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한경혜씨 두 번째 이야기

성철 스님의 질책과 격려

대학 졸업 후 1만배 원동력

히말라야 트레킹 등 이어나가

 

수 십 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절을 하고 이십대에 만배 백일기도를 세 번이나 한 한경혜씨를 두고 말할 때, 절수행을 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불보살로 이 세상에 온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그러한 혹독한 수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인간에게 얼마나 위대한 힘이 담겨져 있는지를 보이기 위해 부처로 왔다는 것이 나머지 하나이다. 사지가 온전치 않은 뇌성마비의 몸으로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해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천배를 계속되고 있는 예는 세상을 통틀어 그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녀는 천배를 하는 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시간 30분 동안 아무 상념 없이 절을 했다. 거울 같은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도를 한다. 그 기도는 마치 물 위에 저절로 떠오르는 달빛이나 나무그림자 같은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내 몸이 열기로 채워진다. 세포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한편으론 내가 비워지는 것을 동시에 느낀다. 절을 할수록 손과 발, 다리, 배 등 몸 전체가 따뜻해진다. 반대로 머리는 차고 맑은 산 속 공기를 마시듯 매우 청량해짐을 느낀다. 마치 이마 정수리 부분에서 시원한 솔바람이 나오는듯한 기분이다. 땀은 흐르지만 호흡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힘들다기보다는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몸은 따뜻하면서도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싱그러운 시간이며 생기 있는 나를 느끼는 시간이다.”

오랜 시간 무수한 절로 자신을 극복한 사람답게 절수행의 효능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 없는 결과는 없는 법,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혹독한 수련의 시간들이 있었다. 학교생활과 절을 하는 것을 빼놓으면 아무 것도 없는 시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몸에는 익어 가는데, 마음에선 하기 싫다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만날 전전긍긍 절만 하는 생활에 반발이 생긴 것이다. 최소한 친구들이 하는 시험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생각다 못해 성철 큰스님을 찾아갔다. 시험 기간만이라도 오백배로 깎아달라고 부탁을 드려볼 생각이었다. 성철 스님은 어린소녀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주장자로 몇 대 머리를 내리치고는 숙제 하나를 더 보태주었다.

“천 배는 천 배대로 계속하고 시험도 잘 쳐서 성적표도 가지고 오너라.”

그 말씀이 야속해서 법당으로 올라가 하염없이 울었던 소녀는 결국 스물둘,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만배 백일기도를 시작할 때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천배를 했다. 선지식의 단호한 채찍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절을 하는 동안 매일 천배씩 절을 하겠다는 큰스님과 약속이 슬그머니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한 배 한 배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때도, 마음속으로 불안과 시기와 욕심이 들어와 앉으려고 할 때도 있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지 못하고 못난 생각에 점령될 때도 있었다. 세상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이 잡초처럼 자라 날 때도,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진리를 잊고 모두를 귀하게 대하는 마음이 엷어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성철 큰스님의 매섭고 단호한 눈빛이 따뜻한 죽비가 되어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그런데 성철스님의 이러한 죽비는 그녀에게만 내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지리산을 지나는 길에 성철스님의 생가에 지어진 겁외사에 잠깐 들렀더니 올 가을에 시작되는 ‘천배 천일기도’를 알리는 현수막이 일주문에 걸려있었다. 큰스님이 열반하신지 스무 해가 지났어도 일체 중생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하라던 스님의 죽비소리가 여전한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도전장, 만 배 백일기도

그렇게 절을 하며 인생을 바꿔가던 그녀가 만 배 백일기도를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이틀 뒤였다. 15년 동안 절을 하면서 확연히 좋아진 육체적인 변화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늘이 내린 숙명, 전생의 업보를 이번 생에서 생명을 담보로 한 만배 수행으로 당당하게 도전하고 싶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생명을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만 배를 하려면 하루 서너 시간 자는 시간 말고는 절만해야 한다. 극한의 수행이다. 만 배 백일기도를 하고 나면 육체적 껍질이 번데기처럼 벗겨져 나비처럼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수행 첫날의 기록이다.

“좌복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를 굽혀 머리를 낮춘다. 살아오면서 내 몸과 입 그리고 생각들이 무심결에 지은 죄업을 바라본다. 입으로‘예불 대참회문’을 끊임없이 외우며 머리로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또 머리와 몸을 숙여 몸으로 참회한다. 절이 깊어질수록 호흡이 고르게 되고 내 몸이 스스로 리듬을 찾아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마치 등산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일 배씩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산이 있어 산을 오른다는 말처럼 절을 해야 하기에 나는 그저 절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평화롭게 시작한 기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고통으로 변했다. 한 마디로 통증과 인내의 싸움이었다. 차라리 몸을 버리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땀이 눈에 들어가서 눈까지 헤집어놓은 듯 따가웠다. 허리통증, 무릎과 발목관절, 발가락, 발바닥의 통증, 현기증, 두통, 사지통부터 시작해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힘이 하나도 없는 무력증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다. 하루 네끼 먹는 밥도 모래알을 씹는 듯했다. 만 배를 마치고 저녁에 나무등걸처럼 쓰러졌으나 온몸에 땀띠가 나서 도무지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절을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눈이 떠졌다. 이미 절을 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상황에서 또 다른 그녀가 몸을 움직이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기도 중반쯤 들어서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운명에 도전해보려고 시작했으나 체력의 한계와 정신이 무너져 차라리 삶을 멈추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서 약을 털어 넣기도 했던 것이다. 보석 같은 구슬이 사방에서 반짝이기도 했고, 키가 열 척이 넘는 사람들이 목에 칼을 대고 죽이려고 하는 환상을 보기도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의식을 잃기도 했다. 10여일을 앞두고 속옷이 거의 솜사탕처럼 만지기만 해도 툭툭 떨어져나갔다. 많은 고비를 넘기며 첫 번째 백일기도를 마쳤을 때 그녀의 몸무게는 38킬로그램이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첫 번째 백일기도를 끝낸 후 두 달간의 휴식기간을 가진 다음 다시 두 번 째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자신과의 싸움을 백일기도 한번으로 결판낼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윤회를 끝내고 싶다는 소망이 앞섰다. 절을 하다가 죽더라도 좋다는 결심이었다. 고통은 첫 번째 기도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포기하자 마음은 편했다. 날이 갈수록 무덤덤하고 무심해졌다. 숨결만 남은 것 같았다. 어느 날 드디어‘나’라는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며 구경각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음해 1월 다시 세 번째 만배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지난날에 대한 감사와 모든 은혜를 시방의 모든 생명들에게 회향하는 절을 한 것이다. 화두를 잡고 절을 하며 세 번째 기도를 끝낸 그녀는 생명이 다하면 몸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자리만은 영원한 불성으로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번의 만배 백일 수행이라는 긴 고통의 강물을 건너고 난 다음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다.

“절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비틀어지고 흔들거리던 몸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절이 내게 준 것은 육체적인 생명만이 아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해주었고, 세상을 바르게 보게 해주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이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온전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노래하고 나누는 삶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이러한 희망과 행복을 가지게 한 것이 바로 내 몸을 낮추는 절이었다. 절은 나를 낮추기도 하지만 우뚝 서게도 만든 지혜이며 자유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두려움은 없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고 선언한 그녀는 그 후 스물여섯에 15박 16일의 히말라야트레킹에 도전해 성공했다. 절수행으로 인간의 한계에 극복한 힘을 다시 한 번 증명해보인 것이다. 정상에 서서 그녀는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며, 진정한 장애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수행이야기를 담은 〈오체투지〉를 출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그림공부에 몰두해 미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물과 돌의 작가’로 불리며 한국화단의 중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붓으로 물이나 수초를 그릴 때 그들이 가진 내면의 소리를 화면에 잡아내려고 노력한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절을 통해 두두물물이 다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은 그녀가 그린 그림이야말로 현대인들의 불안한 정서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정신적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그녀는 전시회 준비에 한창 바쁘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만나고 싶다는 간단한 문자를 보냈다. 사십대에 이른 그녀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여전히 매일 천배를 한다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절을 하는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전시회 준비 작품을 끝내기 전까지는 어렵겠다는 답신이 왔다. 당당하면서도 겸손함이 담겨있는 짧은 메시지로 아쉬움을 달랬다. 초인적인 절수행을 통해 얻은 집중과 정화의 에너지가 들어있을 그녀의 작품이 진심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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