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들은 매년 20여 만 명의 아들들을 군에 보낸다. 그 아이들이 군복무 중 맞게 되는 임무는 뭉뚱그려서 국토방위이지만 실은 다양한 임무들이 주어진다.
 

최근 불거진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에서 알려진 관사 공관병도 군의 최하위 계급자인 병사들이 맞게 되는 임무들 중 하나이다.

이 공관병의 임무 말고도 군에서는 온갇 잡다한 사역 성격을 띤 임무들이 병사들에게 주어진다. 병영 내 매점을 관리하는 PX병, 골프장이나 기타 체육시설, 혹은 최상급부대(계룡대)와 전국각지의 휴양소들에 설치된 수영장을 관리하는 병사, 하계휴가기간 군간부와 가족을 대상으로 임시 운영되는 휴양지나 복지기관, 지역 등의 시설, 안전관리 등을 책임지는 병사도 있다. 그런가하면 사실상 편제로 운용되는 소대장 당번병이나 중대장 전령 등 병사들도 역시 넓게 보면 지휘자, 지휘관의 개인적 시중을 드는 사역병의 역할이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누구누구 ‘따까리’라고 부르는 바로 그 것 말이다.

전령·골프병, 일종의 군내 사역병
고려·조선 관비·관노제도와 같아

국가의 합법적 인권유린의 현장
한국전쟁 당시 장군들 행태 기록
아녀자 시중 등 적폐 그대로 전해져

연 20만명 선교 간증 박 대장
종교 자유는 나치독일군도 보장
“군인권 강화, 또 다른 시대과제”

국방부 문헌들을 찾아봐도 이런 제도가 언제부터, 왜 생긴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몇몇 장군들이 남긴 회고록을 통해 지휘관들이 부하나 아랫사람들로부터 시중을 받는 관습과 관례의 행태와 사례들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반성적 의미를 지닌 회고가 바로 백선엽 장군이 남긴 ‘6.25 징비록’이다. ‘전쟁 중 이동하는 부대 대열에는 이불보따리와 세간을 지닌 젊은 처자가 지휘관들의 지프를 타고 함께 있었다’는 회고가 그 것이다.
 

전쟁에 임하는 지휘관의 정신자세를 탓하고 반성하자는 의미이겠지만 이런 증언으로 보아 우리 군지휘관들이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관습은 마치 수백년간 이어졌던 관노와 관기제도처럼 이어져 왔음이 짐작된다.
 

그 거부 할 수 없었던 청산되지 못한 비참한 역사의 잔재가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 군대의 공관병 제도다. 이토록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인권침해를 청산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어 자행해 온 사람들에게 일제치하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비극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고나면 보도되는 초임여군간부들에 대해 저질러졌다는 고급지휘관들의 성추행ㆍ성폭행을 근절하자던지, 짐승이나 다름없이 부려지는 병사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주장들이 그들에게 가당키나 했을지 말이다.
 

이미 겪었고,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부당하고 불합리한 불법임을 알고서도 침묵해 왔거나 묵인해온 부모세대의 무지와 무책임을 자식들이 고스란히 전가되어 자괴감과 모멸감이 든다.
 

사찰과 성당에서 초코파이 한 개를 주면 교회는 두 개를 줘 병사들을 유인하고, 연간 20만 명을 전도하면 20년 내에 국민 3000만 명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박 대장의 간증도 실로 어처구니가 없음을 넘어 모골이 송연하기까지 하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합법적 권한으로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는 부하들의 신앙까지 강제하고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겠다는 그의 무지와 폭압적 사고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이 정도면 이미 종교탄압 수준이다. 무자비한 테러와 살인으로 악명 높은 알카에다나 보코하람, 세상을 혼돈과 죽음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IS 등의 만행이 모두 표면적으로는 종교적 원인에서 기인한 것인 점을 유의해야 한다.
 

지금보다 인권의식이 훨씬 못했던 반세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생명을 앗아간 히틀러 나치 치하의 독일군에서도 군인 개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허용했었다는 사실을 21세기 민주주의 대한민국 육군대장 박찬주와 부인은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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