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 작가, 장편소설 <하루코의 봄> 발간

하루코의 봄|유응오 지음|실천문학사 펴냄|1만 2천원

루저(Loser). 어느 순간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말이다. 정확하게 사전적 의미로 말하면 ‘루저’는 그냥 패배자가 아니다. 경쟁에서 진 사람들을 경멸적인 어조로 부를 때 사용하는 영미권 단어다. 다시 말해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완전 탈락한 사람들 혹은 애초에 레이스 참여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어둔 곳서 살아가는 군상 그려
나락서 만난 ‘向上一路’ 가르침
낮아질수록 높아진단 역설 담겨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고 불교계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유응오 작가의 장편소설 <하루코의 봄>은 루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실 작가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사는 군상들을 꾸준히 천착해왔다. 하이틴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를 에너제틱하게 그린 신춘문예 당선작 <요요>가 그랬고,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찌보면 <하루코의 봄>은 <요요>의 확장판 같다는 느낌이다.

추천사를 쓴 성석제 소설가도 “작가의 등단작 〈요요〉의 10대 아웃사이더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40대 루저가 되어서 아빠방으로 모여든 모습을 보여준다. 10대의 가출 팸에서 40대의 대안가족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거리를 유랑하는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딘가에 하나씩 중독된 루저들이다. 일본의 룸살롱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하루코는 속도광이고, 불새는 한때 호스트바의 에이스였지만 도박에 중독돼 인생을 말아먹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자살한 형의 기억을 안고 사는 판돌이는 레코드판을 즐겨 듣는 편벽이 있다. 고아 출신 깡패 승룡은 마음이 적적할 때마다 산사를 찾는다. 게이인 떨이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다.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난주는 홍콩에 가서 화보집을 살만큼 장국영의 팬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본명이 아닌 별명이나 가명으로 불린다. 특히, 고아원에서 지어준 가명인 준수 대신 조직의 보스가 지어준 또 다른 가명을 쓰면서 살아가는 승룡의 모습은 한 번도 중앙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주변인의 초상이다. 소설 제목은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인 ‘하루코’의 ‘봄날’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루코’에서 ‘봄이’로 이어지는 저릿한 생의 유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작가 특유의 문장과 서사로 숨 쉴 틈없이 전개된다.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어 개별적으로는 하나의 단편소설이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장편소설로 귀결되는 것도 매력이다.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는 경계와 경계로 이어지며, 미묘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 흐름 속에서 독자들은 낮아질수록 높아지는 역설의 희망을 만난다. 떨이는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를 읽으면서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높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다.

상처 입은 몸으로 찾아간 산사에서 승룡에게 무상 스님이 내리는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법문은 소설의 압권이다.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고 눈 앞이 캄캄할 때는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된다. ‘향상일로’라는 말이 있다.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향상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거다. 알겠냐?”

어쩌면 이 소설은 ‘꽃 피는 시간마저 지나버린 꽃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애처롭고 처연하다.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건 무엇일까. 인생은 고(苦)이고, 무상(無常)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를 알지만 마지막까지 가지려고 한다. 결국, 인생은 내려놓고 정진하는 것임을 이 소설의 군상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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