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근본이 인간 마음의 근본이고 거기에 다 직결돼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래서 석존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어느 제자가 너무 아파서 다 죽게 되어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석존 뵙기를 원을 하니까 한번 들러 주셨습니다. 그랬는데 자기 몸 좀 부축해 달라고 하면서 몸을 일으키니까 “몸이 네가 아니니라. 몸은 구름 한 조각과 같고 꽃 이파리 하나와 같고 가을에 떨어지는 가랑잎 하나와 같고 바람결 같으니라. 그리고 인생은 물 흘러가듯 하는 것이다. 그러니 네 몸을 일으킬 생각은 말고 네 마음이, 그렇게 지극하게 나를 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바로 참다운 네 마음이요, 부처님의 마음이요, 부처님 뜻을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니 네 마음이 정히 그렇다면 네 마음을 보라. 내 육체를 볼 생각을 하지 말고 네 마음을 보라. 네 마음을 그렇게 지극하게 볼 수 있다면 내 마음을 볼 수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허허, 평생 동안 형제 부모 자식에 대한 착을 모두 놓지 못하더니 결국 네 집에도 착을 놓지 못했구나. 오늘부터 네 집에 대한 착도 놓아라. 몸도 일평생 네 집으로 삼아서, 더우면 더운 대로 시원한 걸 입혔고 추우면 추운 대로 따뜻한 걸 입혔고 아끼고 씻기고, 또 안 좋은 거는 버리고 좋은 거는 먹이고 성한 거만 먹였건만 네가 지금 간다 하더라도 네 몸뚱이는 너를 따라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에서 착을 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착을 떼란다고 해서 ‘재산을 버려라’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대로 사시면서, 사랑을 하는 것도 진짜 착을 다 떼고 사랑하시라는 겁니다. 모든 착을 떼라는 것은 ‘그도 주인공이 있고 나도 주인공이 있으니 주인공만이 이끌어 줄 거다.’ 하고 탁 맡겨 놓으면 떼는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난 뒤에, 자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아무리 나를 배신을 했다 할지라도 좋은 말을 해 주고 따뜻하게 해 준다면, 그러다가도 바깥이 추우면 따뜻한 데로 찾아들게 돼 있는 겁니다. 그래서 망할 자식을 뒀어도 나중에는 아주 효자가 되고 충성하고 아주 바르게, 정말이지 인간의 도리를 알고 탐구해서 잘 나갈 수 있는 그런 법의 자식이 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모든 착을 떼어 놓고 사랑하면서 좋은 말을 해 주고 이런다면, 밉다 곱다 이런 생각 말고 집에 들어오면 그저 부드럽게 “얘, 굶지나 않고 다녔니? 나가서 며칠 밤이 지났는데 어디 가서 굶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하고 좋게 말해 준다면 아무리 미운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주인공에다 탁 내던져 버리고 그렇게 말을 해 주면 자식에게 자각심이 생깁니다. ‘아! 내가 이럭하고 왔는데도 어머니가 야단도 치시지 않고 좋게 말을 해 주시는구나.’ 하고 언젠가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줄줄 흐를 겁니다. 그때에 비로소 착해지는 겁니다. 남편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다 똑같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해도 그렇게 말을 해 주고 그렇게 행을 해 준다면 금방 고쳐집니다. 밉더라도 바로 내 근본에다 팽개쳐요. 근본에서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요. 맡겨 놓고 하신다면 우리 제주의 여러분은 정말 이 세상 어디다 내놔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인간으로서 자유권을 가지고 자유자재하면서 자식을 이끌어 가고 조상들을 다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위로는 묵은 빚을 갚고 아래로는 새 빛을 줄 수 있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살아 보셔서 다 아시겠지만, 부모는 자식들이 잘못해도 용서할 수 있고 100% 다 줄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한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게 아마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진리가 그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거를 믿고, 억울하고 분하게 생각 마시고 으레 그러려니…. ‘나도 자식 노릇을 할 때는 그랬었다.’ 하고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서 잘못해도 용서할 수 있는 그 마음, 아량과 지혜를 갖는다면 증오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고 분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착을 떼고 사는 사람은 분할 것이 없지만 그냥 100% 착을 가지고 ‘내가 너를 어떻게 해서 길렀는데 너 장가들고 나서는 이렇게 나를 버리느냐.’ 하고 ‘배신했다’ 또 ‘예전 같지 않게 한다’ 이렇게 나쁘게 생각을 하신다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일이요, 그 귀여운 자식을, 얼구절구 기른 자식을 자꾸 속상하게 만들어 주고 오래 살지 못하게 만들어 주는 길입니다. 진짜로 사랑한다면 자비롭게 하십시오. 진짜로 사랑한다면 놔 주십시오.

어느 때에 원주에서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자식 다섯을 낳아 놓고 부인이 그만 배신을 당했습니다. 같이 한 푼 두 푼 벌어서 철물점을 하게 되고 아주 부자 부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만 남편이 예쁘고 나이 어린 마누라를 얻어서 살게 됐습니다. 그래서 울고불고 그러기에 내가 그랬습니다. “진짜 사랑을 한다면 놔 줄 수 있지 않느냐. 남편이 오죽해서 그렇게 했겠느냐. 어려서 장가들어서 가난에 찌들고 그렇게 살았으니 당신하고 무슨 애정이 있겠느냐. 그러니 애정 한번 느끼면서 살아 보겠다는데, 그것을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누이동생으로서 한번 생각해 봐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한다면 놔 줘라. 그리고 애들은 아버지가 있어야 되니까 들어오면 따뜻하게 말해 주고 ‘여보 당신, 다니더라도 잘 자시고 다니시오. 어쨌든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겠지요.’ 하면서 좋은 말로 해 주고,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있으면 보약이라도 달여서 병에다 담아서 그 집으로 보내 줘라. 심부름을 시켜서 보내되 또 그것도 싫다 하면 그냥 고만두고, 싫다는 거 일부러 억지로 하지 말고 만나는 게 싫다 하면 만나지도 말고 그저 편안하게 해 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인이 내 말을 듣고 그 상황을 잊어버리고 살 양으로 쪼끄마한 장사나마 부지런히 다니면서 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랬는데 이 작은마누라가 재산을 다 거덜이 나게 했어요. 쓴 사이도 없이 그냥 거덜이 났거든요. 그리고 이 작은마누라가 그냥 죄 긁어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니 미안해서 죽겠거든요. 큰마누라네에 들어올 수도 없고 안 들어올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바깥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데 부인이 그랬습니다. “여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우선 혼자 있을 동안만이라도 애들의 아버지가 돼 주세요. 나는 그저 당신을 뒷바라지한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말고 집에 들어와서 편안하게 자고 편안하게 먹고 편안하게 드나들면서 편안하게 만날 사람 만나고 하시오. 애들의 아버지인 당신이 우리 가족의 하늘이고 기둥이고 주춧돌이고 그런데 만약에 당신이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나지 않소. 나는 어쨌든 간에 말이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참, 당신은 사람도 아니오. 당신이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소.” 하면서 “그래, 질투도 안 나오?” 이러더란 얘깁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질투를 한다면 당신이 얼마나 괴롭겠소.” 하니까 그때부터 마음을 잡아서 얼마나 그 마누라를 사랑했는지, 또 얼마나 세련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 놓으니까 그 앞서의 여자, 새로 얻은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미인이더랍니다.

그래서 잘 사는 거 보고 난 왔습니다마는 지금은 13층이나 되는 빌딩을 가지고 잘 삽니다. 그렇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억울함이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게 일러 주면요, 스님이 하라는 대로 그렇게 했는데 안되더라 이러거든요.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안되더라 이거예요. 그거는 인내가 필요한 건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시주를 하시더라도 함이 없이 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시주하는 것도 주인공에 진짜로 아주 지극 정성으로 다 놓을 수 있는 분이라면 시주를 해도 함이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얘깁니다. 여러분이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서 물건을 가지고 오려면 돈을 줘야 됩니다. 그런데 돈 준 것만 생각을 하고 물건 가져온 것은 생각을 안 합니다. 또 돈 준 것만 아주 뇌리에 꼭 새겨 두니까 물건을 못 받는 겁니다. 돈을 주고서도 물건을 가져갈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있으니, ‘그 사람 오면 돈 줘야겠다.’ 하고만 있으니 물건이 갑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결국 나중에는 ‘그렇게 해도 안되더라. 그러니 돈 내놔라.’ 이럴 수 있는 거죠. 백에 하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 변치 말고,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미생물에서부터 끌고 나온
자기 주인을 진짜로 믿으십시오.
그런다면 정말이지 자기 죽이는 법이 없이 끌고 갈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병이 잘 낫지 않습니다. 그동안 만나 본 병든 사람들이 수백 수천, 아니 수만이라고 그래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마 헤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스물 몇 살부터 지금까지 이러고 있으니까요. 그랬는데 참 그때는 말없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네가 자발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그려진 백 원짜리 그걸 세 개씩 갖다 놓고 그냥 가기도 하고 써 놓고 가기도 했거든요.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그냥 생각으로 기도를 하고 갔단 말입니다. 그렇게 해도 그 사람네들은 아무 문제가 없이, 생각하는 그대로 이루어지고 또 공부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렇게 하는 분들도 많지만 삼분의 일은 그렇게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거 같습니다. 왜 삼분의 이는 그렇게 가는데 삼분의 일은 그렇게 못 갑니까? 또 그렇게 시주한 것으로, 신도님들이 밥도 못 먹을 지경이거나 학비를 못 낸다 한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본원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죠. 정말 여기에서도 조금만 더 자리가 잡히게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다 가지게 되겠죠. 앞의 것을 해결치 못하고 뒤의 것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신도 집이 지금 학비를 못 내고 그러는데 어떻게 저 먼 데 것을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바로 앞의 것부터 해 나가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시주물이 많이 들어와도 없는 신도님들에게 다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선원의 스님들은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우주간 법계에 있는 거니까요. 양심입니다. 여러분이 시주를 했어도 날 준 게 아닙니다. 왜? 내가 날 위해서 받은 게 없으니까요. 또 날 위해서 먹은 것도 없고요. 나는 하루 동안 내가 일할 만치 하면서 보리밥 한 숟가락 얻어먹고 있지요. 얻어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밥 내가 먹고 있는 거죠. 내가 부지런히, 진정코 진실히 일하고 여러분한테서 받아먹는 거니 어찌 내 밥이 아니겠습니까? 일을 하고 먹어야 내 밥이죠?

그리고 일을 해서 먹고도 정말이지 거기에서 무지하게 남는 것을 여러분한테 그냥 무주상 보시 하는 거 아닙니까? 일 전 한 푼이라도 여러분한테 개갠다면 아마 저 하늘에서, 법계에서 그냥 있지 않겠지요. 내 양심, 내가 아는 것을 우주간 법계에서 아니까요. 어느 사람이 취직을 하려고 뇌물을 주는데 안 받으니까 “아무도 없는데 누가 받은 줄 안다고 그러느냐.” 하니까 이렇게 말했다죠. “여보게, 자네가 알고 내가 알잖나. 그런데 어떻게 이걸 받을 수 있나?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의 마음들이 다 알게 돼 있어. 그런데 어떻게 이걸 받나? 내가 힘이 있으면 할 거고 힘이 없으면 못하겠지, 이런 걸 받고 한다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나.” 그러고선 쫓아 버리고 자기가 알뜰히 해서,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취직을 시켰다 합니다. 지금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그러니 방황하지 말고 항상 내 주인공과 스님 주인공이 둘이 아니니까 믿고 마음공부 열심히 하세요. 이 모든 것이 입으로 말을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 제사, 이거 한마디만 얘기하고 끝내 버리죠. 김삿갓도 이렇게 말을 했다죠. 가서 밥을 한 그릇 얻어먹고는 그 집의 소원을 들어주곤 했답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으니 상을 잘 차려 놓고 지내야 할 텐데 천도 좀 시켜 줄 수 없습니까?” 하니까 김삿갓도 그랬대요. “허허, 지금 이 세상의 모든 과일 파는 집이며, 뭐 제물 파는 집이며, 이 세상에 있는 거는 전부 다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라고요. 만약에 제사 지내는 사람이 그냥 상에 차려 놓는 것만 알고 지내 준다면 영가 영령들도, 혼백도 그 상에 차려 놓은 것만 알 수밖에 없어서, 그 외에는 더 가질 수도 없고 더 먹을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러나 우주 전체를 둥글려서 떡 하나를 놓고, 떡이라면 우주 전체를 말합니다. 그렇게 놓고 지낸다면 그 혼백은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한 상 차려 놓은 것만 알게 할 게 아니라 전체를 알게 해서 그 혼백한테는 대도를 이룰 수 있게 하고, 또 후대에 그분들이 다시 손자 또 증손자로 참, 큰사람을 내보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조상들이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모두 얕은 소견으로 차려 놓습니다. 어떤 절에 가 보면 천도를 시키는데 사흘을 밤새도록 합니다. 그렇게 차려 놓고 스님네들이 번갈아서 삼 일을 지냅니다. 예전에 보니까 그래요. 이십 대 한창 때의 얘깁니다.

그런데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한창 지혜를 얻으려고 무척 애쓸 때니까요. 그런데 그 후에 알았습니다. 어느 스님에게 떠억 돈을 갖다 놓고 절을 하면서 천도를 시켜 달라고 하고는 바깥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하는 소리가 “스님, 천도는 언제 시킵니까?” 하니까 “천도는 벌써 시켰느니라. 안 시켰다고 생각하면 이 돈을 가지고 가거라.” 이랬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은 천도를 시켜 달라고 준 돈을 가지고 장 보러 가서 보니까, 일가족이 그냥 내쫓겨 가지곤 당장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어서 자식들을 올망졸망 데리고 거리에 나앉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재비를 다 줘 버리곤 그냥 설렁설렁 올라오셨는데 “스님, 제물 흥정한 것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니까 “재사는 벌써 잘 지냈네.” 이러더라는 거죠. 어떻습니까?

이 마음에 우주 천하를 다 가지고 계신 산 부처님이, 마음속에 다 가지고 계신 그분이 만약에 천도를 시켜서 조상들이 그 마음속에 같이 한자리를 할 수 있다면 조상들도 역시 부처님이 되시니 얼마나 자손들에게 좋은 결과를 갖다 주겠습니까. 그런데도 상에 잘 차려 봤자 한 상이 아니라 해도 세 상밖에 더 차리리까. 이 세상을 전부 친다면 그까짓 세 상이 뭐 그렇게 대단합니까? 썩으면 없어질 그런 과일, 썩으면 없어질 떡, 먹고 똥 되는 그 떡. 아니, 그런 거 있어 봤던들 뭘 합니까.

그러니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천도시키려면 저 총무 스님한테 가서 상의드려서 해요.” 그리고 총무 스님한테는 “가난한 사람은 조금 받고 좀 돈 있는 사람한테는 넉넉히 받아서 해. 없는 사람을 위해서 장학금도 줘야 하고 하니까 말이야.”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있다가 하는 말이 “전 차리는 것보다도 스님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 조상한테 다 주시고 같이 한자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돈 삼백만 원을 갖다 주면서 그런 소릴 떠억 하고는 그냥 절을 하고 삥하니 달아나가는 겁니다. 그게 더 어려운 거죠. 사실은 그게 더 어려운 겁니다. 차려서 목탁을 치면 그 사람들 보게 해 줬으니까 그걸로써 끝나는 거지만, 이건 그냥 무조건 갖다 놓고 재 지내는 것을 보지도 않고 그냥 갔으니 정말이지 더 깊은 정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가는 사이 없이 오고 갈 수 있는 그런 정이 더 귀한 것입니다. 오신통은 여러분 안에 재료로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그것에 착을 두지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오신통도 벗어나고 몸뚱이도 벗어나고 우주도 벗어나서 자유자재하면서, 불바퀴를 굴리면서 여러분은 아주…. 지금 늙었어도 늙은 게 없고, 애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하하하. 또 지금 애는 늙어 갈 테니까 그렇고요.

두서없이 이런 말 하는 것 같겠지만 체계가 없다 할지라도 진실로서 받아들이세요. 여러분이 사시는 데도 체계가 없이 고정됨이 없이 사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월급 탄 거 그냥 계획도 없이 마구 써 버리고 애를 쓰지 마시고요. 또 절에 가져온다고 생각도 없이, 먹지도 못하면서 다 갖다 놓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기 성의를 다해서 하시면 족합니다. 어떤 사람이 갖다 놓을 게 없어서 방세 뺀 것을 반을 갖다 놓고 세를 못 들었답니다. 그래도 갖다가 놓은 것만 좋아서 웃으면서 ‘보증금을 내고 사글세라도 들어야지.’ 하고 가다가 신문지가 둘둘둘둘 말려 있는 거를 봤답니다. ‘아이구, 사글세라도 들어가면 이걸로 구멍이라도 막아야지.’ 하고 집어 들고선 펴 보지도 않고 덜렁덜렁 가서는 웃으면서 “신문지 잘 개켜서 둬라.” 하고선 이렇게 펴 보니까 돈이 한 신문지 싸여 있더랍니다. 그거라면 벌충이 되고도 남는데 그걸 가지고 또 왔습디다. 그래서 “당신네가 돈이 없고 가난하니까 쓰라고 준 거야. 이 돈 잃어버린 사람은 내가 볼 때 여유 있는 사람 같다. 그러니 너 갖다가 써라.” 이렇게 했더니 그거하고 같이 해서 조그만 집을 하나 샀어요. 그래 가지고 지금은 큰 아파트를 지니고 삽니다.

또 우리 선원에 다니면서 진정으로 믿었던 소금 장수 한 사람이 있었어요. 소금을 이고 다니면서 팔던 사람인데 남편은 미쳐서 그냥 막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또 자기는 무거운 소금을 이고 다니다 자궁암에 걸려서 그렇게 애를 쓰던 사람이었어요. 그 부부가 자식들을 사 남매 낳아 놓고, 자기 집도 없었죠. 방 두 개를 사글세로 들어 살면서 다니던 사람이 어떻게 정성을 들인 줄 아십니까? 소금을 이고 가다가 시간이 없는데도 절에 와서 소금 한 공기를 먼저 떠 놓고 갔습니다.

그리고 “스님, 스님! 저 자궁암 좀 낫게 해 주시고 정신 없는 애들 아버지도 낫게 해 주세요. 당장 애들도 먹여야 하고 남편도 먹여야 그 병을 낫게 할 수 있으니까요. 저 이렇게 엉치가 아파도 지금 끌고 갑니다. 하혈을 합니다.” 이러면서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얼굴은 백지장 같은데 그렇게 하고 갈 때 나는요, 마음이 찡하고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만 그 마음의 상처가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궁암은 저절로 낫고 남편도 저절로 낫고, 10년 동안이나 못했던 철공 일을 하게 됐고, 그 보살은 소금 팔던 걸 놓고 김밥을 싸서 어느 회사에 넣게 됐습니다. 사람을 몇 두고선 그렇게 했는데 인제는 부자가 돼서 큰 집 사서 살고 아들들 다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또 대학 졸업한 놈도 있고 대학원 나가는 놈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의 어떠한 사람이든지 내가 잘되게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잘되게 했기 때문에 자기가 잘된 겁니다, 네?

그거를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합니다.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가는 그 뼈저리고 눈물 어린 그 마음이 바로 자기를 살리는 겁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과거로부터 자기를 끌고 다니던 불성, 가련한 자기 의식 자체가 의지하고 있는 그 마음을 믿고, 바로 현재 의식이 자기 과거에 살던 의식을 믿고…. 다 주인공이라 칭한 것이니까요. 고정됨이 없이 찰나이고 우주의 근본이 인간 마음의 근본이고 거기에 다 직결돼 있으니까 모든 걸 종합해서 주인공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 주인공에다 모든 걸 맡겨 놓고 그렇게 사십시오. 앞으로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고 안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좋게 됐다는 생각이 들면 자기가 자기한테 ‘감사해! 당신밖에는 이렇게 즐겁게 해 줄 수 없어!’ 하고선 놓고, 안될 때에도 질병 문제라면 ‘당신밖에 병을 낫게 할 수 없어!’ 그러고, 가정 문제라면 ‘당신밖에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없어!’ 하고 거기 놓을 때 바로 그렇게 바뀌어서 돌아갑니다. 체가 없는 거니까요. 광명과 같고 전력과 같고 자력과 같은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자력과 전력과 광력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자력과 전력이 한데 합쳐지고 부합이 되니까 바로 통신력도 생기고 거기에서 광력이 일어나는 겁니다. 밝음이 일어난다 이겁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따진다면 여러분도 바로 자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발을 땅에 딛고 다니는 겁니다. 바깥에서는, 이 흙에서는 흙대로 자력으로 끌어 잡아당기고 우리는 우리대로 자력으로 끌어 잡아당기기 때문에 여기 붙는 겁니다. 이런 도리를 우리가 체험을 하고 들어가면 천체물리학이나 천문학이나 지리학이나 의학이나 전체가 종합돼 있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어 놓은 것도 우리 인간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지은 거 아니겠습니까?

두서없이 여러분 앞에 얘길 했지만 여러분은 자기 마음 변치 말고, 수억겁을 거쳐 오면서 미생물에서부터 끌고 나온 자기 주인을 진짜로 믿으십시오. 그런다면 정말이지 자기 죽이는 법이 없이 끌고 갈 겁니다. 주인공이 자기와 둘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오늘 이걸로써 끝마치겠습니다.

(법회 의식을 마치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러니저러니 말 많은 거는 모두 놓고 우리 같은 도반으로서 꼭 열심히 해 봅시다.
대중 감사합니다.

※위 법문은 대행 스님께서 1989년 9월 24일 제주지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 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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