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무문관 일기

〈백담사 무문관 수행일기〉 출간한 정휴 스님

“누구나 세간을 살면서 목표를 갖고 오르기 위한 지혜는 있으면서 정작 필요할 때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한 번쯤은 스스로를 내려놓으라. 일상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좌절하고 고통에 직면할 때 단 3일이라도 좋으니 무문관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보라”  

저자, 2010년 11월 19일 무문관 입실

새로운 변화 위해선 禪的 가치가 중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기안에 존재

“내면 통로 열면 자성 근저 이르게 해”

 

글 정휴 스님 / 우리출판사 펴냄 / 1만 6천원

2010년 11월 19일, 조계종 7선 종회의원을 지낸 불교계 대표적 문장가인 정휴 스님(사진·금강산 영은암 회주)은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홀연히 백담사 무문관 동안거 결제에 들어간다. 과거 스님의 화려한 조계종단의 정치적 이력 때문에 당시 주변에서는 의아해 했다. 기득권층에 주로 안주했던 스님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간혹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독한(?) 결심은 바로 편안하고 반복된 일상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였다. 묵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진통을 치루면서, 그동안 몸에 밴 낡은 인습의 틀을 털어내고자 했다.

한평 남짓한 독방서 노구를 이끌고 3개월간 치열히 정진한 구도 역정과 선적인 사유가 최고의 문사(文士)다운 수려한 필체로 버무려져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제목은 <백담사 무문관 일기>이다. 책을 읽다보면 오랜 종단 정치 인생에도 선교(禪敎)를 두루 섭렵한 수행자다운 내적 성찰의 진한 깨달음이 물씬 전해진다.

오랜 개인적 인연 덕분에 3개월간의 무문관 정진 직후 백담사서 만난 정휴 스님은 당시에 심경을 이렇게 고백했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통이나 인습을 타파하고 새 것을 추구할 깨어 있는 정신이 필요하며, 그동안 몸과 마음으로 익혀온 그릇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정신은 새 것을 추구할 때 삶은 향상되고 심화됐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반복된 일상 속에 갇혀 있었고 몸에 익힌 그릇된 습관과 인습으로 인해 정체돼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나를 정신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고는 끝없는 나락으로 침몰될 것 같았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 자기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것도 마음이고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선적(禪的) 가치가 필요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방(禪房)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즉 내적 성찰과 자기를 탐구하는 화두를 들고 비본질적인 것을 털어내지 않으면 새롭게 태어날 수 없음을 저자는 깨달은 것이었다. 그가 바로 추운 겨울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백담의 산속으로 들어간 연유다.

<백담사 무문관 일기>는 한마디로 한 수행자의 치열한 자기 성찰을 담아낸 구도 일기이다. 오랜 사유의 시간들이 응축돼 꿈틀거리는 선(禪)의 예지와 직관을 담담히 풀어낸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젊은 시절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해 선의 향기가 가득 묻어나는 시와 소설로 일군의 독자층을 거느렸고, 불교계 신문과 방송의 주요 요직을 맡으며 불조(佛祖)의 혜명을 밝혔다. 또한 한때는 종단 정치에 관여하며 조계종단의 안정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그렇게 한바탕 꿈같은 세월을 풍미한 스님은 이제 금강산 자락 조그만 암자에 터를 잡고 더 큰 세상을 향한 비상을 꿈꾼다.

정휴 스님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틀과 인식 속에 갇혀서 깨달음을 논의하는 선은 대중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내 자신이 육십 평생을 살면서 익혀온 나쁜 습관과 또 그 것을 통해 몸에 배인 타성을 걷어내야 나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변화시키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책 속에는 스님이 몸소 무문관서 깨달은 진귀한 사유들로 가득하다. “사유가 깊어지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채우고 싶어 하는 곳을 비워야 소중한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숭고한 정신은 고통 속에서 다듬어 지고 깨달음은 번뇌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진이 길어지고 응시가 깊어지자 안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밝아지자, 내 안에 닦아도 사라지지 않은 어둠이 있고 언젠가 밖으로 뛰쳐나올 소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등등. 선적 체험과 삶에 대한 깊은 응시를 풀어내서 일까? 서문부터 책장이 녹록히 넘어가지 않는다. 타성에 젖어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스님의 선기어린 글들은 정진을 하게 만드는 발심수행장과 같다.

저자가 동안거를 보낸 백담사 무금선원 무문관 전경.

정휴 스님은 “누구나 세간을 살면서 목표를 갖고 오르기 위한 지혜는 있으면서 정작 필요할 때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며 한 번쯤은 스스로를 내려놓으라”고 권했다. 이어 “일상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좌절하고 고통에 직면할 때 단 3일이라도 좋으니 무문관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어보라”고 조언한다.

책 속에서 저자가 소개한 무문관 일상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어서 인지 자못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정휴 스님은 책 속에서 “무문관은 감옥의 독방과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출입하는 문을 잠가 놓기 때문에 나갈 곳이 없다. 독방에 갇혀 있지만 사색의 공간은 무한대로 확대됐다. 그만큼 나를 살피는 시간이 많아졌다. 3개월동안 나를 엿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듣는 대상이 없어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었다. 먼저 나름대로 시간표를 만들어 3개월동안 실행하기로 했다. 시간표는 좌선 시간에 많이 할애했고, 화두는 ‘시심마(是甚?)’이다. 즉 ‘내가 누구인가’하고 묻는 근원적 물음이었다”고 회고한다. 창문 한쪽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오전 11시에 들어오는 한끼의 공양만 먹고 버틴 석달동안 저자는 어떤 깨달음에 천착했을까? 그 솔직한 심경도 책 속 말미에 피력했다. “차 한잔을 놓고 3개월간 참구한 것들을 점검했다. 사유는 깊어졌지만 밑바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의심이 화두가 되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정신이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물건이라면 노력과 수련, 그리고 연마를 통해 만들고 싶은 완제품을 만들지만 정신이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과 달리 완성될 수 없다. 정신 세계의 완성이란 우리가 두고두고 추구할 이상이지 현실은 아니다. 거듭거듭 새롭게 형성되고 태어나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백담사 계곡에 펼쳐진 돌탑의 위용이 신비롭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마지막 자락서 거듭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금강산 자락의 영은암에 다시 가부좌를 틀었다. 모든 인식의 틀을 내던져 버리고 ‘이 뭣고’만 남긴 것이다. 일년이 만년이 되는 화두일념까지는 아니라 해도 알음알이를 내려놓고 보니, 바람이 모든 것을 쓸고 간 듯한 빈터가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 감초처럼 간간히 소개된 국내외 선사들의 자유로운 열반에서 저자는 완성된 수행자의 삶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책 속에 소개된 선사들의 비범한 일화는 글 읽는 맛을 돋워주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가령 황벽선사에게 불교의 근본 대의를 묻고 또 물으며 하루 20봉씩 3일간 60봉의 몽둥이 세례를 당한 임제선사, 보리수 나뭇잎을 잡고 선채로 입적하며 입체적인 열반을 보여준 승가란제 등의 일화는 독자들의 안목과 선적 지평을 넓혀주는 또다른 선적 체험이다. 이 책은 이렇듯 한 수행자의 자기 관조와 성찰, 생사를 초월해 수행자의 삶을 완성한 대선사들의 정신세계까지도 선적 필체로 잔잔히 담고 있다.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단풍이 뚝뚝 떨어질 곧 다가올 이 가을, 저자의 바람대로 장소가 어디든 단 3일만이라도 무문관 수행을 훌쩍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낡은 구습의 틀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저자 정휴(正休) 스님은?

밀양 표충사로 동진 출가한 스님은 용주사 강원서 전관응 강백에게 능엄경과 기신론을 배우고, 청암사에서 강고봉 강백에게 선적 낭만과 푸른 직관을 배우며 사교과를 수료했다. 이후 청암사, 원주 구룡사, 구미 해운사, 서울 호압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금강산 화암사 경내에 ‘영은암’이란 토굴을 짓고 운수(雲水)로 머물고 있다. 약력으로는 직지사, 동화사, 불국사, 법주사 강사를 역임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 및 주간 주필, 사장·법보신문 주간 주필 및 사장·불교방송 초대 방송 상무를 역임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과 종회의원 7선을 역임하기도 했다.

특히 1971년 조선일보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 데뷔한 이래 불교계 대표적 문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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