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부산 여중생 폭력사건

“어린 여중생이 이렇게 잔인하고 영악할 수가 있을까?” 부산 여중생 폭력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참혹한 기분이 든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사건이 특정 지역의 사건이 아니라, 서울, 강릉, 세종 등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타나지 않고 잠복 은폐되어 있는 사건이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잔혹한 부산 여중생 폭력사건
서울·강릉 등서 유사 사건 확인

잘못 모르는 비도덕적 행위 증가
잔혹하고 사악한 청소년 폭력행위
‘도덕적 위기’ 韓사회 성찰 있어야

소년법 개정, 사회 윤리적인 접근
개인 인성·윤리·도덕 함양이 유용
연기·중도적으로 現 문제 다뤄야


도덕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선(善)에 대한 관심보다는 악(惡)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도덕성의 유형을 사악함과 나약함의 두 가지로 나누어 악에 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근래에 비도덕적 행위들을 유형화하고 그 특징을 분석함으로서 효과적인 도덕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마일로(D. Milo)라는 학자는 행위자가 자신의 도덕성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 따라 비도덕성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유형으로 ‘외골수적 사악함’, ‘도덕적 태만’, ‘무도덕성’으로 나누고 있다. 잘못을 알고 있는 경우로는 ‘선호적 사악함’, ‘도덕적 나약함’, ‘도덕적 무관심’으로 나눈다.

문제는 오늘날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는 비도덕적 행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범죄뿐만 아니라 성인 범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전철 안에서 노인을 앞에 두고 졸고 있는 척하는 청소년의 도덕적 나약함이 아름답게 보인다. 도덕성 타락에 대한 개탄의 소리는 유사 이래 당대의 위대한 선지자들의 저술 속에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범죄 사건을 보면 그동안의 위안이 안이한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런 사건들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심성의 황폐함이 지각을 뚫고 분출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잔혹하고 사악한 폭력 행위를 한국사회에 대한 도덕적 위기 문제에 대한 고뇌와 성찰 없이 단순한 청소년 범죄로 접근한다면 찢어진 거미줄을 손가락으로 수리하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잔인한 청소년 폭행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도덕성 회복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 함양에 초점을 둔 ‘개인 윤리적 차원’과 사회구조와 제도에 초점을 둔 ‘사회 윤리적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소년법 개정은 사회 윤리적 차원의 방법이다.

개인 윤리적 차원은 가정·학교·종교·매스컴 등 사회화 기능의 윤리화라는 장구한 성격의 과제인 반면, 제도와 정책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단기간 안에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소년법의 취지를 범죄에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소년범에 대한 처벌 연령을 낮추고 강화하여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인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지 의견이 다양하다. 이러한 논의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도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제도가 있지만 그 실천 내용이 부실하고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학생의 학업 중단을 막고자 하는 ‘학업중단 숙려제’, 청소년을 건전한 재사회를 유도하고자 하는 ‘청소년보호관찰 제도’ 등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청소년 범죄자는 자신이 보호관찰 대상인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범죄이론에 낙인(烙印)이론이 있다. 범죄자라는 낙인이 오히려 더 큰 범죄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가 터지면 요란을 떨면서 너무 크게 접근하는 것 같다. 청소년 범죄는 크고 작은 다양한 조건이 얽혀 있는 문제이다. 그야말로 연기와 중도의 지혜가 필요한 곳이다.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구체적인 실천의 마당에서 연기와 중도의 지혜가 발휘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랴. 연기와 중도의 지혜를 이야기하면서도 중생의 세계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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