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어린 사미의 법문

“아기 용이 어리다 해서 업수이 보지 말라. 아기 용도 능히 구름을 일으킨다. 번개를 치고, 천둥을 울리고,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한다. 사미가 어리다 하여 낮추어보지 말며, 왕자가 어리다 하여 낮추어보지 말라. 나이가 어린 사람을 낮추어보지 말라.”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는 왕이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뉘우치며 부처님 법을 지키기로 한 아육왕(阿育王)입니다. 아육왕은 부처님 법으로 천하를 다스린 영웅이었습니다. 8만4천의 절과 8만 4천의 보배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실천한 대왕이었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는 아기 용을 어리다 해서 무시할 수는 없지. 사미와 왕자의 나이가 어리다 해서 낮추어 보아서는 안 돼. 부처님 가르침이 옳고말고.’

부처님 말씀을 따라 사미 스님을 존경해 온 아육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신하와 호위병을 거느리고 행차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사미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아주 어린 스님이었습니다.

“수레를 멈추어라!” 수레를 멈춘 왕은, 곧 타고 가던 수레에서 내렸습니다. 사미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숙여 예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합장을 한 채 말했습니다.

“사미 스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왕이 스님께 예배를 올리더라는 걸 남에게 얘기하지는 마십시오.”

왕이 나이 어린 사미 스님들에게 예배 올리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는 신하가 있어서, 말을 막으려고 하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미는 몸을 작게 하더니, 손가락만큼 작아져서, 가지고 가던 물병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대왕님, 소승이 물병 속에 들어간 걸 분명이 보셨지요?”

사미는 물병 속에서 물병을 똑똑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그러던 사미가 물병에서 나오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대왕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이 사미가 물병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걸 남에게 얘기하지는 마십시오.”

사미의 말에 대왕은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 사미 스님 법문에 내가 깨달았다. 옳은 일에는 남의 눈치 볼 거 없다는 법문이군. 저 사미 스님이 대덕이라 불리는 스님들과 똑같은 법력을 지녔구나!”

용기를 얻은 아육왕은 어린 사람들을 어른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데에 더욱 힘을 기울였습니다. 어린 사미 스님을 큰 스님과 똑같이 예우하는 일에 더욱 힘썼습니다. 자주 대궐 안에다 큰 잔치를 차리고, 수많은 스님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이때 대왕은, 향기가 나는 물에 몸을 씻은 뒤 새 옷을 갈아입고 누각에 올라 스님들을 맞았습니다. 큰 스님과 사미스님에게 똑같이 예배를 올리고, 똑같이 대접했습니다. 큰 스님, 사미 스님들께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스님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아육왕을 장한 임금이라며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모두 불만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린애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지나치셔.” “나도 같은 생각이요.”

신하들이 주고받는 말이었습니다. 야사라는 신하는 그 중에서도 불만이 컸습니다. 왕의 행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왕에게 여쭈었습니다.

“대왕님의 처사는 참으로 불만입니다. 왜 귀하신 대왕님이 어린애들에게 머리를 굽히십니까?”

왕은 껄껄 웃으며 신하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짐이 숙제를 내겠다. 모든 신하들은 죽은 짐승의 머리 하나씩을 구해 오도록 하라. 그리고 신하 야사는, 죽은 사람의 머리 하나를 구해 오라!”

왕명을 받은 신하들은 짐승의 머리 하나씩을 구해 왔습니다. 쇠머리, 돼지 머리, 양의 머리 등 가축의 머리였습니다. 야사는 힘을 들여서 죽은 사람의 머리 하나를 구해 왔습니다. 그러자 다음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오라!” 신하들이 시장으로 갔습니다. 짐승의 머리는 그 자리에서 팔렸지만 사람의 머리를 살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머리를 팔러 다니다니, 당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 귀신 인가요?”

사람들은 야사를 보고 욕을 하며 따졌습니다. 아무리 해도 사람의 머리를 팔 수는 없었습니다. 야사는 왕에게 가서 보고를 올렸습니다.

“대왕님. 죽은 사람의 머리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왕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살 사람이 없으면 거저 주고 오지, 그랬어?”

“거저 가지라는 말도 해봤지만 가져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야차 귀신이 아니냐며 욕을 했습니다.”

왕은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의 삶은 고귀하지만, 죽은 뒤 그 주검은 가장 쓸모가 없다. 임금인 내가 죽으면 내 주검, 내 머리도 그럴까?”

야사는 엎드려서 왕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황공하오나, 대왕님의 주검도 그럴 것이옵니다.”

“내 주검의 머리도 그처럼 천하게 될 것이면 내가 어린 스님들에게 머리 숙이는 것에 불만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쓸모없게 될 머리를 숙여서 나라의 복을 짓고 있는 걸. 사람은 같은 거야. 나이가 어리다 해서 지위가 낮다 해서 차등을 두는 건 안 돼. 부처님 가르침이 그렇지 않거든.”

대왕의 말씀에 야사는 크게 깨닫고 삼보를 공경하게 되었대요. 어린이 사랑이 부처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았을 테죠?

〈법원주림 경승편(法苑珠林 敬僧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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