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복지센터 체험] 하태종 어르신의 하루

하태종 씨가 오전 9시 서울노인복지센터 개장 후 불자 어르신들과 함께 당구를 즐기고 있다. 하 씨는 동료들과 함께 서로 배려하는 당구 규칙을 만들어 경기를 진행한다고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정에 잠들어도 하루가 모자란 듯합니다. 나이가 먹어도 이렇게 즐겁게 살 수 있는게 바로 부처님 가피죠.”

무더위가 한창인 8월 3일 서울노인복지센터의 헬스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불자 하태종 씨(법명 태산)는 환한 미소를 띄며 이렇게 말했다.

 

복지센터 이용하며 인생 2막

불교대학서 마음공부도 열심

“젊은 생각, 부처님 가피 덕분”

 

올해 72세인 하태종 씨는 다음블로그 ‘마중물처럼’ 운영자이며 최근 유튜브 채널 ‘하태종’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에서 소개되는 하 씨의 하루는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의 활동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40년간 봉사했지만 배움의 즐거움을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느끼는 하 씨는 또 다른 어르신 전법사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이를 떠나 청춘을 만끽하는 하 씨의 서울노인복지센터서의 삶은 어떨까.

“센터를 찾는 어르신들 중 대부분이 불자에요. 취미도 맞고, 신행생활도 비슷하니 마음이 잘 통합니다. 마음이 편하니 자주 찾지요.”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9시. 센터에 들어서자 상큼한 공기가 하 씨를 반긴다. 어르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 하 씨는 본관 3층에 위치한 당구장으로 발길을 향한다.

본관에는 다양한 문화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중 당구장은 어르신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매번 잡던 큐대이지만 동료 어르신들과 함께 경쟁이 붙어서인지 오늘은 더욱 색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칠까’를 고민하는 동료 어르신에게 “쭉 밀어서 여기로 맞춰 봐요”라며 조언도 한다.

1시간 가량 이른바 ‘열공’에 빠졌던 하 씨는 큐대를 내려 놓고 서예실로 향한다. 서예교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차! 당구를 치느라 늦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어르신들이 허리를 세우고 묵묵히 먹을 갈아 붓글씨를 정성스레 써가고 있다.

서예교실은 센터서 운영하는 탑골문화예술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 탑골문화예술학교는 3년간 심도 있는 교육을 통해 어르신들의 예술역량을 길러 선배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길을 제시한다. 이곳에서 배운 서예 실력을 뽐낸 작품은 센터 내 탑골미술관에 전시된다.

조용히 어르신들 옆에 앉은 하 씨는 먹을 갈기 시작한다.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서예실을 나온 하 씨는 점심무렵 지하주차장을 지나 옆 건물로 들어선다. 여기는 서울노인복지센터 분관이다. 이곳엔 바둑실, 헬스장, 도서관, 요리실, 영화제작소 등 또 다른 문화공간이 펼쳐진다.

특히 영화제작소는 10월에 열리는 서울시와 서울노인복지센터 주관 제10회 서울노인영화제를 맞아 더욱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는 4차산업 시대를 대비해 어르신들에게 VR기기 사용법 등 교육과 함께 VR영화에 대한 기획회의도 한창이다. 하씨는 기획단 소속은 아니지만, 유튜브 채널 운영상 VR기기 등에 관심이 많았다.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다른 동료 어르신들이 듣는 수업을 함께 들으며 종이로 된 간이 VR기기를 써본다.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됐다. 센터 안과 밖은 더욱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하루에 2000여 명이 점심을 먹다 보니 오전 10시 5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조를 나눠 입장한다. 7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이 모이고 모여 어르신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한다.

급식소 옆엔 꿈나눔카페가 있어 시원한 음료와 함께 동료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이곳에서 하 씨는 선배다. 하 씨의 가슴팍에는 세 개의 배지가 자랑스럽게 달려있다. ‘선배시민’ ‘서울노인복지센터’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다.

이중 ‘선배시민’ 배지가 눈길을 끈다. 2기 교육생이라는 하 씨는 “하루 동안 시민의식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어르신들이 앞장 서 봉사하며 서울시민들에게 선배노릇을 하자는 좋은 취지의 활동”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또 다른 배지는 조계사 신도배지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족 영향으로 불자로 성장했다는 하 씨는 가방에서 공책 여러 권을 꺼낸다.

지난해 법륜 스님과 종범 스님 법문을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시청하며 메모했고 올해는 한자 부수에 대해 공부했다. 공책들은 까만 글씨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하 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배움에는 끝이 없다. 지금까지 불교교리 핵심내용을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불자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핵심을 배워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답했다.

센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하 씨는 조계사로 향한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조계사와 500미터 떨어져 있다.

하 씨는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불교교리 수업도 듣고 있다. 교리 공부를 하는 이유도 나눔과 자비실천의 일환이었다.

하 씨는 “물리적 봉사도 중요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마음봉사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제가 다음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하 씨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블로그와 유튜브, 센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펼쳐보인다. 하 씨는 서울노인복지센터 시니어기자단으로 관장 희유 스님 법문부터 조계사 법문, 등 축제, 연꽃 축제 등 다양한 불교계 관련 소식을 게시판에 올리고 있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도 마찬가지로 스님 법문과 사찰 풍경 등 다양한 글들로 넘쳐났다.

조계사를 거닐던 중 우연히 만난 딸 또래 나이의 불교대학 동기를 향해 하 씨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과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를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산다는 하 씨. 하 씨는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조계사 불교대학에서의 다양한 활동은 마음을 되새기는데 가장 좋은 도반이라고 말했다. 나눔과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하 씨의 8월 하루는 열정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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