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험했던 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선거가 일단락됐다. 선거는 끝남과 동시에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누군가는 환희를, 또 다른 누군가는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같은 선거의 고유한 특성은 차치하고, 이번 선거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다. 조금 더 나아가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0월 12일 투표가 치러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일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한 후보를 비방하는 대중과 이를 제지하는 종무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경찰병력. 이 모습만으로도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했지만 호법부 스님과 선원수좌회 스님이 한 차례 주먹을 주고받는 촌극도 빚어졌다. 수좌회 스님은 경찰벽을 뚫고 투표장 가까이 진입하려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에게 연행될 뻔한 일도 겪었다. 현장에는 서로 주고받는 욕설도 난무했다. 한 사람으로 시작된 욕설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너나 할 것 없이 ‘새끼’를 외쳤다. 가만히 서있던 사람이 인신공격을 받기도 했고, 시비를 거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어디 투표 현장만의 문제인가. 선거 전날까지 각 후보 선거대책위와 교계 단체들은 잇따른 고소고발과 비방 성명 등으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게다가 후보들은 각종 의혹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아 불같은 여론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대중이 그토록 바랐던 종책선거도 무산됐다. 각 후보 측은 여법한 종단운영을 위한 새로운 종책과제들을 앞다투어 홍보하면서 종책선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서로 종책토론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며 명절 연휴로 인한 빠듯한 일정에도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세부적인 부분에서 후보 간 합의가 결렬됐다.

여기에는 미흡한 선거법 개정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중앙종회의 잘못이 크다. 선거법상 종책토론회는 강제조항이 아닌 재량권으로 명시돼 열리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는 이미 몇 차례 총무원장 선거가 진행되며 드러났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법이 보완되지 않은 것은 선거 이후 종회의원들의 체감온도가 떨어져 뒷전으로 미뤄버린 게 아닐까. 94년 종단개혁 이후 현행 선거제도가 정착됐음에도 20년이 훌쩍 넘도록 종책토론회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거과정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특정 개인이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뜻은 아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개개인 모두 때로는 엄석대이기도, 한병태이기도 했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옳다’ ‘그르다’ 모순 대립하는 명제가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사견이기에 둘 다 버리라고 중도를 강조한 부처님 가르침과는 멀어져버린 것 같다.

선거는 끝났다. 다만 앞으로 풀어 나가야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숙제가 아닌 우리들의 숙제. 불제자들은 몸으로, 입으로, 뜻으로, 계율로, 바른 견해로, 이익으로 화합하라는 육화(六和) 정신을 되새겨 숙제를 풀어가는 공동체로 다시금 뭉칠 때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