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뱉은 말이 死活 결정한다
무심코 뱉은 말이 死活 결정한다
  •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 승인 2017.08.21 1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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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세상과의 소통 17

말로 인한 상처와 좌절감
비행청소년들이 생활하고 있는 시설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면담에서 한 청소년이 자신의 현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한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는 친구들과 장난이 심했고, 때로는 친구를 때리거나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이 소년이 싸우는 것을 본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싸움을 잘하면 나중에 깡패가 될 거야”라며 야단을 쳤다. 그 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으나 여전히 남들과 자주 싸웠다. 그럴 때마다 ‘이러다가 정말 내가 깡패가 되는 건 아닐까? 나는 깡패밖에 될 수 없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고, 마치 그렇게 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싸우는 일이 일상이 되어 결국 수용시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만일 그때 담임선생님이 ‘깡패’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너는 힘이 세니 운동선수가 된다면 잘할 거야”라고 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러한 예언이 적중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어른이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장래를 결정짓는데 영향을 미치는 ‘예언적 결과’를 가져온다. 경우에 따라 말은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사활(死活)을 결정한다. 이 소년은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행·불행이 갈린 셈이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청소년을 선도할 때 그들이 저지른 비행을 들추고, 그것이 사회적·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애쓴다.

그렇게 지도할 경우 대개의 청소년들은 그 말이 옳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동시에 가슴으로는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된다. 잘못에 대한 반성 대신 거부감이 들면서 오히려 저항행동을 하게 된다. 잘못된 점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나를 이렇게 만든 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원망하는 부정적 감정만 깊어진다. 잘못된 점을 일깨우려고 애쓰는 일은 잘못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켜 잘못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할 수 있다. 마치 어둠을 걸러내기 위해 밤새 버들키를 흔들면 어둠이 사라지기보다는 사라지지 않는 어둠에 대한 원망만 깊어지는 것과 같다.

남의 잘못 대하는 태도에
배려 없으면 저항 일으켜
자기중심적 사고 벗어나
상대방 이해부터 선행돼야

어른뿐만 아니라 동료 학생들이 던지는 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번 상담에서 동료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학생을 만났다. 이 학생은 1학년 초에 귀농을 꿈꾸며 제주에 온 부모를 따라 서울에서 제주로 전학을 왔다. 온 지 얼마 안 되어 여러 학생들이 “너 연애 해봤니?” “너 그것 좀 보자”라며 괴롭히자 학교 가기가 두렵고, 남들을 만나기 싫어지면서 우울증이 생겼다. 이 학생은 부모의 권유로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번갈아 받았지만 차도가 없자 마지막 희망으로 필자를 만나게 되었고, 상담과 명상, 정신과 협조를 받았으나 결국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필자는 이 과정을 통해 청소년 시절의 아픈 경험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직접 지켜보았다.

청소년의 성장을 방해하는 현상은 곳곳에서 일어난다. 지난 6월 울산의 한 문화센터 옥상에서 중학생 이 모군이 투신해 숨진 사건은 더욱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난 쓸모없는 인간이다. 아빠 미안해요, 사랑해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한 달쯤 뒤 경찰의 수사에서는 이군이 왕따를 당한 이후 일들이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학교에서 이군 주변의 학생들이 재미삼아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라든가, 이군이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의자를 뒤로 빼 넘어지면 깔깔대며 웃는 행위라든가, 이군을 ‘정신병자’라고 소문을 내는 등 일련의 행위들이 이군을 좌절과 분노로 몰고 갔으리라고 본다. 사실 사건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흔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피해를 당한 개인에게는 그러한 에피소드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
우리는 보통 마음에서 분노와 공격성, 적의가 일어날 때 이를 억제하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불쾌하고 품위 없는 것이라고 보거나 심지어 도덕적인 면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표현하기 꺼려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행동을 거칠게 하는 에너지가 있어서 어떠한 형태로든 밖으로 표출되려고 한다. 이 에너지가 파괴와 연결되면 폭력으로 나타나는데, 자신을 향하면 자살로 이어지고, 타인을 향하면 살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의 밑바닥에는 죄책감이 있다. 이를테면 분노가 있는 사람은 많은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면 분노의 대상을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잘못된 사람으로 만들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동시에 부정적 감정은 자신을 보잘 것 없고 존경받을 자격이 없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데, 이러한 마음의 에너지는 타인으로부터 그에 맞는 반응을 끌어내게 한다. 그러면 결국 보잘 것 없고 존경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쉽다. 모든 면에서의 대접은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내면이 부유하면 부유한 대접을 받을 것이고, 가난하면 가난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엄청난 분노가 일어나기도 한다. 필자가 교육대학에 다닐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의 누나가 있었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녀의 행동이 곱지 않아서 그 느낌을 일기장에 썼다. 그런데 어느 날 학생의 부모가 좀 보자고 하여 갔더니 학생 가르치는 것을 그만 두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연유를 물었더니 주저하면서 “혹 내 딸에 대한 험담을 일기장에 썼느냐”고 물었다. 약간 당황하며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 딸이 그것을 본 모양이라고 했다. ‘아차 큰 실수를 했구나’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벽에도 귀가 있다더니 내 일기장 속의 말이 어쩜 이렇게 전달되다니. 벌써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그 당시 어리석었던 내 행동을 떠올리니 여전히 부끄럽다. 그런 나의 행동에 학생의 누나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며 자신에 대해 얼마나 부끄러웠을 것이며 나에 대해서는 얼마나 분노했을까?

진정한 힘과 권위는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해할 때 자아의 주인이 되기 시작된다. 나는 남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충동이나 습관, 생각, 반응 등을 통제할 수 있다. 의식이 낮은 사람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자기 자신만의 행위를 보기 때문에 주변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행위만을 본다는 것은 의식의 범위가 그만큼 제한되어 자기 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자기를 포함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나의 인생여정에는 훨씬 더 많은 영감과 깨달음이 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근원적 힘이 있다. 하나는 증오의 힘으로 이 힘은 ‘죽이기’를 겁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다른 하나는 사랑의 힘으로 이 힘은 ‘죽기’를 겁내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자신 안에서 이 두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죽이기를 겁내지 않는 사람은 나만을 소중히 여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요, 죽기를 겁내지 않는 사람은 자기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위의 경우에서 상대방에게 아무런 의식 없이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내가 상대방에게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느냐를 알아차려서 이 생각이 자기중심의 생각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고, 알아차렸다면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다음이다. 이러한 연속적이 마음의 작용을 조절할 수 있을 때 나와 남이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언어든 신체적이든 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필자는 손자와 손녀 네 명이 있다. 모두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마음속에서는 누구는 더 사랑스럽고 누구는 덜 사랑스럽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기지만 그런 마음이 때때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런 말을 그들이 알게 되면 서운하겠지만, 아마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어떤 손자에게는 전화를 덜 한다든가, 용돈을 주는 기회가 더 줄어든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손자와의 관계에서 나의 감정이 하는 행동은 나만 모를 뿐 손자들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직감적으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되 그 순간에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 마치 내 내면의 감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내게 반응한다. 명상을 하는 할아버지로서 손자들을 비교하지 말고 그 순간을 만날 수 있도록 더 깨어있어야 할 것 같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남의 인생까지 내가 책임지려고 다가가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기보다 에고의 행위다. 말은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사활(死活)을 결정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넌 실패했어’라는 말을 ‘넌 실수를 배우는 중이구나’라든가, ‘어리석은 행동을 했구나’ 대신에 ‘깨우치고 있는 중이구나’라고 한다면 훨씬 더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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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14:09:29
자기가 잘못 살아놓고 남탓을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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