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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水엔 득실 없다”… 禪의 정원이 주는 가르침덴류지(天龍寺)
  • 글·사진= 나카노 요코, 감수= 홍은미 옥천사 학예실&
  • 승인 2017.09.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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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류지서 만날 수 있는 정원의 모습. 연못 소겐치(曹源池)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덴류지 정원은 일본 정원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이를 만든 무소국사는 정원을 통해 선을 표현하려 했다.

지금까지 간사이 지방의 명찰을 소개하면서 교토 서쪽에 위치하는 ‘아라시야마’(嵐山)라는 지명이 몇 번 등장했었다. 3월 하순에는 간사이 지방에서 꽃으로 유명한 사찰 여섯 곳을 소개했을 때도 아라시야마 명찰 덴류지를 그 가운데 하나로 뽑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꽃과 관련된 간단한 소개만 했을 뿐이었다. 드디어 덴류지 창건과 경내답사, 주변볼거리 답사에 대하여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 차례가 돌아왔다.

임제종 덴류지파 본산으로 유명
천황 명복위해 무소국사가 개산
연못 중심한 정원, 禪美를 담아
日 특유 정원문화에 지대한 영향

사가노·아라시야마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고대에 도래인 하타 씨(秦氏)에 의하여 개척된 곳이라고 전한다. 경치가 아름다운 이 지역은 헤이안쿄 천도이후 천황가의 이궁(離宮)과 귀족의 별장이 지어진 지역이 되었다. 푸른 산, 맑은 강물, 신비로운 죽림, 그리고 신선한 공기. 교토시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있지만 찾아 가기가 어렵지 않은 위치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은 교토의 큰 매력이다. 자연환경도 좋고 사찰도 많아서 사가노·아라시야마는 짧은 시간에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 가운데 내가 자주 방문하는 곳, 역시 덴류지다.

임제종 덴류지파 대본산 덴류지는 1339년에 나라·요시노에서 억울하게 죽은 고다이고 천황(後醍?, 1288~1339)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시카가 다카우지 장군(足利尊氏, 1305~1358) 이 무소국사(夢窓國師, 1275~1351)를 개산조사로 창건한 것이다.

12세기 후반에 무가정권인 가마쿠라 막부의 시대가 되었지만 천황은 폐위시키지 않았다. 친정(親政)을 노렸던 고다이고 천황이 막부를 붕괴시키려고 시도했으나 두 번 실패했다. 그래도 소원을 포기하지 않고 아시카가 다카우지 등의 도움을 받아서 1333년에 막부를 멸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연호를 겐무(建武)로 바꾸고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여 ‘겐무의 신정(新政)’을 시작했다.

그러나 성급하게 추진한 이 정책이 무리가 따라서인지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이반하여 교토에서 고묘(光明)천황을 등위시키고, 1338년에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되어 새로운 막부를 열었다. 막부는 교토의 무로마치(室町)에 있었기 때문에 무로마치 막부라고 불렸다. 1336년에 요시노로 내려간 고다이고 천황이 남조를 수립하고 황위의 정통성을 주장했으나 1339년에 세상을 떠났다.

덴류지 자리에는 원래 헤이안 초기에 사가천황의 왕비가 개창한 단린지(檀林寺)가 있었고, 13세기에 들어 이궁 가메야마전(龜山殿)이 세워졌다. 고다이고 천황은 어린 시절에 이곳에서 지냈다. 천황의 큰 신임을 받고, 또 장군들에게서 존경을 받은 무소 국사는 아시카가 장군에게 고다이고 천황의 명복을 빌기 위한 선종사찰을 건립하는 것을 건의했다. 그의 건의는 장군을 통해서 조정에 전해져, 조정에서 새로운 사찰 건립의 허가를 받고 고다이고 천황과 유래가 있는 곳에 사찰이 건립되었다.

사찰 정식 명칭이 ‘영구산(靈龜山) 역응자성 선사(歷應資聖禪寺)’였다. ‘역응’이 연호인데 천황의 허가가 있어야 사찰 건립 당시의 연호가 사찰명이 될 수 있으므로, 사찰의 격이 아주 높은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엔랴쿠지를 비롯한 연호가 사찰이름이 된 기존의 사찰들이 크게 반발했고 결국 연호를 빼고 사찰 이름이 레이키잔덴류시세젠지(靈龜山天龍資聖禪寺)로 바뀌었다.

그런데 거대한 선종사찰을 건립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다이묘(大名,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렸던 영주들)의 장원 기부금으로는 도저히 마련 할 수 없었다. 무소국사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원나라에 독자적으로 무역선을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마침내 막부의 허가를 받아서 ‘덴류지선’(天龍寺船)이 파견되었다.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상인이 선장이 된 이 무역선으로 인해 백배(百倍)의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찰건립이나 수리 등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파견된 무역선이 덴류지선(天龍寺船) 이전에는 가마쿠라의 겐초지선(建長寺船)등 전례가 있다. 당시 무역선에는 선승들이 타고 일본과 원나라를 왕래했으며 이는 일본의 선종 보급에 영향을 주었다.

덴류지 칠당 가람이 완성되자, 1345년 무소국사를 도사(導師)로 한 개당(開堂)법회가 열렸다. 1386년엔 덴류지는 교토오산(京都五山)의 1위가 되었다. 교토오산이란 지난번에 도후쿠지를 소개했을 때 설명했듯이 중국의 오산제도에 의하여 선정된 임제종 5대사찰이다. 1위는 난젠지(南禪寺), 역시 난젠지는 각별한 위치에 있다.

덴류지 대방장 앞 법당 천장에 그려진 운룡도. 현대 일본화 거장인 가야마마타조가 1997년 그렸다.

14세기 중반에 일어난 화재를 비롯하여 8번 대화재의 피해를 입어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메이지시대의 폐불훼석 때 사찰 땅이 메이지 정부에 많이 수용되어 버리고, 현재 사찰 경내지는 원래의 10분의 1정도가 되었다. 현재 경내에 있는 건물 대부분이 메이지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어도 창건 당시의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는 것이 무소국사가 설계한 정원이다. 무소국사는 많은 제자를 키우고 무로마치 시대에 임제종을 발전시킨 뛰어난 스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정원을 설계한 분이다. 연못 소겐치(曹源池)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덴류지 정원이 일본 정원문화에 큰 영향을 준 중세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정원이다. 또 일본의 사적·특별명승 제1호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원이다. 크고 작은 돌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이 정원이 약동감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풍취가 있어 시원하게 보인다.

무소국사는 이 아름다운 정원을 통해서 선(禪)의 마음을 표현했다. 무소국사가 아시카가 장군의 동생인 다다요시의 물음에 대해 대답한 것을 저술한 〈몽중문답집(夢中問答集)〉이라는 법어(法語)가 있는데 여기에 무소국사의 정원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산수(山水)에는 득실(得失)이 없다. 득실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
무소국사의 유명한 말이다. 정원을 좋아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정원 자체에는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없다. 그것은 정원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진심으로 정원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저택을 자랑하기 위해 정원을 꾸미는 사람, 그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서 정원을 만드는 사람. 그런 류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산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의 아름다움 또한 이해할 수도 없다. 현대인들에게도 통하는 귀중한 말이 아닌가.

방장, 정원을 관람할 때는 고리(庫裏)에서 입장료를 지불한다. 이 티켓으로 대방장(大方丈), 소방장(小方丈=書院), 다보전(多寶殿)에 들어갈 수 있고, 정원도 관람할 수 있다. 고리 옆에 있는 매표소에서는 정원만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한다. 가능하다면 방장에 올라가서 정원을 구경하는 것을 권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을 때는 정원만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할 만큼 정원은 한번쯤 볼 가치가 있다.

소겐치에서 북쪽방향으로 걸어가면 고다이고 천황상을 안치한 다보전이 있다. 벚꽃으로 유명한 덴류지에선 특히 다보전 주변에 피는 벚꽃이 예쁘다. 다보전 서쪽에 있는 ‘망경(望京)의 언덕’에 올라가면 덴류지 벚꽃의 아름다움을 다른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다보전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백화원(百花苑)이다. 여기서 피는 꽃이 종류도 다양하고 정말 예쁘다. 한국 분들에게 익숙한 개나리나 진달래도 있다. 백화원에서 꽃이름을 손으로 직접 써서 표시하고 있는데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한국어로도 적혀있어 사찰 관계자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토요일과 일요일, 국경일, 그리고 봄과 가을 특별공개 기간에는 대방장 앞에 있는 법당에 들어갈 수 있다. 입장료는 법당에서 지불한다. 법당에는 본존 석가여래상, 무소국사상 등이 안치되어 있는데, 천장에 그려진 운룡도(雲龍圖)도 관람할 수 있다.

이 운룡도는 현대 일본화 거장인 가야마마타조(加山又造, 1927-2004)화백에 의하여 1997년에 그려진 것이다. 운룡도는 일전에 소개한 도후쿠지, 난젠지, 쇼코쿠지(相國寺)등 선종사찰 법당 천장에도 그려져 있다. 수신(水神)으로서의 용이 법당 천장에 그려진 이유는 용이 불법의 은혜를 법우(法雨)로 내리고 또 화마를 쫓아내고, 사찰가람의 화재를 예방한다는 설명이 있다. 사찰마다 운룡도 공개기간이나 공개방법이 다르지만 운룡도를 보러 교토 선종사찰을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다.

덴류지 주변볼거리
일본 대표적인 경승지인 사가노·아라시야마는 볼거리도 많고 범위도 넓어 짧은 시간에 다 돌아다닐 수는 없다. 한나절 정도라면 덴류지를 중심으로 주변 볼거리를 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 아라시야마의 상징으로 사진이 자주 나오는 도게쓰쿄(渡月橋)와 죽림이 덴류지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 덴류지 경내의 백화원 쪽에 있는 북문(北門)으로 출입할 수 있다. 북문을 나가면 바로 죽림이다. 죽림을 가기 위해 서쪽으로 올라가면 오코치산소(大河內山莊)라는 정원이 있다. 원래 배우 별장이었던 오코치산소는 조망도 좋고 말차와 일본과자를 맛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만산에 피는 벚꽃이나 단풍이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사가노·아라시야마에는 사찰도 많은데 각자 개성이 있는 매력적인 사찰이다. 그 중에서 덴류지 외에 하나만 고른다면 나는 다이카쿠지(大賞寺)를 추천한다. 원래 사가 천황의 이궁이었던 다이카쿠지는 대하사극이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덴류지에서 좀 멀지만 우아한 건물을 구경할 수 있어 가볼만하다.
사가노·아라시야마에는 전차로는 JR, 한큐, 노면전차로 갈 수 있고, 버스로도 가능하다.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답사할 수 있다.

글·사진= 나카노 요코, 감수= 홍은미 옥천사 학예실&  hyunbulnews@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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