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파리에 대하여

제목만 보면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프랑스 파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예술의 도시 파리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름철만 되면 극성을 부리는 집 안의 불청객 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마도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음식에 붙어 있는 파리는 혐오감 내지는 적대감이 든다. 녀석이 음식에 붙어 먼저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파리가 음식을 훔쳐간 일은 없을 터. 파리가 음식에 붙는 까닭은 눈곱만큼이라도 좀 나눠먹자는 녀석의 배짱이 아닐까.

사람들은 파리를 보면 유독 적의를 드러낸다.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파리에게 치명적인 살충제를 뿌린다. 이처럼 잔인한 가해자인 사람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파리는 사람만 보면 지레 ‘용서해 주세요’ ‘세상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듯 앞다리를 내밀고는 싹싹 빈다. 그런데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는 것은 잔털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 앞다리의 빨판으로 먹이를 잘 빨고, 냄새를 맡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정심이 싹 가시는 파리지만 그래도 앞다리를 들고 비는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은 왠지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일러스트 정윤경

법정 스님도 깔끔한 성격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방 안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꼴을 보지 못했지만 연세가 드신 뒤부터는 앞다리를 들어 비는 파리를 어쩌지 못하겠더라고 얘기하며 웃으셨다. 그 말씀 끝에 나는 내 얘기를 덧붙였다. 한때는 인정사정없이 파리를 잡았지만 산중으로 내려와 살다 보니 미물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내 산방 터는 원래 파리와 같은 곤충, 벌레들이 살던 곳이었으니 나는 그들의 주거지를 빼앗은 무단침입자일 수도 있었다. 산방을 지은 지 한두 해 동안 나는 모기와 파리는 물론이고 뱀과 지네 등이 출현하여 애를 먹었다. 집개로 지네를 집어 산방 밖으로 보내주는 일은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나는 파리를 퇴치하되 살생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파리채로 살짝 충격을 주면 파리가 기절한다는 것을 알고 살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는 파리와 모기가 방안에서 저절로 사라졌다. 나는 그 이유를 우연히 알았다. 박쥐가 산방의 환기구로 들어와 살면서 파리와 모기를 끼니거리로 삼았던 것이다.

물론 그날 이후 산방에서는 살충제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박쥐와의 동거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박쥐가 밤중에 머리맡에 떨어져 잠을 깬 적도 있었던 것이다. 안사람은 기겁을 했지만 어린 박쥐를 보니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박쥐 등을 만져보니 찹살모찌처럼 감촉이 말랑말랑 부드러웠다.

올해는 겨울잠에서 깬 박쥐가 늦게 돌아온 것 같다. 보름 전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루에 검은 쌀알 같은 박쥐 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박쥐가 돌아와 활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파리에게는 몹시 불운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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