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교육원 교육국장 진광 스님

서울 길상사 일요법회… 주제: 불교의 희망
 

국내 종교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불교인구는 1000만 명에서 700만 명으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불교 위기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조계종 교육국장 진광 스님은 7월 16일 서울 길상사 일요가족법회서 ‘불교의 희망’이라는 주제로 법문했다. 진광 스님은 학인스님들의 다양한 역량을 소개한 뒤 “모두가 힘들 거라 얘기할 때 누군가는 나서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박진형 수습기자
진광 스님은… 법장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94년과 1998년 통도사서 청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동국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총무원 사서국장과 교육원 불학연구소 사무국장, 연수국장 등을 역임했다.

젊은 스님들이 보인 역량
위기 처한 불교에 희망돼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한다

오늘 법문에서는 제가 아니라 저보다 더 똑똑한 학인스님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조계종 교육원은 2014년부터 학인스님들의 염불시연대회와 외국어스피치대회를 진행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토론대회, 올해는 6월 1일 조계사 앞마당에서 설법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학인스님들의 수준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기보다 사회에서 많이 배워왔고, 출가한지 길어야 3년차밖에 안 됐지만 용감하고 멋집니다.

지루하다고? 염불의 새 발견
염불대회를 기획할 때 파격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새롭게 만드는 염불을 보고 싶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은 이에 맞춰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선 현재 평택 명법사에 계신 보견 스님은 광명진언과 이산혜연선사발원문으로 염불을 창작했습니다. 따라 부르기 좋고 익숙한 노랫가락으로 염불해 관객들과 함께 호흡했죠. 염불대회에서 개인전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보견 스님의 광명진언은 귀에 착 감깁니다. 그 이유는 ‘홀로 아리랑’의 음가에 광명진언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신도들을 비롯한 모든 이가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굉장히 흥겨운 시간이 됐습니다. 저 염불 이후 저는 큰스님들께 “염불을 저렇게 만들어서 희화화하면 되겠느냐”고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새롭게 무언가 만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전통식 염불, 49재 염불을 2~3시간씩 듣는다고 해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염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9재문은 굉장히 좋은 내용입니다. 그것을 한글로 만들어 신도들과 함께 소통하고, 합송하고, 신도들의 손주가 돌아가신 할머니·할아버지한테 편지 쓰고, 살아계실 적 영상 보고…. 훨씬 더 거룩하고 의미 있는 49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소개할 것은 청암사 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단체전에 나와 선보인 염불입니다. 제목은 ‘불러요 다라니’인데요. “즐겁고 신나는 염불을 하고자 한다. 일반인도 잘 따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목탁 등을 악기로 사용해 아기자기한 율동과 쉬운 음을 활용했습니다.

어찌 보면 천방지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염불이었습니다. 이후로 모든 여름 불교대학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청암사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저 공연을 합니다.
첫 염불대회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유럽의 ‘AFP통신’에서 세계 10대 뉴스 중 하나로 뽑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불교가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일반인들과 청년들이 불교를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불교가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멀기만 하지 않은 스님들
염불대회 이후 교육원에서 외국어 스피치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저희 강원의 기본교육기관은 염불을 두 학기 가르치고 외국어도 두 학기 가르칩니다. 그래서 얼마나 잘하나 보려고 시작했습니다. 외국어 스피치대회를 기획할 때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산 속에서 한두 학기 배워서 과연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까, 괜히 창피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최우수상을 받은 고우 스님은 청암사 승가대학 출신으로 당시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3H라는 비타민을 홈쇼핑에서 착안한, 홈 나눔(Home Sharing)방식으로 소개했습니다. 3H는 바로 Healing(치유), Happiness(행복), Hope(희망)이었습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시중에 건강을 위한 영양제는 많지만 마음의 건강을 위한 영양제는 없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정말 창의적입니다. 마음비타민을 홈쇼핑 방식으로 팔 생각을 했으니까요. 고우 스님은 지금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랭귀지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다음은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학인스님들이 비트박스를 하는 모습입니다. BBS불교방송 출가콘서트 ‘청춘, 자유를 향한 날개짓’ 1부에서 ‘법상 스님과 동국대학교 백상원’팀이 ‘Show Me The Buddha’라는 제목으로 힙합음악에 랩과 비트박스를 더해 승려의 삶과 불교를 표현했습니다. 염불대회 이후 지난해 출가콘서트에서 재공연한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00만을 넘기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음은 토론대회입니다. 토론대회는 100% 망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토론이 되기 때문에 산속의 스님들은 힘들 것 같았습니다. 본선 토론대회의 주제는 ‘존엄사를 허용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대상을 받은 봉녕사 ‘선재선재’팀의 보인 스님과 진욱 스님은 한 치의 막힘도 없이 토론합니다. 상대팀 사미스님이 선재선재팀 사미니스님들에게 혹시 법조계서 종사했는지 물을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출가 전, 사미니스님은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토론을 보던 교육원장 스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저렇게까지 잘할 수 있는가’하고 놀랐습니다.

공감하는 이야기, 설법대회
올해 설법대회로 넘어가겠습니다. ‘스님이 설법하는 게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를 받고 상급 승가고시 후 주지 될 자격을 갖출 때까지 설법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설법대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설법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동학사 세광 스님 설법입니다.

-설법대회 최우수상 동학사승가대학 세광 스님, ‘행복’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모두 행복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좋아하는 것을 가지는 삶’에서 ‘가진 것을 좋아하는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부처님의 생애〉를 읽었습니다. 부처님이 걸어오는 걸음마다 꽃비가 내리고, 추운 사람은 따뜻해지고, 배고픈 사람은 배가 부르고, 고통 받던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에 가득 차있는 행복이 흘러넘쳐 주변까지 행복하게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준다면, 그 순간만큼은 저와 연등부처님의 걸음이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걸음도 연등부처님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스님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업이 어떻고 윤회가 어떻다며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 공감할 수 있는 말로 법문합니다. 다음은 대상 수상자입니다.

-설법대회 대상 해인사 승가대학 금후 스님, ‘연기’에 대한 이야기.
세상의 모든 현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연기하다’입니다. 원인과 결과로 나타나는 법,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연기를 ‘덕분에’라는 단어로 쉽게 소통하고자 합니다.

출가를 결심하고 일주문을 넘어가는 순간, 마치 짜인 각본처럼 진행됐습니다. 출가한다고 했더니 3천배를 시키더군요. 200배쯤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270배쯤 바쁜 일정 때문에 일부터 하라더군요. 그렇게 저는 행자가 됐습니다. 만약 제가 3000배를 다 했다면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바쁜 일정 ‘덕분에’ 감사드립니다. 이렇든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로 나타납니다. 누군가에게 ‘덕분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수행합시다.

태초에 길은 없었다
제가 지금 교육국장으로 7년째 이 자리에 있는 것, 저분들 덕분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는 그 첫 길을 나서서 걸어야 합니다. 중국의 문호 루쉰이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길과 같은 것이다. 태초에 길은 없었다. 어떤 한 사람이 걸어가고 그 뒤를 따라서 두세 사람이 따라가면서 비로소 길이 생긴다.”

누군가의 뒤꽁무니를 쫓아갈 것인지 누군가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각자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저는 뒤쫓아 가기보다는 첫 번째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인 조지버나드쇼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을 보고선 ‘왜?’라고 묻는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보고선 ‘안 될 게 뭐야?’하고 이야기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처음으로 뭔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작할 수 있고, 그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의 법문보다 젊은 학인들이 법문하고, 염불하고 또는 영어를 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더 감동적으로 다가섰을 것입니다.

스님들이 스스로 변할까요? 신도들이 변해야 스님들도 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님이 변하면 신도도 변할 수 있지만 매양 스님만 쳐다보고 스님이 변화시켜줄 것이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신도들께서 더 새로운 사고를 갖고 행동해야 합니다. 스님들을 변화시키고 이 불교가 변하려면 스님은 물론 신도 스스로 변화해야합니다. 그렇게 앞장서 줬으면 좋겠습니다. 불교에 희망이 없지 않습니다. 저런 젊은 희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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