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름다운 마지막이란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감동적으로 각인된 법정 스님의 모습은 무엇일까? 실제로 나는 불교신자가 아닌 몇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놀랍게도 같았다. TV로 방영된 스님의 장례식 모습이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부분의 고승들이 꽃으로 장식한 운구차를 이용했지만 스님은 당신의 유언에 따라 그러지 않았다. 누운 스님을 가사 한 장으로 덮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스님의 그 모습은 송광사를 찾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 나는 뒷모습이 참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송광사 다비장 산길을 오르는데 서옹 스님의 말씀이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백양사로 스님을 뵈러 갔을 때 “참사람은 삶도 죽음도 없어. 죽어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어.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지”라고 말씀했다. 중국의 조주 스님도 어느 장례행렬을 보고 “한 사람이 살아서 가는데 만 사람이 죽어서 따라간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찌 나뿐일까. 스님의 마지막 길을 보려고 온 사람들도 모두 그러지 않았을까.

일러스트 정윤경.

선가에는 화중생련(火中生蓮) 즉 ‘불 속에서 연꽃이 핀다’라는 말이 있다. 불같이 치열하게 수행 정진해야만 깨달음의 꽃이 핀다는 말이리라. 장작 불길 속에 든 스님을 바라보며 나는 화중생련이란 선어(禪語)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곳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스님의 구름 같은 삶도 온전하게 연소하는 장작불길 같았던 것이다. 스님은 늘 내게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어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스님이 먼저 실천하고 떠나신 것이다.

그날 나는 다비장에서 불일암으로 내려와 스님을 다시 만났다. 스님의 흔적과 이야기했다. 마침 스님께서 제주도에서 가져온 수선화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혼 같았다. 졸참나무로 만든 의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 일명 ‘빠삐용 의자’였다. 내가 사다드린 수제품 풍경도 아래채 처마에 달려 있었다. 스님은 큰 바람이 불 때만 소리를 낸다 하여 ‘태풍의 대변인’이라고 임명한 풍경이었다. 불일암 토방에 놓인 흰 고무신도 스님의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내 산방으로 돌아와 사립문을 걸었다. 그런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서 49재를 지내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오직 글에만 집중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약속도 뒤로 미루었다. 누에고치처럼 자신을 가두었다. 49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소설은 며칠이 더 지나서야 완성됐다. 그 작품이 바로 소설 <무소유>다. 나는 소설의 면지에 ‘진리의 문을 가리켜주신 영혼의 스승 법정 스님께 향 하나 사루며 부끄러운 이 책을 올립니다’고 밝혔다. 스님은 내게 출가 전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는데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부분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때 묻지 않은 영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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