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하다’는 말이 있다. ‘징그럽다’의 전라도 방언이다. 징그럽게, 독하게 마음을 다잡아 간절심으로 정진(精進)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어제 대구에서 찾아온 거사들에게 들려준 내용을 간추려 옮겨본다. 불자(佛子)들은 일상생활에서 비우기, 버리기, 나누기를 실천 덕목으로 삼아 생활화해야 한다.

비우기는 마음속의 흔들림, 헐떡임을 줄이며 비워내는 수행법이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노력이다. 천 가지 만 가지로 흩어지는 마음을 추슬러 단순화하며 지나친 욕심을 하나 둘씩 내려놓으며 마음을 비워가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 비우고 내려놓기가 반복되면 어느새 개운한 느낌, 잔잔한 기쁨을 느낄 터이다.

‘징하게’ 마음을 모아 정진한다면
누구나 행복·자유를 누릴 수 있다


미운 감정도, 화냄도 길들이며 우선은 내려놓기, 지우기, 비우기를 거듭하다보면 온갖 유혹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거친 말과 행동에서 한 박자 늦추고 두어 걸음 물러나 생각을 비우면 어둠이 빛이 되는 것이다. 후회할 일이 줄어들고 망신당할 일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부부사이의 전쟁이 평화로 바뀌고 가족 간의 대립이 기대와 신뢰로 변해가는 것이다. 친구와 이웃 사이에도 믿음이 둘레를 넓혀 사람 좋은 모범 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마음 비우는 것, 집착을 덜어내는 것, 감정을 길들이는 것, 한 박자, 한 템포 늦춰 입장 바꾸어 상대를 배려하면 나도 웃고 상대도 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과 노력은 처세학적 수준에 머물게 되면 일시적 일탈행위로 윤회를 거듭하게 될 터이다. 마음 비우기에도 간절함이 기본이 되어야 그 생명력이 평화와 행복, 자유를 누리게 됨을 잊지 말 일이다.

안으로는 마음 비우는 정진과 함께 밖으로는 버리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사람이 앓는 병은 소유욕과 집착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99마리의 양을 기르고 있으면서 100마리를 채우기 위해 이웃집의 양을 욕심내는 어리석음을 사람들은 즐기고 있다. 천만 원이 모이면 고맙겠다는 사람에게 천만 원이 생기면 욕심을 키워 이천만원, 삼천만원으로 치닫는 게 사람의 욕구심리이다.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재산보다 명예보다 자신의 건강이다. 돈을 벌기 위해, 명예를 높이기 위해 쉴 때 쉬지 못하고 잠잘 때 잠들지 못하며 먹을 때 끼니마저 건너뛰며 세상 사람들은 전쟁하듯 살고 있다. 그리하여 돈도 벌고 명예욕도 어느 정도 성취했고 살 만큼 되었다고 힘을 느낀 순간, 육체는 이곳 저곳에 병이 깊어 후회로 남는 신음 소리가 길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은 건강할 때 살펴야 건강만점을 누릴 수 있다. 과로는 만 가지 병의 원인이 된다. 작은 것으로 만족해하며 지나친 일 욕심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병자(病者)로 살지 말 일이다.

가능하면 밖으로 치닫는 생각을 줄이고 쓰잘 데 없는 반연(攀緣)을 덜어내며 분주하지 않게 느긋하고 평화롭게 빨려듦과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 일이다. 욕심은 버릴수록 아름답고 집착은 키울수록 병이 되기 때문이다.

유형ㆍ무형의 그 무엇을 버리는 생활 습관은 평화와 행복, 자유를 누리는 지름길이다. 인연도 버리고 욕구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기 시작하면 어둠이 빛이 됨을 느낄 터이다. 단순화하는 순수한 마음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누기의 수행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 이상의 욕심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 마음이 무겁다고 투덜댄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갖고 있으면서 나눌 줄 모르고 챙기고 모으며 쌓아두려는 못된 병을 앓고 있다.

우선은 책상 정리하며 옷장 정리하며 나눌 물건을 챙겨보자. 수두룩함을 느낄 터이다. 물건 나눔만 나눔이 아니다. 부드러운 미소와 위로의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나눔이다. 칭찬하는 애어보시(愛語布施)도 생활화하자.

하여, 수행승들의 설법은 법보시(法布施)에 해당된다. 당연한 일인데도 설법이 끝난 뒤 주최 측에서 내미는 현찰이 든 봉투를 챙겨가는 뒷모습이 여간 걱정스럽다. 아무튼 비우기, 버리기, 나누기를 생활화해야 불자다운 불자이다. 그러나 징하게 겁나게 마음을 모아 간절함으로 정진하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아무나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