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행복의 문법

삼청동 법련사는 법정 스님이 서울에 오시면 머무르던 절이었다. 스님은 민폐라며 신도 집에 머물지 않았다. 그러니 법정 스님과 볼 일이 있는 일간지 기자나 나 같은 출판사 담당자들은 법련사로 가서 스님을 뵀다. 그때의 법련사는 지금과 같은 현대식 건물이 아닌 한옥의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스님께서 파리에 길상사를 창건하려고 동분서주하고 계실 때였다. 스님께서 연락을 주시어 나는 법련사로 갔다. 조그만 방에는 스님과 여장부 같은 분위기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스님의 담당기자인 J일보의 문화부장은 보이지 않았다.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다.

“파리에 가보니 절이 하나 없어요. 유학생도 많고 교포도 제법 되는데 마음을 의지할 만한 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절을 하나 짓기로 하고 유럽의 수도원을 돌아봤어요.”

일러스트 정윤경.

스님께서는 불자는 물론이고 종교가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개방하여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절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절을 짓는데 드는 경비가 문제였다. 스님은 원고료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시작하려 했으나 예상치 못한 많은 경비는 현실적인 난제였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 분이 말했다.

“제가 벽돌 한 장 값부터 절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비용을 다 희사하겠습니다. 스님,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절을 짓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모아 짓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여러 사람들에게 길상사가 내 집 같을 것입니다.”

“아, 스님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 나는 파리 길상사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스님께서 그런 일까지 내게 말씀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파리를 가게 된다면 길상사에 묵으라고 권유하셔서 절이 예정대로 창건됐나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길상사 창건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을 스님이 돌아가신 지 7년째가 되는 최근에야 알았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시는 재불 화가 방혜자 화백께서 내가 사는 산방으로 찾아와 길상사 창건 일화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방혜자 화백께서는 스님의 원고료에다 파리에 거주하는 불자들의 보시는 물론이고 자신의 그림을 팔아 길상사 창건 작업을 도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해주셨다. 그 여자 분이 길상사를 지어주었더라면 선뜻 마음을 낸 파리에 거주하는 분들의 걱정과 고생은 면했을 터. 그런데 스님은 왜 사양했을까. 불가에는 자작자수(自作自受)란 말이 있다. 행복이란 스스로 지은 만큼 스스로 받는다는 말이다. 불행도 마찬가지이리라. 스님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가야 할 행복이 한 사람에게 가는 것을 경계하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공짜를 좋아하는 세상에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이러한 ‘행복의 문법’까지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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