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경한(白雲景閑:1298~1374)은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 나옹혜근(懶翁惠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스님이다. 세 사람이 모두 중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고려불교의 중흥에 힘썼다. 경한도 중국에서 임제종의 18대손인 석옥청공(石屋淸珙)을 참방하고 그의 법을 전해 받았다. 그리하여 려말(麗末)에 석옥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아 임제종지(臨濟宗旨)를 이은 스님이 두 사람인 셈이다. 그러나 경한은 보우가 귀국 한 뒤인 그의 나이 54세 때 중국으로 들어가 법을 전해 받았기 때문에 수법 연대가 보우에 비해 늦다. 그래서 려말의 임제종 중흥조를 일반적으로 보우라 한다. 한 때는 보우가 조계종의 종조로 받들어진 때도 있었다. 경한은 또 지공(指空)을 찾아가 법을 묻기도 했다. 지공은 나옹에게 법을 전해준 사람이다. 경한은 중국 체류기간이 1년 남짓 되었다.

경한은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직지심경(直指心經)〉을 남겨 이 책으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원래 이 책은 경한이 스승 석옥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으면서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라는 조그마한 소책자를 전해 받았는데 매우 간략한 내용이었던 것을 나중에 경한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면서 불조의 혈맥이 되는 법문의 정수들을 가려 추가해 정리한 것으로 본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었다. 이 말을 간단히 줄여 〈직지심경〉 혹은 그냥 〈직지〉라 불렀다. 이 〈직지〉가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 하여 널리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직지심경〉이 경한의 선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문헌인데 이에 나타나는 특징은 임제 종지를 이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경한이 정통 간화선보다 무심선(無心禪)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심선이란 사량분별에 물들지 않고 시비와 선악에 동요되지 않는 마음인 무심을 도의 본체로 보는 선관(禪觀)이다. 흔히 선가에서 자주 써온 말인 “마음이 부처다(心卽是佛)”할 때의 부처인 마음이 분별이 없는 무심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쓰는 말이다.

황벽의 〈전심법요(傳心法要)〉에 배휴(裵休)가 부처가 어떤 것이냐고 물었을 때 황벽이 대답해 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부처이며, 무심 그대로 도이니 다만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생각이 움직이지 않으면 있는 것과 없는 것, 긴 것과 짧은 것, 이것과 저것, 주관과 객관 등을 분별하는 마음이 하나하나가 본래 부처인 것이다. 부처란 본래 마음이며 마음은 허공과 같다.”

간화선의 완성자라 일컫는 대혜종고(大慧宗杲) 이렇게 설법을 한 적이 있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으며, 무심이 바로 도(道)이니 도는 사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만 이 마음으로 법을 설하시고, 오직 이 도로써 중생을 제도하신다. 이 도로써 중생을 제도하나 제도할 중생이 없으며, 이 마음으로써 법을 설하지만 설할 수 있는 법은 없다. 설할 수 있는 법이 없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법을 설하는 것이며, 제도할 중생이 없어야 진실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삼세의 부처님도 이러하며, 눈앞에 있는 대중들도 이러할 뿐이다.”

무심이란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도 대상에 대한 망상분별이 없으므로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진 상태를 말한다. 경한이 간화치중보다 무심을 강조한 것은 선의 본질이 방법이나 수단의 문제에 있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육조의 선법이나 임제의 선법이 근본에서 보면 다 무심선이기 때문이다. 〈직지〉에서 지공의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 것도 지공의 선법이 무심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한은 고려 말에 실시됐던 승가고시인 공부선(工夫選)의 시관(試官)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오언십이구(五言十二句) 긴 임종게를 남기고 77세에 입적했다.

“77년을 살다가 77년 만에 가노라. 곳곳이 돌아가는 길이요 고향 아닌 곳이 없거늘 어찌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유별나게 고향에 돌아가려 하겠는가? 이 몸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마음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니 이 몸을 재로 만들어 사방에 뿌리고 남의 땅을 차지해 묻히게 하지 말라.”(七十七年來 七十七年去 處處皆歸路 頭頭是故鄕 何須理舟楫 特地欲歸鄕 我身本不有 心亦無所住 作灰散四方 勿占檀那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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