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주적인 인간

법정 스님을 만나려면 불일암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때 나는 샘터사에서 근무했는데, 스님의 산문집을 편집하면서 불일암을 자주 찾았던 것이다. 회사일로 가는 출장길이었지만, 나는 1박 2일 출가하는 기분으로 서울을 떠나곤 했다. 승용차가 없어서 순천까지는 기차를 탔고 순천에서 송광사까지는 시외버스를 탔다. 또 불일암까지는 걸어서 가는데 땀을 한 줌 흘려야만 했다.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휴가철에는 아내와 두 딸아이를 데리고 불일암을 올라가기도 했다.

입적하신 스님이 그리울 때마다 몇 가지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한 번은 스님께서 국수를 끓이시고 내가 설거지 당번을 했을 때다. 스님께서 삶은 국수를 불일암 우물가로 가져가 찬물에 식히는 순간, 꼬들꼬들해진 국수 몇 가닥이 우물 밖으로 넘쳐흐르는 물에 떨어졌다. 스님께서는 망설이지 않고 ‘신도가 수행 잘하라고 보내준 정재(淨財, 맑은 재물)인데’라며 주워 드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수행자란 상담이나 하는 카운슬러가 아니라 말하지 않으면서 보여주는 분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관광객이 불일암까지 허둥지둥 올라와 스님을 찾았다. 스님과 마주치자 관광객이 “TV에서 본 모습과 똑같습니다. 스님,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자, 스님께서 “고향이요? 화두가 따로 없네. 허허허”하시며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화두가 선어록에만 있지 않고 깨어 있는 수행자에게는 매사가 화두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몇 년 뒤 회사일과 상관없이 스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불일암으로 내려가 하룻밤을 잤다. 불일암 오동나무에 구멍을 파고 사는 호반새가 스님께서 휘파람을 멋들어지게 불자 공중제비를 하는 단옷날 아침이었다. 나는 스님께 삼배를 올렸다. 스님께서는 저잣거리에서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과 함께 계첩을 주시고, 오계를 받는 공덕이 무엇인지 법문을 해주셨다.

오계는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자 내 행동을 바로잡아줄 신호등과 같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해 여름에는 스님께서 진달래 꽃물이 든 분홍빛 한지에 휘호를 써 보내주셨다. 내용은 지금까지 스님께서 내려준 법명의 뜻과 함께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초기불경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었다. 나중에 스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시어 ‘세 구절 속에 팔만대장경의 깊은 뜻이 다 들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자주적인 인간의 푯대 같은 가르침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당당하게, 걸림 없이, 청정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는 임제선사의 참사람(無位眞人)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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