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탄 수교 30주년 기념 특별연재 ④ 둑빠퀸리와 남근숭배

부탄의 가장 큰 축제인 푸나카축제서 남근 형상이 달린 가면을 쓴 ‘아짜라’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새이자 성(城)인 푸나카종을 방문한 후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치미사원(Chimmi Lhakhang)을 가벼운 산책삼아 걸으면 조금은 이색적인 문화를 접하게 된다. 치미사원이 위치한 마을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남성 성기가 그려진 적나라한 벽화를 마주하게 되고, 남성 성기를 조성해 모신 곳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와 약간은 상기된 얼굴의 처녀가 치미사원으로 향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연유로 치미사원을 찾아가는 것일까?

치미사원은 둑빠퀸리 스님(1455~1529)을 기리는 본산으로서 ‘아기 낳는 사원’ ‘생산의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젊은 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치미사원에 모셔진 둑빠퀸리 스님은 부탄 최고의 걸승이자 성스러운 미치광이로 평가된다. 그는 승려이자 시인으로서 수많은 이적과 별명을 남겼으며 ‘용의 전승의 광인’ ‘섹스와 술로 불교를 승화시킨 비밀수행자’ ‘성스러운 미치광이’ ‘인류역사상 가장 기괴한 성자’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둑빠퀸리 스님의 전기문과 성기를 숭배하는 부탄 전역 마을사람들은 이를 야하거나 저속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기 낳는 사원’ 치미사원
금욕 멀리한 둑빠퀸리 기려
악령 쫓는 정기로 받아들여
괴이한 행위에도 고승 추앙

불교의 엘리트산실이었던 라룽사원 출신인 둑빠퀸리 스님은 남들이 보기엔 비정상적인 광기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전수했다. 대부분 여성들에게 그 마음을 전했는데 그의 또 다른 별명이 ‘5천명의 여성의 성인’이다. 당시 부탄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둑빠퀸리 스님과 잠자리를 통해서 성인의 가피를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일반인들이 금욕하지 않은 채 성생활을 즐기면서도 충분히 깨달음에서 멀어지지 않고, 종국에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불교의 개념과 도의적인 관념을 깨는 기괴한 방편으로 불법을 널리 펼친 그를 사람들은 미치광이 괴승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괴승으로 불리는 둑빠퀸리 스님 불화.

둑빠퀸리 스님의 깨달음으로 제도하는 힘 때문에 그의 성기는 ‘활활 타오르는 지혜의 벼락’이라고 불렸다. 높은 도력과 깨달음을 전하려는 스님을 친견하려면 아름다운 여성과 잘 담근 술을 가져와야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이 때문에 치미사원에는 수많은 술통이 있다.

둑빠퀸리 스님은 둑빠까규의 전승인 나로6법 수행을 통해 현교(얀트라)와 밀교(탄트라)를 공부했다. 밀교수행에는 성적에너지를 방편으로 하는 카르마무드라 수행이 있는데 생체 에너지를 이용해 근본을 깨치고 지혜를 보는 수행이다.

〈행복에 관하여〉
나는 자유로운 수행자여서 행복하다네/ 그래서 내면의 행복을 조금씩 키워간다네/ 나는 수많은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지지/ 왜냐하면 그들을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네/ 겉으로는 바보로 살고 내면으로는 맑은 영혼의 세계에서 깨달음을 노닐고 있네/ 겉으로는 술과 여자와 음악을 즐기지만 내면으로는 일체 중생을 위해 정진한다네/ 겉으로는 쾌락을 위해 살지만 내면으로는 이 순간에 모든 것을 다 한다네/ 겉으로는 지저분한 거지이지만 내면으로는 더없이 행복한 부처라네/

시인인 둑빠퀸리 스님은 자신의 시에도 성적인 표현과 깨달음에 대해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술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병 바닥에 있다. 마찬가지로 행복의 가장 절정은 배꼽 아래에 있다.’

이러한 기괴한 행동과 전통불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독특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둑빠퀸리 스님은 부탄에서 깨달은 고승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부탄왕국을 지키는 성인으로도 모셔져 있다. 그의 깨달음을 ‘미친 지혜’라고 부르는데, 밀교수행자들은 신심과 성적 절정감, 선정적인 유머 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그를 방편 삼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

둑빠퀸리 스님은 특히나 부정한 기운과 악한 마귀를 쫓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인 많은 이적 중 전하는 것으로 영적인 힘으로 수천마일을 날아오는 것,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남은 뼈로 다시 살려낸 것, 원한이 있는 악귀를 제압하고 쫓아낸 것 등이 있다.

남근과 용이 함께 그려진 벽화.

스님은 입적하면서 자신의 성기를 잘라서 그 속에 자식을 생산하는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그의 성기모양은 철제 성물에 담겨 스님의 활·화살과 함께 치미사원을 찾는 이들에게 가피를 내려주는데, 특히 아기를 낳지 못한 이들에게 효험이 크다고 전해진다. 스님의 입적 후에도 부탄인들은 둑빠퀸리 스님을 기리기 위해 집 담벼락에 그의 성기가 힘차게 사정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 그림이 여러 부정한 기운을 정화시키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치미사원의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나면 스님이 딱딱하게 굳은 둑빠퀸리 스님의 성기형상을 정수리에 대준다. 사원으로 드는 길목의 치미마을은 둑빠퀸리 스님의 성기를 그린 벽화들로 가득 차 있어 유교적 관념이 강한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민망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마치 강한 정기를 내뿜는 둑빠퀸리 스님의 성기가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깨달은 현자들은 금강승불교권에서 편지를 주고받을 때 편지 말미에 ‘~의 뇐빠’라고 쓰는데 이는 ‘~지역의 늙고 미친 수행자’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출 때 쓰는 관용어다. 이것은 바로 둑빠퀸리 스님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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