 줄 수 있는, 이익을 줄 수 있는 마음이라야 되고, 그래서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내 아픔같이 생각하고, 또 죽는 사람이 있어도 내 마음으로, 한마음으로 안아서 나를 만들어서 다시 내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천도입니다. 이 마음과 마음이 서로가 서로를 안을 때, 참 그것은 즐겁고 여간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그렇게 될 때에는 밉고 곱고, 너는 잘못하고 잘하고 이것을 따진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보살들이 될 수 있는 100%를 가지고 있고 99%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99%다 할지라도,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다 될 수 있어도 이 행을, 그대로 선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건 중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에 속합니다.

인도해 주시는 직접적인 공부 방법

질문 수년에 걸쳐서 공부를 했는데도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정확하게 스님께서 저희들에게 길을 인도해 주시는 직접적인 공부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고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공부의 길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지금 여러분한테 길을 인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벌써 내 마음속에, 한마음 주처의 주인공에다 ‘내 주인공밖에는 나를 이끌어갈 수 없다, 내 주인공밖에는 나를 형성시킬 수 없다’ 하는 겁니다. 부모에게는 뼈와 살을 받아서 이 집만 받아 가지고 나온 거지, 악업과 선업의 그 업식을 통째로 지니고 나온 건 나다. 내가 나를 형성시켜서 나를 이렇게 지니고 나왔다. 전생이 지금 현생이다. 현생에 전생과 더불어 현생이 지금 같이 살고 있다. 그러니 과거의 내 이전을 멀리 가서 찾지 말고, 나 (가슴을 짚어 보이시며) 있는 데서 찾아라.

그렇게 주인공에다 놓고 갈 때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죠? 아주 빡빡하고 마르고 척박한 땅에 물을 주고 모든 걸 그렇게 하니까 노골노골해지듯이, 돌도 골라내고 다 이렇게 행으로 하니까 말입니다. 그렇듯이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주인공에다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 있고 ‘아, 이 병도 주인공밖에는 해결할 수 없다.’ 이렇게 믿고 들어갈 때에…, 거기에서 또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엎드러지면 여러분에게 일어날 힘도 있죠? 그러니까 거기 놓을 때에 안 되는 것도 거기고 되는 것도 거긴데, 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고 안 되는 것도 고정되지 않으니 그 굴리는 것은 운전수에 달려 있다. 이리로 가는 것도 저리로 가는 것도 운전수에 달려 있으니 안 되는 거 되는 것을 다 거기에, 거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에다 다 놓고, 되게 하는 것도 너고 또 몰라서 못 쓰는 것도 너니까 그것을 지혜롭게 운전해 간다면, 그것을 그렇게 놓고 간다면 벌써 시각이나 청각이나, 후각이나 감각이나 지각이 발효가 된다 이겁니다, 발효가. 그거 발효가 되면 벌써 오신통(五神通)이라고 하는 그 이름이 아닌 내 마음이 아주 밝게 맑아지고, 지혜로운 마음이 생기고, 그때는 자꾸자꾸 지혜가 생겨요, 두뇌로.

그러면서 내가 보는 눈도 달라지고 듣는 것도 달라지죠, 내가 하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하는 게 모두가 달라져요, 전부 바꿔졌어. 이상하게 바꿔져요. 그게 성숙해 가는 거죠, 익어 가는 게.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편리하고 편안해져. 그러면 옆의 사람도 그 불을 밝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걸 광력이라고 해도 돼요. 우린 보이지 않지만 광력이라고 해도 된다. 광선을 쏘여서 암을 낫게 하기보다도 내 광선이 항상 밝아서 있으니 그 광선으로 하면은 몸뚱이를 자르고 온통 그런 짓 안 하고도 할 수 있지 않으냐. 이건 생활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모두가. 일체 만법이. 그럼 광선도 있고 전력도 있고 자력도 있으니 얼마나 충만하냐. 통신력도 있고 입력도 있다. 또 입력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에 한번 이렇게 넣어서 한다면, 우리가 충만하게 일체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거죠.

신세 진 빚 갚고 살고 싶어요

질문 꾸준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생겨서 다른 사찰에서 수계를 받았기에 또 굳이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음공부를 이왕 하려면 선원에서 수계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빚을 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요. 어떻게 하면 크고 작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지요.

답변 내가 그전에 산으로 다니면서 공부하던 때의 얘깁니다. 장마가 들 때인데, 어느 때에 장마가 들지 인간들은 정확히 모릅니다. 그런데 어디 논두렁을 지나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연못처럼 물이 고인 데가 있었어요. 질척한 그곳에서 물을 떠서 논에도 주고 그러는 모양입디다. 그런데 날이 궂은 날도 아닌데, 큰 개구리가 뒷다리에다가 뭘 걸고선 질질질질 끌고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까 알 있죠? 개구리 알. 그거 떠내려 갈까봐 끌고 가는 겁니다. 풀섶에다 끌어다 놓는 거죠. 그게 작아서 보이지 않더니 자세히 보니까 물에서 질질질질 끌고는 그 거대한 풀섶에다 갖다가 놓는 겁니다.

그리고 개구리가 제 자식을 업어다가 풀잎 위, 나뭇가지 있는 데다 갖다 놓는 겁니다. 그래서 어떡하나 볼 양으로 거기 가서 보고 또 보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이튿날이 되니까 그걸 다 작업을 해서 기다란 알집을 끌고 가는 겁니다. 그런데 글쎄 그 이튿날 보니까 웬걸, 날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태풍이 오고 비바람이 치면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데 말도 못하는 거예요.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거듭거듭 진화가 돼서 인간까지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새끼를 살리고 알을 살리기 위해서 미리미리 끌고 가는 개구리도 있고 두꺼비도 있는데 그런 것도 하나 모른단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만이 자식들의 뿌리에 밑거름을 줄 수 있고 또는 뿌리의 밑거름이 부모, 조상님들한테까지 가서 묵은 빚을 갚을 수 있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부모에 효도를 못해서, 효도는 차치하고라도 살아가면서 한 번도 부모님께 무슨 뭐 하나를 제대로 한 게 없어요. 그것이 바로 묵은 빚인데 말입니다.

나도 묵은 빚 때문에 많이 울었죠. 그랬지만 개구리만 못해서야 되겠느냔 얘깁니다. 개구리뿐이 아닙니다. 내일 모레 장마가 들 것을 벌써 미리 알고 있고, 언제 태풍이 불어서 다 망가지고 쓰러지겠다 하는 거를 미리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옥수수나무나 수수나무도 올해는 태풍이 불어서 내가 온전히 서 있을 수가 없다 할 때는 뿌리를 넓게 잡아요. 그래서 그 뿌리를 넓게 잡은 걸 보면 올해 태풍이 얼마만큼 분다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그런 식물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지각까지 가지고 있는 인간이, 지견이 풍부한 인간이 어떻게 기복으로만 나가면서 도깨비장난을 하겠습니까? 인간이 귀신 짓을 하면 그런 습만 남았기 때문에 죽어서도 귀신밖엔 못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달마 대사가 양 무제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공덕이 됩니까.” 하니깐,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보시를 아무리 많이 하고 집을 많이 지어 준다 해서 공덕이 되는 게 아니라 마음공부를 해야 물을 한 컵 떠 줘도 공덕이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만민이 다 와서 공부를 하는 자리를 만들었을 때 마음공부 하고 가는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사시는 그 마음씨가 바로 이다음에 다시 돌아서 나올 때 무심의 통장으로서, 다시 그 통장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이 편안하게 살 수 있고, 또는 자식들에게도 햇빛을 줄 수 있고, 또 부모에게 묵은 빚을 갚을 수도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훌륭한 여러분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두 여러분이 마음과 마음으로 전달을 하고, 마음과 마음으로서 타파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기르시려면, 그리고 기르려고 하기 이전에 당장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부터 해결을 할 수 있는 해결사가 되려면 그렇게 하셔야 됩니다. 언제까지나 남한테 기대고 한 됫박 얻어서 먹고는 그것 없어지면 또 달라고 언제까지 그러겠습니까? 영원토록 세세생생에 벗어나서 정신계의 어버이로서 묵은 빚을 다 갚을 수도 있고 햇빛을 줄 수도 있고, 내 몸속에 있는 중생들도 제도해서 모두 보살, 부처가 되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주위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빚을 갚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더욱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불어 벗어난다면 하다못해 초목들까지도 아마 합장을 하고 숭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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