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시가 주는 공덕

功德勝品第十六

有人等以財物施一福田。心不同故得報有種種。有得三有樂者。有得寂滅樂者。有得利他樂者。思願勝故得報不同。以愛心作福者受報時愚闇。悲心修福者受果時得於智慧。不敗壞菩提心饒益生作福者。當知此福福中最勝。其餘修福名相似福非第一福。修一味智慧。當知此福最第一。饒益世間故三寶種不斷。知業知果知歸依佛慈悲。計我行福如行惡者甚可?愧。善丈夫者見人天世間無救。終不己修福。生死中苦尙不可聞。況復眼見。生受身極可患厭。云何我修福作業悲者所不能作。一刹那頃不離悲心生親友。云何我作福。


번역|공덕승품 제16
어떤 사람이 하나의 복전(福田)에 보시함에 마음이 같지 않아 과보 얻음도 가지가지 있으나, 세 가지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 남을 즐겁게 함을 얻고, 생각과 원력의 수승한 과보를 얻되 같지는 않습니다. 애착심으로 복을 짓는 이는 때에 따라 어리석은 과보를 받고, 자비심으로 복을 닦은 이는 때에 따라 지혜의 과보를 받기 때문입니다. 보리심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중생이 이익 되게 복을 짓는 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복이 복 중에 가장 수승하다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복을 닦는다고 하지만 이름과 모습만 복과 비슷하지 제일가는 복은 아닙니다. 한 맛의 지혜를 닦되 이 복이 최고의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익 되도록 하기에 삼보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으며 업을 알고, 과를 알고, 부처님의 자비에 귀의할 줄 압니다. 나를 위해 행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이와 같아 심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선한 대장부는 사람과 하늘과 세상을 봐도 구제될 것이 없어 끝내 자신을 위해 복을 닦지 않습니다. 생사 가운데 고통도 들을 수 없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는 것이겠습니까. 중생의 몸 받는 것을 싫어하되 어찌 나를 위해 복을 닦고 업을 지으면서 자비심을 짓지는 않는지요. 한 찰나 간에도 자비심을 떠나지 않아야 중생의 친구라 할 것이니, 어찌 나를 위해 복을 짓겠습니까.     

해설|이제 불교를 믿는 초심자와 불교 공부를 제법 한 불자의 마음 쓰는 차이를 본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처음 절에 와서 기도를 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기도에 집중하는 게 대부분이다.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는 기도에서부터 대학 입학시험 합격을 기원하고, 취직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란다. 득남을 바라고 가족 건강을 기원한다. 이런 기도가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기도하고 소원을 이루는 것을 주고받는 대가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기도비를 줬으니 스님은 기도를 해주어야 하고, 보시를 하며 부처님께 백팔배를 하거나 천배를 했으니 소원하는 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초심자는 사찰에 발걸음을 끊기도 한다.
이제 불교대학도 다니고 경전도 읽게 되면 기도의 방법이 조금 바뀐다. 기도란 탐욕심에 얽힌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일이 된다. 선한 업을 지어야 선한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도에 얽매여 울고 웃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런데, 제바보살은 여기서 더 나아가 나와 내 가족이 아닌 모든 중생을 향한 자비심 내기를 역설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심에서 성숙한 지혜의 신심으로 거듭나는 길을 간절히 제시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