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고잔지(高山寺)

일본 고잔지 석수원의 산문. 본래 ‘조수인물회화’는 석수원에 봉안돼 있었으나 지금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원본은 특별전 등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많은 방문객으로 언제나 붐비는 인기 관광지인 교토 아라시야마(嵐山) 북쪽에 다카오·마키노오·도가노오는 단풍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교토 중심지에서 버스를 타면 아라시야마 가까이에 있는 닌나지(仁和寺)를 지난 후, 얼마 안돼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맴돌아 올라가면 도가노오산 고잔지 쪽으로 간다.

고잔지(高山寺)는 작은 산사이지만 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고, 헤이안쿄 천도 1200주년인 1994년에 ‘고도(古都) 교토의 문화재’로 도지(東寺), 뵤도인(平等院) 등 교토를 대표하는 사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묘에 스님에게 하사된 고잔지
국보 ‘조수인물회화’로 유명해
4권에 각종 동물 의인화 표현
사찰 봉안·묘에 관계 ‘미스터리’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루마리 그림인 ‘조수인물희화’는 고잔지에 가 본적이 없더라도 일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한국인에게는 화엄종조사회전과 원효대사상, 그리고 의상대사상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고잔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잔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에 의하면 고잔지는 나라시대 후반인 774년에 고닌(光仁) 천황의 칙원(勅願)으로 창건되었고 신간지도가노오보(神願寺都賀尾坊)라고 일컬었다. 이후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오랫동안 고잔지 남서쪽에 있는 진고지(神護寺)의 별원이었다.

1206년에 고토바(後鳥羽) 상황이 화엄종 번영을 목적으로 사찰 땅을 묘에(明惠) 상인(上人)에게 하사했고 사찰 이름이 고잔지가 되었다. 고잔지는 진고지 별원이라는 입장에서 떠나 독립한 사찰로서의 걸음을 시작했다. 고잔지라는 이름은 화엄종에 유래하는 ‘일출선조 고산(日出先照高山)’에 의하여 지어졌다. 지금도 고잔지 석수원(石水院)에 걸려 있는 ‘일출선조고산지사(日出先照高山之寺, 해가 뜨고 제일 먼저 비추는 높은 산의 절)’라는 칙액(勅額)이 그때 상황이 내려준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고잔지는 건물이 별로 없다. 창건 당시의 건물이 석수원 뿐이고 근세에 들어 재건된 것도 많지 않다. 옛날 많은 전각과 탑이 있던 곳엔 지금 큰 나무로 채워져 있다. 볼거리가 별로 없다는 인상이 생길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고잔지 본래의 모습이 오히려 거기에 있다. 그것이 묘에 상인의 넋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인가 싶다.

묘에 상인은 1173년에 오사카 남쪽에 위치하는 와카야마(和歌山)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을 여의어, 다음 해에 외삼촌이 있는 진고지에 입산해 연찬을 쌓았고, 1188년 도다이지 계단원(戒壇院)에서 수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21세 때 화엄종 흥륭을 위해 도다이지에 출사(出仕)했으나 그만두고 23세 때 와카야마 산 속으로 옮겨와 순수한 수행 생활을 시작했다. 학문을 열심히 쌓은 묘에이지만 큰 사찰에서 학승들이 출세나 학문적인 관심만 있을 뿐 수행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수행을 중요시하는 묘에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간 것이다.

조수인물회화 팜플렛. 이 그림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렸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어머님을 잃은 묘에 상인이 평생 어머님이라고 여겨 신앙한 것이 불안불모상(佛眼佛母像)이라는 불화였다. 그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불도를 닦겠다는 의지를 굳히기 위해 불안불모상 앞에서 오른쪽 귀를 잘랐다.

묘에는 암자를 몇 번 옮기면서 약 10년간 와카야마 산 속에서 수행을 했다. 이것이 위대한 성직자 스님으로서의 묘에 상인을 형성시키는 데 큰 토대가 되었다.

1206년 11월, 34세 때 고토바 상황에게서 고잔지를 하사받았다. 가마쿠라 시대에 돌입한 당시는 정토종, 임제종 등 가마쿠라 신(新) 불교가 발흥(勃興)했는데 묘에 상인이 화엄종, 진언종 등의 도량으로 가람을 정비했다. 묘에 상인이 정토종 개조인 호넨(法然) 스님이 오직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열심히 염불하면 모두 다 왕생할 수 있다는 전수염불을 주장하는 것을 비판해, 불법은 타력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참선이라는 자력으로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행을 중요시하는 동시에 학문을 잘하는 묘에는 저서도 잇달아 저술해, 불교계의 대표적인 명승이 되었다.

1232년 60세로 입적할 때까지 행법 좌선 수학을 열심히 했다. 초상화 ‘묘에상인수상좌선상(明惠上人樹上坐禪像)’에는 묘에 상인이 만년에 소나무 위에서 좌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초상화 치고는 인물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자연 속에 인간이 있다는 것과 인간과 자연이 잘 조화되는 것을 그림에서 알 수 있다. 새와 다람쥐가 그려진 자연 속에서의 좌선상이라는 초상화는 가마쿠라 시대의 고승을 그린 초상화로서는 예외적이다.

묘에 상인이 개성이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어서 지금도 그의 매력에 빠진 팬이 많다.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가 꾼 꿈을 기록한 ‘유메노키(夢記)’다. 1191년에 시작해 이후 40년간 꿈을 기록한 일기에서 그의 솔직한 마음을 엿볼 수 있고, 꿈을 꾸면서도 불도를 구한 것도 유메노키에서 알 수 있다. 묘에 상인의 일기 ‘유메노키’엔 동물들도 등장한다. 강아지가 꿈에 나타난 적도 있다고 한다. 석수원에선 묘에 상인이 사랑한 귀여운 강아지 목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강아지를 보면 묘에 상인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고잔지의 수많은 문화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역시 두루마리 그림인 조수인물희화이다. 갑을병정(甲乙丙丁) 4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조수인물희화는 모두 수묵화로 그려져 있고 글이 있는 일반 두루마리 그림과 달리 글도 없는 그림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4권 세트로 제작된 게 아니라 갑을권은 헤이안시대 후반, 병과 정권은 가마쿠라시대에 제작되었다.

갑권에는 의인화된 동물이 그려져 있고, 을권에는 말이나 소 등 실재하는 동물과 상상의 동물이 등장한다. 병권은 전반에 인물, 후반엔 갑권처럼 사람의 흉내를 내는 동물이 나오고, 정권에는 인물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것이 갑권으로 토끼·개구리·원숭이를 중심으로 여우·고양이·쥐 등 11종류의 동물이 수영과 씨름을 하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있어 정말 재미있다.

고잔지 석수원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복제품이고 실물은 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지만 박물관에서 실물을 전시할 때가 있어 3년 전 교토국립박물관으로 보러 갔다. 이 전시회는 인기가 굉장히 많아 일본 전국에서 찾아온 관람객들로 매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도 2시간 가까이 줄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줄을 서면서 ‘동물 그림을 보기 위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갑권 동물들의 약동감이 가득하고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직접 실견하게 되면서 고단했던 몸도 불편했던 마음도 완전히 사라졌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줄을 서서 볼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기회가 닿는다면 실견하시기를 권한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이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했는지, 주제는 무엇인지 등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4권이 인간과 동물, 행사와 놀이 등 공통적인 요소는 있지만 글도 없기 때문에 연결된 한 이야기로 읽을 수는 없다. 언제 고잔지에 왔는지, 왜 고잔지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았다. 묘에 상인과의 관계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동물을 사랑한 묘에 상인과 조수인물희화가 인연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고잔지 답사 안내

고잔지에 갈 때는 교토역에서 출발하는 도가노오·슈잔행 JR버스를 타고 간다. 한 시간에 2번 정도 운행한다. 오사카에서 한큐 전철로 갈 경우 시조오미야(四?大宮)역에서 내리고 이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소요 시간이 시조오미야역에서 약 45분 정도이다. 또 지하철 시조역 혹은 한큐 가라스마역에서 교토 시(市)버스로 갈 수도 있지만 JR버스가 더 편리하다. JR버스 도가노오 정류장에서 내리면 큰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주변엔 식당이 있다. 식당에서 맑은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밥을 먹는 게 기분이 참 좋다. 여기까지 오면 좋은 환경에서만 나오는 물총새도 있어 교토 중심지에서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끽할 수 있다.

사찰 출입구는 앞문, 뒷문이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는 뒷문이 더 가까워 요즘 뒷문에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뒷문에서 들어가면 석수원이 바로 나온다. 경내 답사는 석수원 외에는 평소에 무료로 볼 수 있고, 단풍철에만 경내도 입장료가 필요하다.

가마쿠라시대에 세워진 석수원은 고잔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고, 가마쿠라시대 건축물의 걸작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금당 가까이에 있었으나 19세기 후반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수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는 고잔지이지만 거기서 관람할 수 있는 문화재는 일부분이다.

하지만 석수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아름다워서 들어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인공적인 미가 특징인 교토 중심지의 큰 사찰들과 달리 석수원은 자연과의 경계가 없고 마음이 편안해져 툇마루에 앉아 산을 보면 거기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경내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차를 재배한 곳으로 일본 최고의 다원(茶園)이라는 돌비가 있다. 묘에 상인이 일본에 처음으로 선종을 전한 요사이 스님이 송나라에서 가져온 차 씨앗을 받아서 고잔지 가까이에서 심었더니 질이 좋은 차가 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우지차(宇治茶)는 고잔지 차 묘목을 옮겨 재배된 것이라고 전한다. 고잔지 주변엔 진고지를 비롯한 볼거리가 많아 거기서 답사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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