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 보살

“세존이시여, 저는 일심으로 시방세계에 광명을 널리 비추는 무애광여래(아미타불)께 귀의하옵고 안락국(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원하옵니다.”-<왕생론(往生論)>

초지보살로 왕생한 유식불교 개척자

지난 호에서 ‘대승불교의 아버지’이자 ‘제2의 석가’로 불린 용수보살이 초지보살로서 윤회를 벗어난 극락정토에 왕생했다는 기록을 살려본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유식(唯識: 오직 識만 존재한다)불교의 개창자로서 대승불교의 초석을 다진 세친보살(世親 또는 天親菩薩, 바수반두, Vasubandhu, 320-400년경) 역시 초지보살로서 왕생극락을 발원한 정토종의 중흥조임을 밝히고자 한다.

 

왕생극락하는 5대 염불수행법 제시

‘천 부의 논주’로 불린 세친보살은 많은 대승의 논서를 지어 불승(佛乘)을 크게 천양한 한편, 정토삼부경의 하나인 <무량수경>을 높이 우러러 보아 ‘원생게(願生偈)’와 ‘논’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왕생론>(원제는 無量壽經優婆提舍願生偈, 정토론이라고도 함)이다. 인광 대사는 <왕생론주> 서문에서 이렇게 그를 찬탄하였다.

“세친보살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끝내 왕생할 수 있도록 오문수법(五門修法)을 보여주셔서, 예배ㆍ찬탄ㆍ작원(作願)ㆍ관찰ㆍ회향의 법을 구현하셨습니다. 관찰문에서는 정토의 장엄ㆍ여래의 법력ㆍ보살의 공덕을 상세히 보여주셨습니다. 무릇 <왕생론>을 보고 듣는 사람은 모두 왕생을 발원할 것입니다.”

 

쉽게 불퇴전지 증득하려면 정토왕생이 필수

유식불교의 대가인 세친보살이 <왕생론>을 통해 다섯 가지 염불수행법을 드러내며 밝히고자 했던 대의는 과연 무엇일까?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

“저 안락(극락)세계를 관찰하여 아미타여래를 친견하고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함을 보인 것이다.”(왕생론)

구도자가 생전에 불퇴전지(보살 7지이상)에 이르지 못한다면 몸을 바꾸면서 대부분 전생의 기억을 상실하고 퇴전하기 마련이므로, 일단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따라서 반드시 왕생극락을 발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찰하고, 어떻게 신심을 낼 것인가?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오념문(五念門)을 닦아 행을 성취하면 마침내 안락국토에 태어나 저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다. 무엇이 오념문인가? 첫째 예배문이요, 둘째 찬탄문이요, 셋째 작원문이요, 넷째 관찰문이요, 다섯째 회향문이다.”

어떻게 예배하는가?

“신업(身業ㆍ몸)으로 아미타여래ㆍ응공ㆍ정변지께 예배하는 것은 저 국토에 태어나려는 뜻을 내는 까닭이다.”

어떻게 찬탄하는가?

“구업(口業ㆍ입)으로 저 여래(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저 여래의 광명ㆍ지혜ㆍ덕상처럼, 저 명호의 뜻처럼 여실하게 수행하여 상응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사마타(止)ㆍ위빠사나(觀) 함께 닦는 염불

어떻게 발원(作願)하는가?

“일심으로 전념하여 마침내 안락국토에 왕생하길, 마음으로 항상 발원하여 여실하게 사마타(止)를 수행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어떻게 관찰하는가?

“저 국토를 지혜로 관찰하고 정념(正念)으로 관하여 여실하게 위빠사나(觀)를 수행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저 국토를 관찰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저 불국토의 장엄공덕을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 아미타부처님의 장엄공덕을 관찰하는 것이요, 셋째 저 모든 보살들의 장엄공덕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침내 어떻게 회향하는가?

“일체 고뇌하는 중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발원ㆍ회향을 우선으로 삼아 대비심을 성취하는 까닭이다.”

 

정토왕생하여 성불하는 목표 확립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세친보살의 <왕생론>이 후대의 정토문 건립에 끼친 공헌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왕생을 발원하고 신속히 성불하겠다는 수행자의 목표를 확립한 것이고, 둘째는 정토왕생의 다섯 가지 수행법을 오념문으로 제시한 것이다.

관찰문은 국토와 부처ㆍ보살 등 29가지 장엄을 관찰하여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작원문은 ‘발원’이며, 찬탄문은 칭명의 ‘행’이므로, 오념문은 ‘신(信)ㆍ원(願)ㆍ행(行)’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오념문을 축소하면 곧 부처님의 본원력을 관하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념하는 ‘본원칭명(本願稱名)’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세친보살은 용수보살이 <십주비바사론> ‘이행품’에서 설한 아미타불 본원칭명의 골수를 더욱 체계적인 이론과 구체적인 행법을 곁들여 계승하였다. 목표상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대승에서 말하는 이 땅에서 불퇴전을 얻는 것을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신속하게 성불하는 것으로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세친보살을 통해 정토법문은 일반적인 대승법문의 목표(발보리심)와 방법(육도만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발전하게 된 셈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저술하며 소승법 널리 펴

이렇듯, 정토종에서 차지하는 세친보살의 위상은 중흥조라고 칭해질 정도로 대단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그의 수행이력은 유식 법상종(法相宗)의 개창조이자, 대승불교의 확립자로 더 유명하다.

〈바수반두법사전(婆槃豆法師傳)〉에 따르면, 세친보살은 간다라의 장안국(페샤와르, 현 파키스탄령)에서 카우시카(Kauika)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은 유가유식(瑜伽唯識)의 개조인 무착(無着, Asanga)보살이었다. 세친보살은 어렸을 때는 바라문으로서 인도철학을 섭렵하고, 출가 후에는 다양한 부파의 사상들을 공부하여, 당시에 가장 큰 세력 중의 하나였던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리 및 비판하는 〈아비달마구사론〉을 저술하였다. 처음에는 소승법을 배워 대승법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설이 아니라고 비방까지 하였고, 그 후 아유사국(阿踰&#38349;國)에 가서 절을 짓고 소승법을 널리 펴게 된다.

 

‘대승 비불설’ 주장하다 참회

그런데 세친보살의 맏형인 무착보살이 아우가 소승법을 익혀 대승경전을 비방한다는 말을 듣고는 악도(惡道)에 떨어질 그 과보를 근심한 나머지 사람을 아유사국으로 보내 아우에게 “내가 병세가 매우 심하니 급히 본국으로 돌아오라”고 전했다.

세친보살이 그 말을 전해 듣고는 즉시 장안국에 돌아와 병 문안(問安)을 드렸다. 형이 자기를 그처럼 염려해 주는 것에 무한한 고마움과 송구함을 느낀 세친보살은 형에게 사과를 드리고는 대승법을 해설해달라고 청했다. 무착보살이 간략히 대승법의 요의(了義)를 설명해주니, 세친보살이 즉시 대승의 종지를 깨달아 소승법보다 훨씬 수승한 법문임을 알게 되었다.

세친보살은 대승법을 비방한 죄가 극심함을 알고는 “전일에 이 혀로써 대승법을 비방했으니, 이 혀를 칼로 끊어 참회하면 그 죄업이 소멸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착보살은 이렇게 방편을 일러주었다. “너의 그 죄업은 혀를 천 번을 끊는다 해도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니라. 네가 만일 대승을 비방했던 그 혀로써 이제부터는 대승법을 찬탄하게 되면 그 죄업이 소멸하게 될 것이다.”

 

‘유식삼십송’ 등 대ㆍ소승론 천 부 저술

이로부터 세친보살은 <유식삼십송> <유식이십론> <대승백법명문론> 등 많은 대승론을 지어 그 부수가 무려 500부(部)에 달했다. 그 전에 소승론 지은 것을 합치면 1,000부에 가까운 방대한 논을 지어 세상 사람들이 천부론주(千部論主)라고 불러 찬탄했을 정도다.

세친보살은 유식을 닦는 요가(瑜伽)수행자이자 대승 경론을 강의하고 저술하는 논사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당신의 주된 수행법은 염불이었으며 일단 윤회계를 벗어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극락정토에 화생하는 구도자들은 삼악도(三惡道)가 없는 수승한 공부환경에서 누구나 불퇴전지 보살로서 5신통을 구족하며 아미타부처님 법문을 듣고 빨리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성불의 수기(授記, 예언)를 받기 때문이다.

세친보살이 대승경전을 두루 살펴 본 후 정토법문에서 크게 발심이 되어 극락세계를 극구(極口) 찬탄하고는 그곳에 왕생하기를 지극히 간절하게 발원해 <왕생론>을 찬술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는 일생을 아유사국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여 정토왕생에 대한 발원을 권하셨으며, 80세를 일기로 서방정토로 왕생하셨다.

 

대승의 조사들이 선택한 가장 쉬운 성불법

이와 같이 대승법에 밝은 조사스님 가운데 왕생발원을 하지 않은 분은 거의 드물다. ‘제2의 석가’로 불린 용수보살이 <십주비바사론>과 <지도론> 등 정토에 관한 가르침과 극락세계를 찬탄하는 정토예찬문 등을 저술하였고, 대승불교의 선구자인 마명보살 역시 <기신론>에서 정토에 관한 가르침을 써 놓으셨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정토법이란 대승불교의 귀추(歸趨)가 되는 법문이라 할 수 있으며, 극락세계란 정토 중에도 가장 훌륭한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세친보살의 염불관은 유식사상의 대가답게 “법신(法身)과 상응하여 하나가 된다”고 하는 법신염불의 성격을 띠면서도, 용수보살의 뒤를 이어 가장 쉽고 빨리 윤회를 벗어나는 길(易行道)을 제시하였다. 즉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에 왕생하는 가장 빠른 길, 순풍에 배를 타듯이 성불을 이루는 가장 손쉬운 길, 그것이 바로 염불수행임을 확고히 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과 대만, 일본 등 대승불교권에서 정토법문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불교에서는 유독 정토법문이 홀대를 받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수승한 방편인 염불법이 살아나야 불자들의 신심도 살아나고 선종도, 한국불교도 살아날 수 있음을 자각하고 각 종단에서는 염불수행의 대중화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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