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이제 무더위도 한 풀 꺾이나 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별안간 입추가 왔는데 어느새 말복도 지나갔다. 어느 덧 가을의 시작이다.

올 여름 더위는 우리에게 어떤 선물이 되었을까? 여름이라는 말은 동사 ‘열다’의 명사형인 ‘열음’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름은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과 긴장된 몸을 풀어주고 활짝 열어주는 것 같다. 실제로 더운 날씨는 우리의 몸을 늘어뜨리고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지 않는가. 이렇게 열린 몸과 마음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바다’와 같이 느껴진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自然
가장 나다운 것이 자연의 느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없어
침묵할 때 새로운 에너지 생겨


여름이 ‘열어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면 가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가을은 ‘갈무리’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가을은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실을 맺으며 추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계절이 지나 겨울이 되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음의 ‘결’을 정돈하고 아름답게 닦아야 할 것만 같다.

마음의 ‘결’을 닦는 ‘겨울’을 보낸 후 맞이하는 봄은 향기로운 봄기운만큼이나 벅찬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 순수한 설렘을 보고 활짝 열어 갈무리하며 고요히 마음의 결을 내는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자연에서 온 까닭에 사계절이라는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계절에 따라 먹는 마음도, 하는 행동도 바뀌게 된다. 오래 전 부터 우리들은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해 왔고,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 왔기 때문이다. 외부의 위협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DNA가 남아 후대로 전해졌으며 그러한 종족의 후예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단지 생존만을 보고 살아간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오히려 의미와 가치의 영역으로 확장해 볼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하고 가치 있게 하는 길이라고 본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과 함께 흐르는 법을 잊어버렸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되 욕심 부리지 않으며 평화롭고 여유롭게 흐른다. 자연에서 온 우리들이 자연과 무관하게 산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고 자연의 느낌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알고 그 모습과 내용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불만을 갖고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이지, 자신의 본래적 가치를 안다면 그 자체로 충만하고 온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이 자연을 바라보는 느낌처럼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즐겁고 의미가 있고 가치 있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고 무의미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물 흐르듯이 살아가면 좋은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그 고정관념이 문제를 만든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그 가운데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연은 꼭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하는 그 일을 그저 무심(無心)하게 할 뿐이다. 무심하다 하여 무관심(無關心)한 것은 아니다. 집착하지 않으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기 본연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던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삶의 의무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운데 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을 때, 우린 텅 빈 충만감을 느낀다. 이것이 곧 자연의 상태이며 그 흐름이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순간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자연처럼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럽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보자. 하고 싶지 않고 하기도 힘든데 해야 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면 하나 둘 정리해보자. 모든 것을 다 이런 식으로 없애다 보면 이제 내가 할 일이 없어진다. 맺어야 할 관계도 사라진다. 아무것도 아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안 만나도 된다면 이제 진정 내가 할 일과 맺어야 할 관계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특별한 일을 원하지 않는다. 별 일 없으면 좋고 아무 소식이 없으면 그만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는가? 그냥 무심하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평화다. 그러한 고요함에서 행복감이 밀려온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도리어 새로운 힘이 생긴다. 밥을 안 먹으면 처음엔 배도 고프고 괴롭지만, 조금만 지나보면 본능적으로 죽지 않고 살아 보려는 에너지를 만든다. 몸이 축적해 두었던 단백질과 지방을 태워서 에너지를 발생시켜 공급한다. 배고픔을 조금 참아 보면 더 균형 잡힌 체형과 적당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나답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은 하지 않고 잠시 침묵해 보자. 이것저것 맴돌던 생각이 하나 둘 정리되며 정말 좋은 생각이 드러난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그 마음이 들리기도 하고 나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들리기도 한다. 내 안에 원래 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나 자신을 살폈을 뿐이다.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는 종종 머리가 아프거나 피곤하면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배에 집중을 하거나 배로 호흡을 하며 그냥 다 잊고 잠에 들기도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일단 체력이 회복된다. 머릿속 생각이 정리되거나 갑자기 좋은 생각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스톱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그냥 쉬거나 편하게 있는 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다가오는 그것을 해보자. 무심한 자연처럼 자유롭고 걸림 없이 살자. 자연은 집착하지 않고 속박되지도 않는다. 잠시 멈추고 쉬어가자. 자연과 함께 하는 그 길이 곧 행복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