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찰 엿보기- 킨카쿠지와 료안지

킨카쿠지
도다이지(東大寺), 기요미즈데라(淸水寺)와 함께 외국인 방문객의 일본 명소 인기 랭킹 상위권에 들어가는 킨카쿠지(金閣寺)는 눈부시게 금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전에는 여름이나 겨울에 비교적으로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요즘엔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방문객이 킨카쿠지를 찾아간다. 특히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중국계 방문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한자 발음으로 ‘금각사’, 다음 회에 소개할 사찰인 ‘은각사(銀閣寺)’라고 표기하는 두 사찰이 일본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면 똑같은 ‘긴카쿠지’가 된다. 그래서 구별하기 위해 금각사를 ‘킨카쿠지’라고 표기한다.

눈부신 금빛 전각의 ‘金閣寺’
방화로 소실… 1955년 복원
미시마 유키오 소설 배경돼
료안지, 가레산스이 정원 전형
모래·돌만으로 山水를 표현해

킨카쿠지 정식 명칭이 로쿠온지(鹿苑寺)라고 한다. 현재 킨카쿠지가 있는 곳이 원래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 3대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58~1408)의 별장 기타야마전(北山殿)이 있었다. ‘로쿠온’은 요시미쓰의 법호인 ‘로쿠온인(鹿苑院)’에 유래된다. 킨카쿠지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 에도시대에 들어서다. 요시미쓰는 황실이 남조(南朝)와 북조(北朝)로 대립했던 것을 통일시키고 막부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기타야마전 이전에는 귀족 가문의 별장, 그리고 별장 안에는 사찰도 있었던 이 땅에 14세기 말에 요시미쓰가 기타야마전 건립을 시작하고 여기서 천황을 초대해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기도 했다.

1408년에 요시미쓰가 세상을 떠난 후 기타야마전의 대부분이 해체되어 다른 사찰로 옮겨졌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훗날 킨카쿠라고 불리는 사리전(舍利殿)과 정원이었다. 이 사리전을 중심으로 창건된 사찰이 바로 킨카쿠지다. 1420년 무렵에 덴류지 개산조사인 무소국사(夢窓國師)를 권청개산(勸請開山)으로 기타야마전이 로쿠온지가 되었다고 전한다(권청 개산이란 실제 개산이 아니라 신앙 상 과거의 사람을 개산으로 할 때 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3층으로 구성되는 킨카쿠는 2층과 3층에 금박을 입힌다. 금박이 없는 호수인(法水院)이라고 불리는 초층은 천황이 거주하는 고쇼(御所) 건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안에 보관석가여래상, 요시미쓰 초상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다. 연못인 교코치(鏡湖池) 뒤에 있는 킨카쿠는 초층의 창문이 열려 있어 그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다. 2층은 무가(武家) 주택 양식의 영향을 받은 조온도(潮音洞)라고 하는 관음상과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는 공간이다. 3층은 굿쿄초(究竟頂)라고 불리는 선종 양식으로, 한가운데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다.

킨카쿠를 대표로 하는 무로마치 시대에 꽃 피는 문화를 기타야마 문화라고 부른다. 기타야마 문화는 황실의 전통 문화와 대륙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특징으로 킨카쿠를 보면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창건 후 큰 전란이나 화재가 있으면서도 버텨오고, 살아남은 킨카쿠이었지만, 1950년에 방화로 건물과 안에 있던 문화재 6점이 소실되었다. 범인은 킨카쿠지의 21세 학승이었다.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소설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킨카쿠지>인데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다행히 메이지 시대에 킨카쿠를 해체·수리했을 때의 기록이 남아 있어 이것을 기반으로 1955년에 복원되었다. 또 1987년에 보통 금박보다 5배 두꺼운 금박을 입혔다.

킨카쿠는 신록과 잘 어울리고 단풍과도 잘 조화된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이 눈이 내리는 킨카쿠다. 교토는 겨울이 몹시 추워도 눈이 자주 내리지는 않아서 눈 내리는 날의 킨카쿠 풍경을 볼 기회가 별로 없지만 독자 분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료안지
‘일본의 미(美)’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의 하나가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다. 일본 정원 양식의 하나인 가레산스이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으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이다. 무로마치 시대에 수입한 중국 산수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특히 선종 사찰에서 만들어지고 발달했다.

일본어로 가레산스이를 검색하면 사찰 이름이 속속 나오는데 일본 여행 때 짧은 시간에 일본의 아름다움인 가레산스이를 즐기기 위해 정원을 하나만 고른다면 나는 료안지 석정(石庭)을 추천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레산스이라는 것도 물론이지만, 료안지는 킨카쿠지에서 가까워 일본 명찰(名刹)을 한꺼번에 돌아다닐 수 있고 예약하지 않고도 편하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료안지 자리에는 10세기 말에 천황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찰이 있었고, 12세기 중반에 후지와라 가문의 귀족이 여기에 산장(山莊)과 사찰을 지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 장군을 보좌하는 관령(管領) 직을 맡은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 1430~1473)가 이 땅을 양도받아 1450년에 기텐겐쇼(義天玄承, 1393~1462) 선사를 개산으로 료안지를 건립했다. 가쓰모토는 기텐겐쇼 선사에 깊이 귀의했었다. 두 분의 관계는 마치 북송(北宋) 용안산(龍安山) 도설사(兜率寺)의 종열(從悅)선사와 재상(宰相) 장상영(張商英)의 깊은 관계와 비슷하다고 해서 사찰 이름이 료안지가 되었다.

료안지는 1467년에 시작한 교토를 중심으로 벌어진 큰 전란으로 소실되었다. 불행하게도 가쓰모토는 그 전란 가운데 중심 인물의 하나였다. 가쓰모토가 죽은 후 가쓰모토 아들이 사찰 재건에 나섰다. 석정은 그 때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나무도, 풀도, 꽃도 없고, 하얀 모래(白砂)와 돌만으로 구성된 약 250㎡ 넓이인 이 석정은 수수께끼 많은 신비로운 정원이다.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고 무슨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미스터리이다. 먼저 고리(庫裏)에 들어가 입장료를 지불한 후, 석정으로 나아가면 석정 동쪽이 나온다.

석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있는 합쳐서 15개의 크고 작은 돌이 배치되어 있다. 특별히 귀한 명석(名石)도 아닌 이 돌들이 산이나 다리 등 무엇을 상징하는지도 밝혀지지 않고, 간소하고 추상적인 조형으로, 그 절묘한 배치가 매력적이다. 일본인들이 15개의 돌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해석하려고 했다.

유명한 것이 호랑이 새끼가 강을 건넌다는 설이다. 새끼 중 한 마리가 사나워서 어떻게 새끼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면 사나운 새끼가 다른 새끼를 잡아먹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라는 중국 고사에 유래되는 것인데 돌이 마치 어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으로 나타난 설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석정이 표현하는 것을 추구할 필요는 없고, 그냥 마음대로 관상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추상적이면서 해석이 어려운 석정이지만 긴장감이 없고 편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것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 때문이다. 낮고 갈색인 아부라도베이(油土?)라고 불리는 이 흙담은 자체가 유명하다. 유채나 찹쌀을 씻고 생긴 물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이 흙담이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고하게 되고 방수성(防水性)도 높아진다고 한다. 멋지면서도 실용성이 있는 담장이다. 만약 담장이 높고 흰색이었다면 석정 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개성적인 정원으로 알려진 료안지 석정이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20세기 중반부터였다. 서양의 작가나 철학자 등 문화인들이 료안지 석정을 방문해 칭찬한 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정원이 되었다. 특히 1975년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료안지 석정을 방문해 크게 칭찬한 것이 유명하다.

석정 북쪽엔 방장(方丈)이 있다. 방장 남쪽에 있는 긴 툇마루에 앉아서 석정을 바라볼 수 있는데 항상 사람이 많고 반드시 외국인 방문객이 있다. 종교도 다르고 문화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 석정을 보고 느끼는 것, 석정을 관상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국경을 넘어 석정을 즐길 수 있는 것 차제가 좋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인 ‘킨카쿠지(金閣寺)’의 모습. 정원 연못에 비친 금각의 모습이 아름답다.
료안지의 석정 전경. 하얀 모래와 돌로 산수를 표현하는 일본 가레산스이 정원의 전형을 보여준다.

킨카쿠지 료안지 답사 안내
대중교통으로 킨카쿠지에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될지 고민할 것이다. 킨카쿠지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이 킨카쿠지마에(前)이다. 킨카쿠지미치(道) 정류장에서 내리고 걸어가도 된다.

나는 오사카 우메다역에서 한큐를 타고 사이인(西院)역에서 내리고 205번 버스를 타고 킨카쿠지미치에서 내린다. 이런 식으로 가면 버스를 타는 시간이 길지 않아 비교적으로 편하다. 킨카쿠지에서 료안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인데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료안지에서 다른 곳에 갈 때는 버스도 있고, 10분 정도 걸어가면 노면전차 료안지역이 있다. 료안지에서 이전에 소개한 닌나지(仁和寺)도 가깝다.

킨카쿠지는 임제종 쇼코쿠지(相國寺)파, 료안지는 임제종 묘신지(妙心寺)파에 속하다. 쇼코쿠지, 묘신지는 킨카쿠지, 료안지 처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가볼만한 사찰이다. 쇼코쿠지, 묘신지에서 운룡도도 볼 수 있다. 또 쇼코쿠지에 있는 조텐카쿠(承天閣) 미술관에서는 킨카쿠지의 장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장벽화는 에도 시대의 유명한 화가 이토 자쿠추(伊藤若?, 1716~1800)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다. 좋은 전시가 많은 이 미술관도 가 볼만하기에 추천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