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때 임제종 양기파 스님 가운데 동선사악(東禪思嶽) 선사가 있었다. 생몰연대는 밝혀지지 않고 다만 그가 바로 간화선의 완성자로 알려진 대혜종고(大慧宗?:1089~1163)의 제자였다고 알려졌다. 복주(福州)의 동선사(東禪寺)에 오래 머물었으므로 동선(東禪)이라 불리었으며 몽암(夢菴)이라는 호가 따로 있었다. 동선사는 북송 때 와서 대장경을 조조한 절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송 휘종(徽宗)이 하사한 이름으로 불린 숭녕만수대장이 바로 동선사판이다.

뇌암정수(雷庵正受:1146~1208)가 지은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의 〈동선몽암장(東禪夢庵章)〉에 참선납자를 격려하는 좋은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대지는 드넓게 펼쳐져 이렇게 광활하고, 험한 산은 아득하여 가는 곳마다 그윽하고 깊으니 여기가 납승들의 법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니 부처님과 조사의 원수를 갚을 곳이다. 힘을 다하여 제대로 말할지라도 몽둥이 한 방에 한 줄기 흔적이 남고 힘을 다했으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따귀 한 대에 피멍이 남는다. 만약 눈으로 보았다면 다시 그것을 귀로 들어야 하며 만약 마음으로 알았다면 다시 지혜로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증삼매(智證三昧)라 하고 또한 문수ㆍ보현과 같은 대인(大人)의 경계라 한다. 만약 이에 대한 뜻을 자세히 다 안다면 삼천대천의 무수한 세계가 하나의 가는 털에 모두 거두어지고, 백억 개의 머리털이 한 개 털공이 되어 구르며 온몸 곳곳에 눈이 생기게 되고 풍경이 없는 곳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大地茫茫 恁?廣闊 窮山莫漕 隨分幽深 爲衲僧法戰之場 報佛祖讐之處  盡力道得 一棒一條痕 盡力道不得 一掌一手血 如以眼見 則復耳聞 如以心知 則復智證 是故 謂之智證三昧 亦是文殊普賢大人境界 若也於此共相委悉 大千沙界一毫收 百億毛頭 繡毬 直是通身還有眼 不風流處 也風流)
 
흔히 선불장(選佛場)이라고 하는 수행도량을 몽암은 ‘법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法戰之場)’라 하고 수행 정진하는 곳을 ‘불조의 원수를 갚는 곳’이라는 색다른 표현을 하였다. 은혜를 갚는다는 뜻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수행 정진하는 것을 부처가 되기 위하여 하는 것이므로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라 하여 선불장이라 불렀다. 과거 시험장에 비유해 한 말이다.

규봉종밀(圭蜂宗密:780~841)은 출가 전에 과거에 응시하러 장안으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나 동행을 하게 되었다. 스님이 말을 걸었다. “젊은 선비는 어디를 가시오?” “예 스님, 장안으로 과거를 보러 갑니다.” 그 말은 들은 스님이 잠시 말이 없다 중얼거리며 말했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부처에 합격하는 것만 못할 것이야.” 이 말은 들은 규봉이 곧장 스님을 따라 절로가 출가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또 『전등록』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벼슬에 뽑히는 게 부처에 뽑히는 것만 하겠는가?(選官何如選佛)”라는 구절이 있다. 방(龐)거사의 게송에도 선불장 이야기가 나온다.

“시방으로부터 와 함께 모여 저마다 무위(無爲)의 도를 배우니 여기가 부처 뽑는 장소라 마음이 비워지면 급제해 돌아간다네.”(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라고 하였다. 또 『선요(禪要)』의 저자 고봉원묘(高峰原妙:1238~1295)가 개당보설(開堂普說)의 법문에는 “와! 원래 온 세상이 바로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요, 세상 전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무슨 방거사의 선불장 이야기를 하겠는가? 설사 삼승과 십지의 모든 보살일지라도 간이 떨어지고 혼이 놀라며, 달마대사나 부처님도 몸을 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가태보등록』은 『경덕전등록』,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등을 이어 나온 선종사서(禪宗史書)로 먼저 나온 사서에 빠져 있는 것들을 보충 증보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출가한 스님들에 관한 것만 수록하지 않고 왕공(王公), 거사, 비구니 등에 관한 것도 수록하여 놓았다. 내용을 구분하여 시중기어(示衆機語), 성군현시(聖君賢臣), 응화성현(應化聖賢), 광어(廣語), 염고(拈古), 송고(頌古), 게찬(偈贊), 잡저(雜著)의 여덟 부분으로 항목을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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