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후회 없는 개운함으로 살아가자


새벽 2시, 법당에 다녀와 나무침상에 앉아있다. 빗줄기는 거세게 폭포처럼 내리고 있다. 흥건히 몸과 마음이 빗물에 젖어 감기 기운을 키울 것 같다.
방금 끓여놓은 커피 잔에서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며 적당히 행복하게 온 몸으로 파고든다. 마른장마의 긴 목마름이 물 폭탄으로 또 다른 피해를 몰고 올지 모를 일이다.

세상일이란 날씨의 변화처럼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짙은 안개처럼 자욱한 느낌이 없지 않다. 요즘 장맛비는 예전과 다르게 좁은 지역에서도 가뭄과 홍수를 연출하며 손오공처럼 뛰어다니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몸만 늙는 게 아니다. 마음에도 흰 머리카락이 늘어 빈 뜰의 허무감을 키우고 있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날짜를 헤아릴 정도에 이르게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 아름답게 눈물방울로 남을 터이다.

청춘만 아픈 게 아니다. 늙음이 깊어갈 수록 하루가 소중하고 매 순간이 금싸라기처럼 아름답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나누며 비우며 살아간다. 만나는 사람이 모두가 스승이고 착한 벗이 된다. 날마다 철이 들고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떠난 사람은 언제나 더 커 보이고 지난일은 적당히 부끄러워 지우고 싶다. 열손가락을 폈다 오므릴 수 있는 기적이 오늘도 건강하게 허락될 터이다. 살아있음은 그대로 축복이면서 기적이다. 움직일 수 있음은 그대로 오늘의 주인공으로 넉넉한 삶이 보장된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적이다. 움직이는 부처요 발길 닿는 곳이 정토(淨土)이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그리운 얼굴을 추억의 숲에서 꺼내 작설차를 나누고 싶지만 혼자만의 대화는 길게 이어질 수 없어 허무의 그림자로 막을 내린다. 먼저 떠난 도반들의 해맑은 미소가 가슴속에서 몇 송이의 연꽃이 되어 떠다니고 있지만 추억은 아름다운 만큼 아프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빛보다는 어둠 쪽의 그림자가 길게 다가온다. 빛과 어둠이 둘이 아닌 줄은 알고 있지만 팍팍하고 고단한 삶의 지느러미엔 언제나 마른 버짐의 가려움이 남아있다.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지만 늙으면 마무리 작업으로 수레바퀴의 흔적을 가볍게 개운하게 꽃 이파리처럼 아름답게 남기며 살 일이다.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순수하게 속지도 속이지도 않는 진솔함이 넉넉하게 널려 있어야 편안하다.

속임은 불편함을 몰고 오지만 솔직함과 순수는 그대로 행복이 되고 자유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챙기고 모으고 쌓아둔 것들을 양심의 마당에 펼쳐놓고 타작해 보자. 만날 수 있는 알곡은 몇 알 안 되고 수북이 쌓인 검불떼기에서는 찬바람이 가슴 싸한 후회로 남을 터이다.
모질게 억세게 매몰차게 선(線)긋고 편 가르며 땅뺏기 놀이처럼 나를 위해 살아온 삶이 달아난 어금니의 아픔이 되어 짠한 그림자로 남는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집착의 굴레는 마음과 육체의 병으로 남아 노년(老年)의 남은 삶을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터이다.
놓을 줄 알고 비울 줄 알고 버릴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삶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법이다. 늙으면 한걸음이 아닌 서너 걸음 물러나는 지혜를 실천해야한다.

가끔씩 착한 도반을 찾아가거나 찾아오게 해 작설차, 커피향으로 마음을 나누며 덮이며 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간다. 병이 든다. 죽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후회 없는 개운함으로 맑고 밝게 살 일이다.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은 오늘 뿐이다. 오늘의 참 주인공으로 할 일없는 넉넉함으로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살 일이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가 생활의 언어일 수 있게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살 일이다.

장맛비를 내 남은 생에 몇 차례나 만날 수 있을는지. 훅! 불어 꺼져버리는 호롱불처럼, 지는 꽃 이파리를 닮고 싶다. 후회없게, 개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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