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모순들이 제35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성을 다해 모시니(奉請) 버림없는 대자비(不捨慈悲)로 와야 할 차기 총무원장은 진흙탕 속을 걸어 억지웃음으로 올 지경이다. 그나마 올 수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작금의 종단을 돌아보면 불교신도가 수백만 명이 줄었다는 소식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앞으로 그와 같은 추세는 더욱 빨라져서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500년 억불정책에도 버틴 종교가 종단의 부조리와 모순, 일부라 하나 고위직 승려들의 무책임과 한계 등으로 인해 바닥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일반 출가자에 비해 종단을 이끌어가는 고위급들에게 강력히 요구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고위직 출가자로서의 품위도 중요한 요소다. 나의 말과 행위,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가 공적으로 인식되며 문화적으로는 불교종단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종단이 집행하는 모든 행위는 바로 종단 고위 교역직의 생각이며, 행위 그 자체다. 위의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종단의 고위직 승려들은 어느 평범한 승려보다도 더욱 부처님의 제자답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세상의 이익집단처럼 그러해서는 안 된다.

현행 총무원장 선거제가 대중공의에도 맞지 않고 금권, 파벌, 독점 등 폐단이 있다는 점은 계속 지적되어 왔다. 사부대중의 80% 이상이 직선제를 선호한다는 결과도 진즉에 나왔다.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적극 검토해서 종헌 개정을 위한 진지한 접근이 벌써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종단은 내내 꼼수로 일관하여 사태를 키웠다. 야권과 불교단체들의 직선제 실현을 통한 적폐청산 주장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그러나 소위 야권이 오늘에 와서야 적광스님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는 공감보다는 야속함이 앞선다. 오늘 솟아나는 의분이 자비심과 진정한 도덕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큰 충격을 안겨준 당시에는 왜 침묵하고 소홀히 했는지에 대한 변명부터 늘어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종단은 이제라도 피해 당사자인 스님과 전체 불자들을 향해 성의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하고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겪어온 적광 스님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겨우 두어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현 집행부는 책임질 일은 마땅히 책임지는 행보를 보이고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종교집단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이다. 이대로 어영부영 35대 집행부로 넘어간다면 이 일은 한국불교와 조계종단사에 커다란 부끄러움이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후대인들에 의해 치욕의 역사가 들춰질 때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우려면 (실기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34대를 회향해야 할 것이다.

마곡사 주지 금권선거, 용주사 주지 관련 은처자 문제, 불교언론 탄압 논란 등에 대해서도 종단이 원칙 행정과 성찰과 열린 자세를 운영기조로 했다면 이미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는 문제들이다. 종단운영에 사사로움이 개입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기실 이런 문제들이다.

만약 현 집행부가 정히 시간적 제한을 이유로 현안 해결에 적극적일 수 없다면 이번 선거를 철저하게 종헌과 종법질서에 따라 역대 가장 깨끗하고 공평한 선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함으로써 35대 집행부가 원만하게 출범하여 누적된 문제를 여법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도 차선의 방안이라면 방안이겠다.

여법한 선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원칙에 입각한 후보심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상당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은 불가지상사다.

그동안 우리 종단이 보여 온 현안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법이라는 것이 일반 직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른바 ‘퇴출’이라는 형태와 다를 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역사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불교의 불자들은 더는 이전 같아질 수 없다. 적폐청산이라는 흐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대성을 갖는 것이다. 소위 야권의 주장에 시민사회가 공감하고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계종단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적 에너지에 떠밀려 혁신이 진행된다면 이 무슨 망신인가? 종단의 혁신이나 정화도 최종적으로는 스님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그나마 체면이 설 것이다. 야권도 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받으려면 냉철하게 판단하고 개차(開遮)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34대가 막을 내리는 시간의 벽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현 집행부는 집권 그 자체가 모든 책임을 떠안는 처음이자 끝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일련의 모든 사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잔여기간만이라도 성찰과 더불어서 종헌과 종법의 위상을 바로세우는 자세로 회향하기를 바란다.
   
총무원청사 마당에서 하늘을 한번 보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게 하는 것도
우박이 쏟아지게 하는 것도
모두다 종단을 책임진 높으신 스님들의 몫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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