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보살의 체성은 무엇인가

菩薩樂代他受逼迫苦時卽大悲心淨。智慧觀他受苦悲心卽在中住。悲心住處則苦不得住。雖復悲者一切生苦之所纏。如是他利樂心生歡喜勝解脫樂。菩薩見他受苦如自己苦。自己得樂欲與他人。自覺勝於涅槃。悲者常欲自受其苦與他樂。悲之與苦不得一刹那頃而得共住。行惡者見他苦時欲得遠避。見他得樂心不憙悅。菩薩見他苦時不欲遠離。無愛者無一切苦業。何以故。除他人苦生大歡喜故。菩薩與他大樂不必歡喜。見他與人少樂心大歡喜。何以故。體性爾故。菩薩見他得樂自己亦樂。菩薩見人與他少樂。云何不生歡喜。
 

번역|보살은 타인의 핍박과 고통을 대신 받는 것을 즐거워할 때 대비심이 깨끗합니다. 지혜로 타인의 괴로움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 머무는데, 자비심으로 머물기에 괴로움이 없습니다. 비록 자비로운 이가 일체 중생을 위해 고통에 얽매이지만, 이와 같이 타인을 이롭고 즐겁게 하기위해 마음에 환희와 승해탈락(勝解脫樂)을 일으킵니다. 보살은 타인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 자기의 고통처럼 여기고, 자기가 즐거움을 얻으면 타인에게 주고자 하기에 자연 깨달음이 열반보다 수승합니다. 자비로운 이는 늘 자기가 고통을 받아도 타인에게는 즐거움을 주고자 하고, 자비로 주기에 괴로움이 한순간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이는 타인의 괴로움을 보면 멀리 도망하려 하고 남의 즐거운 것을 보면 마음이 즐겁지 않지만, 보살은 타인의 괴로움을 보면 멀리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애착이 없는 이는 일체의 괴로운 업도 없는데, 왜냐하면 타인의 고통을 없애므로 큰 기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타인과 더불어 크게 기뻐하지만 반드시 기뻐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체성(體性)이 그러하기 때문이니, 보살은 남이 즐거우면 자기 역시 즐겁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남에게 적은 즐거움이라도 주는 것을 보면 어찌 환희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해설|본문에서는 보살의 체성(體性)에 대해 말한다. 체성(體性)이란 ‘근본 바탕의 성품’이란 말이다. 따라서 보살이란 존재의 근본 성품은 ‘남이 즐거우면 함께 즐거워하는 성품’이다. ‘천성(天性)’이란 말이 있다. ‘타고났다’는 말인데,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은 면을 발견했을 때 쓴다. 남이 성을 내어도 맞부딪혀 성낼 줄을 아나, 남이 욕을 해도 같이 대꾸하며 욕을 할 줄 아나, 남이 속이고 이익을 편취해도 바보처럼 고맙게 받아들이지를 않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그런 사람이 보살이다.

사실 보살이란 먼 데 별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존재다. 아침이면 자기 집 마당뿐만 아니라,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나 오물을 치우는 분들이다. 직장생활에 지쳐 편히 쉬며 TV나 보며 쉴법한 휴일을 쪼개서 고아원을 방문하고,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위로하며, 각종 사회봉사단체에 찾아가 뭔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는 이들이다. 집에 먹을 것이 있으면 혼자 먹는 게 미안해 기어코 이웃을 불러 대접하는 우리네 어머니요, 아버지요, 형제자매다. 아마 이런 분들은 ‘갑질’이란 말의 의미도 모를 것이다.

천성이 그렇다. 기어코 남이 즐거워야 자신도 행복하다. 그러니 누군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다음번에는 좋은 일을 함께하자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인간적인 마음을 체득한 이를 자각(自覺)이라고 부른다. 누가 가르치거나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自覺)은 열반보다 수승하다고 〈대장부론〉을 통해 제바 보살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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