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 소유자 아닌 ‘관리자’
부모는 자녀 소유자 아닌 ‘관리자’
  •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 승인 2017.09.2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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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20

‘자녀 사랑’ 생각하는 부모
관심 보이기 위한 행동이
자녀에게 간섭 될 수 있어
관계 전환 없인 해결 안 돼

어느 상담과정에서 한 내담자는 그의 어머니가 사사건건 간섭을 한다면서 그 중의 한 사례를 제시했다.

어머니 : 아들아, 커피 마실래?

아들 : 커피 둘, 설탕 둘.

어머니 : 커피 하나, 설탕 하나.

아들 : 커피 둘, 설탕 둘이라니까.

어머니 : 커피 하나, 설탕 하나가 좋아.

아들 : 아니에요. 커피 둘, 설탕 둘이 좋아요.

다른 내담자는 딸의 행동이 못마땅하다면서 불평을 했다. 그녀의 딸은 엄마가 사다준 옷은 입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편한 옷만을 즐겨 입는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사준 옷을 입으라고 권하면 “엄마는 엄마가 좋아하는 옷만 입으라고 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편한 옷을 입을래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지만 여기엔 부모의 관심이 자녀에게는 간섭으로 전달됨을 알 수 있다. 이 사례는 같은 상황을 놓고 부모와 자녀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우이다. 부모의 관점은 자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요, 자녀의 관점은 부모로부터 ‘간섭’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다. 관심은 ‘가치가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요, 간섭은 ‘관계없는 일에 부당하게 참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위의 사례에서 부모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왜 자녀에게는 부당하게 참견하는 말로 들리는 것일까? 사랑으로 전달될 수는 없을까?

흔히 ‘관심도 지나치면 간섭이 된다’는 말이 있다. 때때로 부모의 지나친 관심은 자녀가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부모는 자녀가 하는 일이 늘 염려스럽다. 뭔가 잘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바로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자녀에게 전달한다. 결국 부모의 불안한 마음이 자녀에게 투사되기 때문에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관심이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모의 관심일까 간섭일까

필자도 이런 사례를 보면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밤늦게 오지 마라” “남과 싸우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면 “어머니, 제발 절 그냥 좀 놔두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라며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필자도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가끔 이런 저런 충고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아빠, 그런 말씀 안 하셔도 저희들이 다 알고 있어요”라며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녀들은 자발적이고 동기화된 개인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부모의 관심은 오히려 자녀의 사고를 방해하고 방어적이 되도록 조장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아적 의존상태에 머물게 한다.

간섭과 관심은 관계에서 온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면서 부모-자녀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이 일생동안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자녀 간의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하늘이 맺어주었다고 하여 천륜(天倫)이라고 부른다. 이런 부모-자녀관계는 사후에도 제사를 모시면서 이어진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그 관계는 차츰 소원해지고 있다. 이제 부모와 자녀를 묶는 끈은 서로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부모가 자녀를 어떤 의식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관심이 되기도 하고, 간섭이 되기도 한다. 관심은 애착과 밀법한 관계가 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애착을 나타내는 흔한 표현은 ‘나의’와 ‘내 것’이다. 이 말은 소유한 자와 소유 대상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내 자식, 내 돈, 내 집, 내 마음, 내 직업, 내 신념 등 모든 것에 애착이 있다는 것으로 소유자와 소유물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관계는 전적으로 우리 인식 내부에서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소유하고자 시도할 때 우리는 미래에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사실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나타나 스스로에게 정서적 고통을 준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소유 의식은 ‘간섭’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간섭하는 관계가 된다. 이러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그들 삶의 행복과 직결된다. 부모의 의식이 관심으로 나타나면 자녀가 행복하게 될 것이요, 간섭으로 나타나면 불행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한다. 반대로 자녀들이 잘못되었을 때는 그 아픔에 애간장이 다 녹는다. 자녀의 기쁨은 곧 부모의 기쁨이요, 자녀의 슬픔은 곧 부모의 슬픔이다. 부모는 자녀들과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하는 관계적 운명이다.

인간관계의 핵심인 ‘사랑’에는 피할 수 없는 관계 요소가 있다.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친밀감(intimacy)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편안한 존재로 느끼는 심리적 상태로써 서로를 잘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하며 긍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행동특성이다. 열정(passion)은 사랑의 뜨거운 측면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연인 간에 신체적으로 흥분되어 들뜨게 하며 상호간에 일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헌신(commitment)은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과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랑의 요소에서 보듯이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인 친밀감, 열정, 헌신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관계요소들이다.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행복은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이처럼 행복은 타인과 긍정적 관계를 통해 일어난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된다.”

행복의 주된 원천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관계믿음’을 가질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타인과 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성숙한 나눔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인간관계에 투자해야 한다. 특히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심화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유에서 무소유의 관계로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행복의 바탕이 되는 진실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초연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연습을 하면 최소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약간이나마 초연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첫째, 부모는 자녀에게 소유자에서 관리인으로 관계를 바꾼다. 부모가 자녀에게 지나치게 애착이 심한 경우에 이 방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부모에게 속하는 자녀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가장 높은 차원의 관점, 즉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부모는 자녀를 소유할 수가 없다. 그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는 오로지 ‘신탁 관리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자녀의 경우는 성장하고 출가하여 독립할 때까지 관리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둘째, 부모는 자신의 에고를 내려놓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부모가 어떤 특정한 의견이나 관점을 고수할 때 사용한다. 위의 사례에서 커피나 옷 선택의 경우 부모의 가치를 고수하기보다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너의 관점이 그렇다는 점은 받아들이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가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좀 더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라고 말함으로써 자녀를 무장 해제시킨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어느 관점도 완전히 옳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드는 한 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오로지 주는 연습을 한다. 부모는 늘 자녀에게서 무언가를 원하며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우에 사용한다. 무언가를 원할 때 부모는 이미 자녀가 부모의 뜻에 따라 하기를 바라는 특정한 행동에 애착되어 있다. 우리는 대부분 태어난 순간부터 이 습관을 배운다. 말하자면 “줘, 줘, 줘”라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돌려받기를 바라지 않으면서 ‘의식적으로 주는 연습’을 함으로써 이 습관을 약화시키고 결국 끊도록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평생 주는 것은 습관화되어 있지만 늘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날 일부 청소년들이나 성인들의 무자비한 폭행사건을 보노라면 그들이 성장과정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사랑을 키우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부모-자녀관계는 생명이 있는 한 이어져야 하고, 끝내는 그 관계가 무소유의 자유로움으로 나타나야 한다.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느긋하게 지켜보는 일, 이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는 최대의 관심이다. 결국 소유관계에서 무소유의 관계로 발전될 때 삶은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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