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기 중앙대 교수, 불복장 국제 세미나서

국보 제126호 불국사 3층석탑 사리장엄구 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일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지만, 중국 측이 자신들이 제작해 신라로 전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송일기 교수는 개운사 불복장 전적들의 간행 시기를 예로 들며 이를 반박했다.

경주 불국사 3층석탑(석가탑) 사리공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이하 무구정광)〉에 대해 학계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 중인 세계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과 달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못하고 있다.

이유는 중국에서 〈무구정광〉이 중국서 간행돼 신라로 전래됐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을 정면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나왔다.

8세기 後 간행 없단 이유로
무구정광 ‘中→신라’ 주장은
동북공정에 이은 ‘출판공정’
개운사 아미타불 불복장서
9세기 경전 발견 ‘공백 無’

송일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8월 11~12일 이화여대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과 이화여대 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불복장 국제 학술대회’에서 최근 불복장 전적 수습 사례를 분석하고 중국 측 주장을 반박할 증거들을 제시했다.

현재 중국이 ‘〈무구정광〉 중국 제작설’을 제기하는 이유는 〈무구정광〉의 간기가 없고, 이후 300년 간 새로운 인쇄물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서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1995년 안암동 개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 발견된 불복장 유물에서 나온 전적류를 중국 측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로 제시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당시 개운사 아미타불 복장물에서는 전적류 28점, 문서류 13점이 수습됐다. 이 중 전적류는 조선시대 목판본 4종 6책을 제외한 나머지 22점은 모두 통일신라부터 고려 초기에 간사(刊寫)된 경전이다.

또한, 22점의 경전 중 20점은 모두 〈삼본화엄경〉으로 현재까지 소개된 단일 불상의 복장 유물 중 가장 많은 수량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개운사 복장본 〈화엄경〉 20점 중 최소 4점 이상은 신라하대에 간행됐을 가능성이 높은 국보급 전적 문화재이며, 나머지도 고려 초기에 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중국 측의 억지 주장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인쇄 실물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측의 〈무구정광〉 제작 주장은 영토 문제인 동북공정에 이은 출판공정”이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출판공정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개운사 불상 복장물인 〈화엄경〉 4종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8세기에 간행된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 이후 2~3세기 공백을 보완할 결정적 자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날 학술대회는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제임스 롭슨(James Robson) 하버드대 교수는 ‘불교 성상 뒤집어보기: 불상의 내용물은 왜 중요한가’는 기조강연에서 불상 안에 다양한 성물을 안치하는 불교전통의 중요성과 이러한 전통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정은우 동아대 교수와 이승혜 삼성미술관 리움 책임연구원은 한국불복장의 기원과 형성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고, 강희정 서강대 교수는 불상을 단순한 조각에서 생명력을 가진 예배의 대상으로 탈바꿈시키는 복장의례의 의의를 발표했다. 이용윤 조계종 문화부 문화재팀장은 불화 복장 의례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제시했다.

해버포드대 행크 글래스만(Hank Glassman), 오레곤대 아키코 월리(Akiko Walley) 교수 등 해외 초청 학자들은 일본 밀교와 도다이지(東大寺) 등의 복장유물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한국 학자와 연구자들에게 소개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는 ‘불교와 동아시아의 종교들’ 국제 인문학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렸으며, 참여 학자들은 학회 이후 수덕사, 송광사, 국립중앙박물관 복장 유물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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