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과 함께하는 수행

주변 인연, 또 다른 나침반

영업하며 사람 만나 수행

하심·감사 습관 형성 계기

 

이효리와 아이유, 도반의 중요성 보여줘

흔들릴 때 의지할 수 있는 정신세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종편의 한 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는‘효리네 민박’을 가끔 보고 있다. 가수 이효리는 이제 서른아홉이라는데, 꾸밈 없이 솔직한데다 거침없이 툭, 던지는 말속에 그녀만의 철학이 뚜렷해서 놀랄 때가 많다. 제주도에 있는 이효리의 집을 개방해서 민박을 받고 그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 프로는 이효리 부부의 담백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담아내고 있어 인기가 꽤 높다고 한다.

지난 주 방송에서는 그녀의 소속사 직원이 서울에서 내려와 다른 예능프로그램의 출연 여부를 과제로 던지고 돌아갔다. 그리곤 출연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이효리가 조용히 15분 남짓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요가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다음엔 남편 이상순과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왔는데, 정성껏 우려낸 차를 마시면서 남편과 앞일을 상의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민박집에 직원으로 와 있는 가수 아이유에게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내가 흔들릴 때 의지하는 것이 세 가지 있어. 하나는 요가, 또 하나는 차, 그리고 하나는 이상순.”

그러자 나이에 비해 늘 조용하고 진지한 아이유가 대답했다.

“저는 흔들릴 때마다 일(노래)에 집중했거든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효리가 즉각“일 가지고는 안 돼!”하고 대응했다.

“그렇더라고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걱정도 사라져 좋은데, 끝나고 나면 다시 쓸쓸하고 불안해요.”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미 탑가수라는 무게를 지고 있는 아이유는 “잘 되는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다음엔 잘 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늘 행복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그날 이효리는 “네가 흔들릴 때나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수행을 시작해보라”고 조언했을 것만 같다.

자신이 흔들릴 때 사물을 바르게 판단하고 자신을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세계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게 지혜로운 삶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고요히 비추어보고 안정을 찾는 것, 그것이 이효리에게는 요가였을 것이다. 108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음이 혼란으로 출렁일 때 조용한 곳에 좌복을 깔고 천천히 절을 하면 거칠던 호흡이 어느새 고요해지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거칠게 올라오던 마음의 동요가 가라앉으면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달 한 번 도반과 함께 하는 1080배

마음이 흔들릴 때 홀로 하는 수행도 좋지만 가끔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수행도 좋다. 내 경우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일정으로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는데, 도반 한 분 한 분들께 배우는 지혜가 정말 많다. 전국의 수많은 절들을 다니면서 각 절의 스님들께 감동적인 법문도 많이 듣는다. 저녁노을이 황홀했던 해남 미황사,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해인사 원당암, 청화큰스님의 향훈이 서려있어 가슴 뭉클했던 곡성 성륜사, 선원장 스님의 환한 미소가 담긴 맑은 차를 대접받았던 은해사 백흥암 등지를 다니면서 10년을 넘게 매달 진행되었던 정진회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추억도 많다. 나는 늘 이러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을 108배를 한 공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문경에 있는 한산사에서 정진했다. 전국이 폭염으로 끓고 있었지만 산 속 깊숙이에 있는 한산사는 저녁에 되자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저녁예불 후 한산사 선원장이신 월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절을 하는데 기운이 저절로 솟았다. 왜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가를 사자후와도 같은 깊은 법문을 통해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늘 정진을 함께 하고 있는 나의 도반 두 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오랜 동안 함께 해온 스무 명 정도의 모든 도반들이 모두 나의 선지식이지만 지난달 7월 정진회에서 가장 연장자인 보명화 보살님과 최연소자인 동심거사님을 소개한다.

먼저 올해 일흔 아홉이신 사경가(寫經家) 보명화 보살님. 매달 철야정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는 분이다. 저녁 9시에 시작해서 새벽 3시 반 아침예불 시작 전까지 밤새 절을 하신다. 절을 하며 아미타불을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고르고 힘 있어 보인다. 무릎이 불편해서 완전히 굽힐 수 없는데도 천천히 바른 자세에 가장 가깝게 절을 하신다. 어쩌다 한 시간 정도 좀 쉬고 싶어도 쉼 없이 한결같은 자세로 절을 하고 계신 그분의 모습을 보곤 경책을 받곤 한다. 언젠가 “무릎이 불편하신데 왜 절을 하세요?”하고 여쭈었더니, “잠을 안 자려고요.” 이렇게 간단히 대답하셨다. 한 달에 한번쯤은 밤새 온전히 깨어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좌선을 하고 싶어도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서 절을 한다고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 것인지 저절로 공부가 된다. 오후 불식을 하고 주로 낮엔 사경을 하는데, 전시회에서 그분이 쓴 글씨를 보고 있으면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체가 오랜 수행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절은 결혼하고 새댁 때부터 했다.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예불에 참석했다고 하니,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오셨는지 짐작된다. 그때 108배는 물론 3천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 세 시면 일어나서 진하게 내린 거피 한 잔을 마시고 가장 먼저 도반들과 함께 하는 사경방에 들어온다. ‘보리방편문’을 컴퓨터로 사경하고 매번 잠언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운 아침 인사를 남긴다. 우리는 그 분을 금강(우리 모임의 이름)의 그레이스 켈리라고 부른다. 그레이스 켈리는 알다시피 모나코 왕비를 지낸 미국 출신 영화배우다. 우아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레이스 켈리보다 더 기품있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계신 나의 도반 보명화보살님. 오래도록 한 달에 한 번 있는 철야정진에서 108배를 함께 하며 108배 수행이 얼마나 사람을 우아하고 아름답게 해주는지 증명해 주시리라 믿는다.

다음은 우리 수행모임에서 이효리 만큼이나 매사 쿨하고 내공이 단단한 동심거사 이야기다. 어떤 것에도 웬만해서는 동요함이 없는 사십대 초반의 그는 내가 108배 수행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자 가장 반가움을 드러낸 도반이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그는 논문 100편보다 절수행 책 한 권이 낫다고 본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많은 책이나 불교 관련 논문들을 통해 오히려 본질을 놓치고 번잡스러운 분별심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때가 많다면서 수행의 깊이에 관련 없이 각자가 체험하는 진실한 경험이 묻어나온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가 108배를 시작한 것은 삼십대 초반, 오랫동안 사귀었던 연인이 수녀원으로 떠나는 힘든 일이 닥쳤을 때였다. 내면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최고의 상태에 이른 때이기도 했다. 당시 우연히 접한 금강경을 읽고 마음이 크게 열리면서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내 마음 속에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이 가장 큰 문제구나’하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금강경의‘여여’라는 두 글자에 마음이 동화되어 매일 108배를 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3천배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스스로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중요한 방편이 되어 주었다. 처음 천배를 넘기고 3천배를 넘겼을 때의 환희로움은 지금도 크게 남아있을 만큼 자신에게 닥쳤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매일 참회하고 돌아보는 108배가 습관이 되다보니 신체적으로도 건강해졌다. 삼보일배로 설악산 봉정암을 10번 이상 다녀왔다. 한 겨울 산속에서 높이 쌓인 눈 위에서 홀로 절을 하면서 이름 모를 산새들과 교감하기도 했고, 눈보라의 어두움 속에서 죽음의 경계를 맛보기도 했다.

절을 한 지 십 수 년이 흐른 지금 그는 보험세일즈를 업으로 하는 회사원이다. 이십대 때 도전했다가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얽매어 스스로 쌓은 벽을 넘지 못했던 보험세일즈에 다시 도전해 지금까지 더없이 만족하게 일하고 있다.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수행 방편이 되었다. “내가 오늘 만나는 모든 생명들을 부처님처럼 대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하는 염원으로 하루를 시작해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하는 습관만으로도 충분히 영업이 잘된다는 것을 놀랍도록 경험한다. 그는 지금 꽤 높은 수입을 올리는 직장인이지만, 서울 근교에 방 한 칸을 얻어 살며 된장에 몇 가지 야채를 찍어먹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독신인 그에게 행복의 정의를 물어보았다.

“오늘 이 순간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며 행복임을 깨달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는 매일 참회하는 마음으로 108배를 하면서 매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여여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정진하며 그를 볼 때마다 매일 하는 108배가 사람을 얼마나 겸손한 사람으로 만드는지를 실감한다.

중국의 사상가 노자는 물이 가지는 일곱 가지 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굳건한 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 장엄한 폭포처럼 아래로 몸을 던지는 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려는 큰 뜻.” 인간도 수행을 통해 저 일곱 가지를 찾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토록 많은 인생사를 위한 법문이 담긴 팔만대장경을 한 마디로 줄이면 ‘겸손’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절을 하면 겸손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 경험자들이 하는 말이다. 폭염이 초가을까지 간다는 예보가 있다. 혹시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계곡물이 흐르는 산사에 머물며 겸손을 익히는 108배에 한번 도전해보시면 어떠실지.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