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한 스님의 지혜

무사찰주의자의 행복컨설팅

지난 해 초겨울, 유방암수술로 입원한 선배 한 분을 문병했다. 워낙 매사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세상을 사는 분이라 크게 걱정을 하진 않았지만 큰 수술을 받고 나서인지 수척한 모습에 조금은 걱정이 있어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108배를 좀 해보세요. 마음이 안정되고 건강에도 좋을 거예요’했더니, 관심을 보였다. 절수행을 해서 병을 치유한 분들의 이야기를 해주자 반색을 하며 꼭 해보겠다고 했다. 문병을 끝내고 나올 무렵, 병실 창가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참선과 절수행 균형이 중요

사심과 공경의 마음 솟아나

마음 수행이 곧 복짓는 행위

<인생을 낭비한 죄>, 스무 분 남짓의 수행자분들에게 인생을 물었던 나의 책이었다. 수술을 하기 전 입원해 있으면서 한 번을 읽고, 수술하고 나와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스님들의 말씀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책에 나오는 스님 한 분을 꼭 뵙고 싶으니 안내를 좀 하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일상생활을 최대한 즐겁게 하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며, 시공간을 떠나서 진정한 행복에 머무는 것이라고 설파하셨던 도현 스님이 그 주인공.

꼭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한지 일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선배는 2차 항암치료까지 끝내면서 꿋꿋하게 병을 이겨냈다. 그리고 지난 주 초, 드디어 도현스님을 뵈러 지리산으로 떠났다. 도반 10여 명과 함께였다.

올해 예순 여덟이신 도현 스님은 22년째 지리산 쌍계사에서 차로 15분쯤 거리에 있는 의신마을 산꼭대기 토굴에 사신다. 네 해 전 토굴에 불이 나서 한 평 더 늘려 지었더니 지난 번 세 평 토굴에 견주면 대궐 같다며 우리 일행을 토굴 안으로 안내하셨다. 정말 대궐은 대궐이었다. 열 세 명이 방과 마루에 나눠 앉았는데 좁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멀리 산등성이 너머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새들의 지저귐까지 더하니 어느 궁궐 부럽지 않았다. 언제 와 봐도‘텅 빈 충만’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무사찰주의자로 이렇게 작은 공간에 홀로 살다보니, 사람들이 와보고는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스님이 대답하신다.

“나는 해인사 장경각에 가서 부처님 법문을 도매로 받아와서 여기서 소매로 팝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스승께 받은 지적 재산을 나누어주며 산다는 뜻이다. 이자 없는 무상대출의 행복컨설팅인 셈이다. 그러나 세상 사는 이치가 공짜가 없는 법,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 나중에 이자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에게 가장 큰 이자는 각자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이자를 치르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또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그런데 스님은 여기서 혼자 무얼 하고 살지요?”

스님이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 때로 사람들이 와서 시주를 하면 그 자리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게 그것이다. 우리 일행에게도 들려준 기도의 내용이 참, 아름답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듯 시주자가 원하는 바 모두 다 원만하게 이루어지이다. 아름답게 오래 살고 건강하고 행복하소서.”

신도들은 물질적인 것을 보시하고 스님은 그 보시에 대한 답을 법(기도)으로 이렇게 대신하는 것이다. 부처님시대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께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두 가지를 묻는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그 하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는 이동식저장장치, 즉 USB이다”라는 것이다.

삶의 한 순간 한 순간, 아름다운 것들이 저장되어야 내일 당장, 혹은 다음 생에라도 아름다운 내용들이 풀려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매순간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으로 짓는 것들에 철저히 깨어있으라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찾아오는 이들의 전공을 묻는 것이다. 도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못하는 기술을 배우고,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겐 자신이 보지 못하는 색을 보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스승이다. 몸살이라도 나서 병원에 가면 젊은 의사라도 그가 선생님이다. 거기에서 또 영원한 선생도 제자도 없음을 배운다.

또 토굴에 살면서 안팎으로 도량을 깨끗이 치우는 것이 수행이고 무슨 일을 하든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기도라는 걸 수시로 깨우치는데, 찾아오는 이들과 이런 느낌을 나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 속에서도 큰 기쁨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기술과 정보가 필요한 한 일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선정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조용히 설거지만 해도 차분해지니까요. 화두를 들고 염불을 하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고, 스님들에게 법문을 듣거나 책을 읽고 또 도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입력시켜놓는 것이 지혜예요. 그러한 다양한 지혜들을 이동식저장장치에 입력시켜놓아야 필요할 때 찾아 쓸 것 아니겠어요? 본 바가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데, 그 본 바를 잘 입력시켜놓았다가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리산 네 평 토굴에 사시는 도현 스님의 108배

“늘 자연스럽게 호흡을 주시하라”는 것을 가풍으로 삼아 찾아오는 이들에게 호흡을 통한 수행법을 전해주고 선정과 지혜의 필요성을 역설하시는 스님께 108배를 통해 선정과 지혜를 함께 얻을 수 있는가 여쭤보았다.

“108배 속에서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지요. 요즘 날마다 108배를 하고 있는데, 절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합니다. 땀을 쭉 흘리며 이삼십 분쯤 절을 하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오늘 일과는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홀가분해집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엔 포행을 할 수가 없어 이 작은 공간에서 걸으려면 갑갑해지거든요. 그럴 때 108배는 아주 좋은 운동이 되죠. 그런 날은 운동 삼아서 두 번도 해요. 한 동작 한 동작 정성스럽게 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죠. 무엇 하나를 뭔가를 오래오래 하면 친숙해지고 그 친숙한 것이 나중에는 자기가 되어버려요. 생각도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나에게 주지시키는가가 중요해요.”

스님의 108배 예찬이 이어졌다.

“토굴에 오는 사람들에게 108배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거든요. 108배를 하면 운동이 되어서 소화도 잘되고 건강에 좋고 지구력이 생겨요. 그 다음 마음이 맑아지고 복이 생깁니다. 또 하심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일행들이 하나둘 묻기 시작했다.

“저는 참선을 하고 있는데 절 수행을 해야 할까요?”

“참선은 정적이고 절은 동적인 수행인데,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해요. 정적인 공부만 하는 것은 샘에 물이 고이는 것과 같아요. 참선을 하는 사람이 절을 하는 것은 옹달샘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순환장치를 해두는 것과 같아요. 안거 때 좌선만 열 시간씩 하게 되면 하체가 많이 약해지는데, 그러면 의욕이 없어져요. 절을 하면 하체가 약해지는 걸 보완할 수 있죠. 절은 하면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인물도 예뻐져요.”

“그런데 왜 절을 하면 복이 생기죠?”

“절을 할 때 두툼한 방석을 깔고 하면 무릎이 닿는 자리가 푹 패이잖아요? 그 자리가 복이 고이는 자리예요. 복은 낮은 곳으로 흘러요. 마음을 낮은 곳에 두는 사람에게 온갖 복이 들어온다고 했거든요. 절을 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마음을 굴복시키는 것인데, 마음을 굴복시키다보면 사람이 겸손해지거든요. 겸손하다는 것은 자기를 가장 낮은 데 둔 것이고 그 낮은 자리에 복이 고이는 거지요.”

역시 복이 좋긴 한가보다. 스님께서 복 얘기를 하시니 모두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우리 일행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분이 확인 차 여쭈었다. 올해 여든 살이신 이 분은 그날 우리 일행 중 가장 잘 걷고 활기찼다.

“저도 아침마다 108배를 합니다. 오늘도 여기 오려고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고 왔어요. 제 방석도 항상 푹 들어가 있습니다. 복을 받는 거지요?”

“복은 받는 게 아니고 누리는 거예요. 나중이 아니고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절은 시간에 쫓겨서 하면 재미가 없어요. 또 이거 오늘 안하면 안된다하는 강박관념을 가지면 부담스러위지고, 108배한테 자기가 붙들려 있는 거예요. 부처님 앞에 일 년에 단 한번만이라도 간절하게 절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간절 절자 하나만 있어도 이루지 못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절을 하는 자체가 복을 누리는 거라는 스님의 말씀에 백번 동감한다. 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수술을 하고 난 선배도 내 권고를 듣고 나서 108배를 하기 시작했는데, 시작한지 며칠 만에 중단하고 말았다.

발이 바닥에 닿으면 마치 칼날을 밟는 듯 아파서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는 데 큰 장애가 없을 때 절을 할 수 있다. 혹시라도 넘어져 팔이나 다리라도 다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내 경우 몇 년 전에 새끼발가락에 금이 가서 6개월 동안 절을 하지 못했다.

돌아와 녹음한 스님의 말씀을 요즘 108배를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 딸에게 들려주었더니, 아침마다 108배를 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방석을 사진 찍어 가족카톡방에 올리고는 이렇게 썼다.“아빠, 절 할 때 저 무릎 패이는 자리가 복이 고이는 자리래요. 스님 법문 듣는데 아빠 방석 패인 거 생각나서.”“그래, 고맙다. 우리 모두 매사에 열심히 접근할 필요가 있어.”

스님을 뵙고 난 다음날 새벽, 쌍계사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한 108배. 그냥 그대로 행복을 누린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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