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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연재 도정 스님의 '대장부론' 시즌2
보리의 열매는 자비심에 있다13. 자비심을 가지게 되면

生常苦苦所苦。行苦所苦。壞苦所苦。若見一苦足生悲因。況復具足三苦。愚癡生常百千諸苦所苦。若見一苦應生悲心。況復百千諸苦。應當了知。世間諸苦於一一苦中未生悲心者應當生悲。已生悲心應當增長。況復無量。若聞世間種種無量諸苦。石尙應軟。況有心者而不生悲。若聞世間悲呼之聲。枯樹猶應生華。況有心者而不生悲。世間苦一味心柔軟者易生悲心。有悲心者菩提之果便在掌中。
 

번역|중생이 늘 괴로운 것은 괴로운 데서 괴롭고, 괴로운 행으로 괴로운 바며, 괴로움에 무너져서 괴롭나니, 만약 하나의 괴로움을 보고도 자비의 인연을 내기에 족하거늘, 하물며 세 가지 고통에 자비를 족히 갖추는 것이겠습니까. 어리석은 중생은 늘 백천 가지 고통에 괴로운 바, 만약 하나의 고통에 자비심을 낼 수 있다면, 하물며 백천 가지 고통이겠는지요.

응당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낱낱의 고통에 자비심을 내지는 못하지만 응당 자비심을 내어야 하며 이미 자비심을 내었다면 응당 증장시켜야 하거늘, 하물며 한량없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세상의 가지가지 무량한 고통을 들으면 돌멩이도 물러지겠거늘, 하물며 마음에 자비심을 내지 않겠는지요. 만약 세상이 자비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면 마른 나무도 오히려 꽃 피우는데, 하물며 마음에 자비심이 생기지 않겠는지요.

세상의 고통은 한 맛이요, 마음에 부드러운 이는 바꾸어 자비를 낳나니 자비심 있다는 것은 보리(菩提)의 열매가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해설|진흙소가 되어 한시도 쉴 수 없는 세계에 던져진 중생은 삼고(三苦)에 시달린다.

바로, 괴로운 데서 괴롭고, 괴로운 행으로 괴로운 바이며, 괴로움에 무너져서 괴로운 세상이다.

그러나 희망의 빛줄기는 두껍고도 캄캄하게 드리운 구름을 뚫고 고해(苦海)의 바다를 비추기 시작한다. 폭풍우 치던 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것이다. 표류하며 한없이 두렵고 목마르던 존재가 딛고 일어설 땅과 그 땅의 풍성한 과일을 발견한다.

이것은 고제(苦諦)가 주는 한 줄기 빛이다. ‘세상은 괴로움’이라는 명제는 ‘세상은 괴로움을 벗어날 희망을 지녔다’는 메시지의 전조다. 바다에 표류하던 이가 갈매기를 발견한 뒤 섬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듯이, 고(苦)의 실체를 안다는 건 열반의 섬이 가까웠다는 반증이 된다.

우리들은 그 편히 쉴 수 있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디매 쯤 있었는지 몰랐을 뿐이지 눈앞에 보이면 곧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전혀 깨질 것 같지 않던 차돌맹이 같던 번뇌와 괴로움이 물러지는 시간이다. 바싹 말랐던 나무에 꽃이 필 시간이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들을 시간이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며, 벙어리가 노래를 부르는 때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이었던 그 실체에 들어가 괴로움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들여다보자.

내가 살기 위해 죽였던 것들, 내 배를 채우기 위해 끌어 모았던 재물, 세상에서 내 아픔이 제일 중요했던 순간들을 돌아보자.

그런 것들이 바다가 되고 폭풍과 파랑의 업이 되어 나를 덮치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의 허망함으로 인해 표류하고 있지 않았던가?

중생을 향한 자비심은 어쩌면 관념적인 말이다. 그 스스로 만든 세계에서 표류하는 인간상(人間相)을 자각하면 이제 말하지 않아도 가엾다. 못내 가여워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게 자비(慈悲)였다.

도정 스님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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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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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봉 2017-10-14 13:13:37

    苦를 일율적으로 고통으로 보는 건 모든 경전을 석가여래의 정신인 진리인식이라는 깨달음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성리핫 교과서 읽듯 하지 마시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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