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왕의 신통력

금강취(金剛聚)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왕비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칠보로 된 일산이 나타나 태어날 아기 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하와 나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저 보배 일산은 전륜성왕의 징표다. 훌륭한 왕이 될 왕자가 태어나려나봐.”

달이 차서,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몸은 자금색이요, 머리칼은 검푸른 빛이었습니다. 아기 몸에서 광명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틀림없다. 전륜성왕이 될 왕자야. 왕자님 만세다!” 나라의 신하들과 온 백성이 왕자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왕은 먼저, 예언자를 불러 왕자의 앞날을 물어보았습니다. “대왕님. 왕자님은 수미산 남쪽 염부제를 덕으로 덮을 만한 일을 하시겠습니다.”

예언자의 말에 왕과 신하와 온 궁중이 기뻐했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온 국민이, 환호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왕은 온 국민이 기대를 모은 이 왕자를  ‘찰라가리(刹羅伽利)’라 이름지었습니다. 세상을 덕으로 덮는다는 뜻이었지요.

왕자는 자라서 부왕을 뒤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찰라가리 왕은 우선 백성의 형편을 살피기로 하고, 신하를 데리고 나섰습니다. 마을에는 농민들이 논밭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 백성들이 저렇게 땀을 흘리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구나. 저들의 수고를 덜어줄 수는 없을까?’

왕은 손을 모으고, 조용한 목소리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내가 지은 복이 있어서 왕이 된 것이거든, 저 백성들에게 곡식이 넉넉하게 주어져, 땀 흘리지 않게 되소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라 백성의 곡간에 여러 가지 곡식이 그득하게 찼습니다. 왕이 지은 복이라지만 시실은 그 시대의 부처님 도움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부처님이 계셨거든요. 땀 흘리던 백성들이 찰라가리 왕을 향해 “위대한 우리 대왕님 고맙습니다”라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왕은 백성의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집집마다 부인들이 방아를 찧고 있었습니다.     

‘저 부녀자들은 아기 키우고 밥 짓기만 해도 바쁘다. 방아질까지 하는구나. 저들의 방아질 하나만이라도 수고를 덜어줄 수는 없을까?’

왕은 다시 조용히 손을 모았습니다. “내가 지은 복으로 저들의 곡간에 쌓인 곡식이 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쌀이 되어 부녀자들 수고를 덜게 되소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라 백성의 곡간에 그득했던 곡식이 모조리 쌀이 되었습니다. 왕이 지은 복이라지만 시실은 부처님 도움이었습니다. 한 곳을 둘러보았더니 부인들이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저 부녀자들은 아기 키우기만 해도 바쁘다. 저렇게 힘들여 길쌈을 하는구나 길쌈하는 수고를 덜어주자’하고 왕은 다시 조용히 손을 모았습니다. “내가 지은 복으로, 나무에 옷이 열리게 되소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무에 옷이 열렸습니다. 남자 옷이 열리는 나무, 여자 옷이 열리는 나무, 아기 옷이 열리는 나무. 한 가지씩 옷이 열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옷이 열리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부녀자들이 옷 걱정, 바느질 걱정까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한 바퀴 돌아본 왕은 백성들이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즐기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악기가 열리게 했습니다. 거문고가 열리는 나무, 피리가 열리는 나무, 퉁소가 열리는 나무, 여러 가지 악기가 모두 열리는 나무가 있게 했습니다. 찰라가리왕은 신통력을 가진 대단한 임금으로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왕은, 자신이 북을 치는 같은 시간에 온 나라 군사와 궁중 사람들 앞에 맛있는 음식이 나타나게 했습니다. 다른 어느 요리보다 맛있는 궁중 요리였습니다. 금강취 나라 사람들은 좋은 임금님 덕택에 땀 흘리지 않고 음악을 즐기며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범천 나라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금강취 나라, 부왕이 계실 때에 우리 범천 나라에서 하나의 강과 그 일대의 땅을 떼어서 드린 일이 있지요. 이제 부왕이 돌아가셨으니 그 땅을 돌려줬으면 합니다.”

사신의 말이었습니다. “그럼, 범천 나라 대왕과 회담을 가져야겠군요.”   찰라가리왕이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강 복판에 배를 띄워놓고 두 왕이 배 안에서 만났습니다. 양쪽 강둑에 두 나라 군사를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범천 나라 왕은 그만, 찰라가리 왕의 위엄에 눌리고 말았습니다.

‘몸이 자금색이네. 머리칼은 유리처럼 반짝거리네. 눈빛에서 자비심이 보이는 걸….’ 범천왕이 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점심 때가 되자, 찰라가리 왕이 북을 쿵! 울렸습니다. 그러자. 보배 밥상에 가득가득 차린 음식이 그득 나타났습니다.

기가 질린 범천왕은 밥을 먹을 생각을 못하고, 말했습니다. “찰라가리 대왕님, 내 생각을 취소합니다. 하나의 강과 강에 딸린 국토를 돌려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 범천국을 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대왕님은 수미산 남쪽 세계, 염부제를 모두 거느리는 전륜성왕이 되십니다.”

이 말을 마치자 하늘에서 전륜성왕의 징표인 보배바퀴(輪寶)가 나타나 찰라가리 왕 옆에 놓였습니다. 찰라가리왕은 왕 중의 왕인 전륜성왕이 되어 염부제 여러 나라를 가족처럼 돌보게 되었습니다. 전륜성왕 찰라가리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신이었대요.
〈경률이상 24권, 전륜성왕 열전, 개사왕 편〉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