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21

새로움은 낯설기보다 신선하다
본 주제에서 사랑은 ‘이성 간의 관계에서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남녀는 서로가 감정적으로 끌리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만난다. 이러한 관계가 결실을 맺어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식을 낳아 한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일생을 함께 살면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지만 그 사랑이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남녀의 사랑도 시대가 바뀌면서 일생을 함께하기보다 중도에 헤어지는 게 다반사가 되고 있다. 이혼으로 인한 후유증은 이혼 당사자인 부모는 물론 자녀들의 인생, 나아가서는 사회,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사랑도 명상하듯이 매순간을 만날 수 있어야 일생을 함께할 수 있다. 매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남녀가 만날 때 서로를 향한 느낌이나 생각, 나아가 신체적인 접촉까지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새로움을 경험한다’는 말이 낯설게 다가올지 모르겠으나, 새로움은 낯설다기보다 신선함을 의미한다.

흔히 우리는 관계에서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아야 아름답다고 여긴다.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그리움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미덕으로 보는 것이다. 유시화 시인의 “그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말처럼 곁에 있어도 또 보고 싶도록 간절한 마음이어야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결같은’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이 해답의 일부를 끌림을 일으키는 ‘쾌감센터’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쉽지만은 않은 한결같은 사랑
간절한 마음이어야 안 끊어져
행위와 존재모드 병행하면서
사랑의 쾌감 기억에 잘 남겨야

캐나다 맥길 대학의 신경과학자 제임스 올스(James Olds)와 피터 밀너(Peter Milner)는 쥐의 학습행동 연구 중 우연한 발견을 했다. 그들은 실수로 쥐 뇌의 시상하부를 미세한 전극으로 자극했는데, 이후 쥐들은 이 자극을 받았던 장소로 계속 되돌아가려고 했다. 쥐들은 그곳에서 뭔가 대단히 좋은 경험을 한 것이다. 분석 결과 그곳에는 쥐들이 되돌아가려는 뇌의 ‘쾌감센터’가 우연히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쾌감센터를 자극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만들어 주고 계속적으로 연구한 결과 자위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해 쥐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지렛대를 두드렸다. 1시간에 무려 7천 번을 두드리다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쥐들도 생겨났다. 모든 동물의 뇌가 가진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쾌 혹은 불쾌의 경험을 즉각적으로 구분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들이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나누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생존을 결정하는데 효율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쾌와 불쾌의 신호는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기회를 포착하도록 안내한다. 즉 쾌와 불쾌의 감정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려주는 ‘생존 신호등’이다. 불쾌의 감정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빨간 신호등’이고, 쾌의 감정은 즐거운 곳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파란 신호등’이다.

사랑도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둘 필요가 있다. 사랑을 지속시키는 커플들은 이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도 쥐와 마찬가지로 쾌감과 연합된 경험을 기억 속에 확실히 남겨놓는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긍정적 정서의 빈도가 사랑을 지속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많은 남녀들이 사랑을 제대로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긍정적 정서의 빈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남녀 간에 무엇이 있어야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을까?’와 관련된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긍정적 감정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긍정적 정서만이 사랑을 지속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지금의 화폐가치로 약 100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복권 당첨자들에 대한 연구다(Brickman, Coates&Janoff-Bulman, 1978). 복권당첨 1년 뒤, 21명의 당첨자들과 주변 이웃의 행복감을 비교했더니 놀랍게도 별 차이가 없었다. 복권당첨과 행복을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복권에 당첨된 경우를 보면 이것이 답이 아니다. 왜 그럴까? 우선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자극에도 지속적인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생각보다 빨리 지운다. 바로 이 연구와 관련지어서 본다면 남녀가 서로에게 아무리 긍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서로가 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이지만 계속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된 마음은 행위의 존재모드와 관련이 있다.

행복한 사랑, 성취 위한 사랑
지난번 칼럼에서 제시했던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시 상기해 보기로 한다. 알아차림을 심리치료에 접목한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존 티스데일(John Teasdale)은 인간의 삶을 두 가지의 방식, 즉 행위모드와 존재모드로 구분하였다. 행위모드(doing mode)는 미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행위에 몰두하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이 행위모드에 비춰보면 남녀의 사랑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달콤한 느낌을 계속 추구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행위모드에서는 마음이 늘 바쁘다. 현재 서로에 대한 애정은 어떠한지, 함께 가야할 삶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그때는 왜 미워했는지, 사랑이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돌아본다. 이러한 사랑은 마음이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로 분주하게 옮겨 다닌다. 또한 현실과 목표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불안과 초조감 속에서 항상 쫓기며 바쁘게 살아간다. 이러한 사랑은 사랑하기 위한 사랑, 즉 집착하는 사랑으로써 사랑은 하되 행복한 사랑이라기보다 성취하기 위한 사랑이다.

반면에 존재모드(being mode)에서는 사랑의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어떠한 기억이나 계획도 하지 않으며 어떤 사랑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다. 마음이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랑의 어떠한 모습과도 싸우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한다. 현재에 머물며 몸과 마음에 다가오는 다양한 사랑의 경험들을 충분히 알아차리고 느낀다. 그 어떤 사랑의 경험도 붙잡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의 행위는 서로의 마음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통찰한다.

여기서 필자는 인간의 사랑이 행위모드보다 존재모드로 가야 더 아름다울 것이라는 택일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세계에서 행위모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사랑도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알아차림을 강조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자신의 사랑이 행위모드 중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존재모드의 사랑과 병행할 수 있는 영혼의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영혼의식은 개인이 살아가면서 습득한 사랑의 경험들이 자신의 영혼에 각인되어 형성된 자기만의 고유한 의식을 말한다. 비록 존재모드의 사랑이 행위모드의 사랑보다 순간을 만날 수 있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고유한 영혼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서 기존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끊임없이 행위모드의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존재모드의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은 남녀가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만 이런 사랑의 행위는 반복적이고 새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음식으로 인한 쾌감은 사라져야 한다.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초기화과정이 있어야만 그 쾌감을 유발시킨 그 무엇을 다시 찾는다. 이 무한 반복의 생존 사이클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쾌감의 소멸이다. 소멸되지 않으면 마치 시계의 알람 소리를 끄지 않아서 계속 울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랑은 ‘단 한 번’의 감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껴야 한다. 사랑은 기쁨의 강도라기보다 빈도에 의해 유지된다. 인간은 변화에 민감하고 반복에 둔감한 존재다. 새로운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자극에는 둔감하다. 사랑의 상태도 지속되면 그 감정이 저하된다. 그러므로 쾌감의 소멸과 쾌감이 새롭게 일어날 때 사랑은 지속된다. 필자도 결혼한 지 40여 년이 되면서 수없이 많은 기쁨과 괴로움을 겪어왔다. 그러면서 반복보다 새로움이 관계를 더 깊게, 더 달콤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쾌감과 연합된 경험을 기억 속에 확실히 남겨놓아야 한다. 서로에 대한 끌림인 쾌감센터의 기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쥐들이 되돌아가려는 뇌의 ‘쾌감센터’처럼 끊임없이 서로에게 되돌아가려는 끌림의 감정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센터는 편안하고, 기쁘고 때로는 쾌감이 샘솟듯 일어나는 그러한 센터여야 한다. 다만 쾌감을 느끼기 위해 쥐들처럼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사랑의 집착이다. 사랑의 감정센터는 강력하면서도 다정하고, 수용하며, 놓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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