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 탄생 100주년 회고전 ‘인사동 라인에 서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현대미술의 거장 장욱진 화백(사진)의 회고전이 8월 27일까지 인사아트센터서 열린다.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가나문화ㆍ장욱진문화재단 주최
유화 및 먹그림 등 100여점 전시
‘진진묘’ ‘팔상도’ 등 불교 작품도
‘배와 고기’ 등 일반에 최초 공개

“다른 화가들은 아내 초상을 많이 그리던데 왜 당신은 안 그리느냐”는 투정 섞인 말에 붓을 잡아들고 일주일을 매달려 아내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아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고행에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입상불(立像佛) 뿐이다. 그림 속 적힌 ‘진진묘’라는 법명을 보고서야 아내는 그 부처의 모습이 자신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그림을 완성한 후 남편이 3개월을 앓아누워서 얼마나 속상했던지, 아직도 ‘진진묘’는 아픈 손가락이다. 장욱진 화백이 불심 깊은 아내이순경 여사를 그린 ‘진진묘’(1970)에 얽힌 일화다. 2014년 10월 경매에서 6억 원에 낙찰된 이 작품은 장 화백이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그림 중 하나다.

진진묘, 33×24.6cm, Oil on canvas, 1970.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장욱진 화백(1917-1990ㆍ사진)의 예술 활동을 조명하는 자리가 열린다. 가나문화재단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장욱진 100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展을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것. 장욱진의 유화 및 먹그림 100여점이 전시되며, 여기에는 ‘진진묘’ ‘팔상도’(1976) 등 불교적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도 포함된다. 특히 미국 소장가가 보내온 ‘나무와 새와 모자’(1973)와 ‘배와 고기’(1960)는 그동안 유족들도 보지 못한 작품으로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장 화백은 박수근ㆍ이중섭 등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까치, 가족, 새, 나무, 마을, 아이 등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동심과 순수함, 선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생전 “나는 심플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고, 그 성향은 작품 속에도 녹아들었다. 새끼를 많이 낳은 돼지, 아침을 깨우는 닭, 우공(牛公)이 오가는 정경이 그것을 대변한다. ‘장엄함’ ‘화려함’ 보다는 ‘편안함’이란 말이 그의 작품에 더 잘 어울리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화가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 덕소 시절(1963-1975), 명륜동 시절(1975~1979), 수안보 시절(1980~1985), 신갈 시절(1986~1990) 총 4시절로 나뉘어 구성된다. 장 화백은 크게 4차례 아틀리에를 옮겨 다니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찾아나갔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도 흥미로운 요소다.

1960년 초 덕소 시절은 6.25전쟁 이후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마티에르 질감을 비교적 강렬히 표현함으로써 이상적이며 평화로운 공간을 묘사하는 등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명륜동 시절에는 더욱 간결하고 선명한 색상을 통해 강한 평면성을 나타내는데 화면의 단순미가 기하학적인 형태와 어우러지며 독특한 재미를 자아낸다.

이후 명륜동 시절의 영향을 받아 담담하고 소담한 표현이 주를 이룬 수안보 시절을 지나, 자유롭고 편안한 선염기법의 화풍이 돋보이는 신갈 시절에 이른다. 이 시기 장 화백은 화면의 도상들을 자유롭게 변화시키고 단순화시킴으로써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정신적 해방감을 고스란히 표출했다.

장욱진 화백의 명륜동 시절 작품 ‘소와 나무’, 33.5×24cm. Oil on canvas, 1978.

장 화백은 경성사범부속초등학교 시절 ‘전일본소학생미전’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에 발을 들였다. 1930년 경성 제2고보에 입학했지만 일본교사의 왜곡된 행동에 항의하다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림 공부를 탐탁지 않게 여긴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수덕사에서 잠시 머물렀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 여류화가 나혜석(1886-1948)을 만나 “좋은 화가가 될 것”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조선일보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 1939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 서양학과에 입학했다.

유학 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취직하기도 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 및 국전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지만 모든 사회적 명성을 뒤로하고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는 비록 일흔 몇 해 이승을 살다 갔지만 그의 예술정신이 우리 현대사회에서 줄곧 높이 평가 받아온 것으로 진정한 인생 백년을 이룩했다”면서 “그의 그림 미덕은 우리의 과거와 살아갈 미래까지 한 번에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한편 이 전시 외에도 장 화백의 탄생 100주년 회고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양주 시립 장욱진미술관서 9월 12일~12월 3일 ‘장욱진 먹그림과 도자-선ㆍ선ㆍ선(線‧禪‧善)’ △양주 시립 장웅진미술관서 8월 27일까지 ‘장욱진과 나무전’ △장욱진 가옥서 11월 26일까지 ‘장욱진 드로잉전’.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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