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일’서 ‘부처님오신날’까지

내년부터 ‘석가탄신일’이 ‘부처님오신날’로 명칭이 변경될 전망이다. 인사혁신처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7월 7일 입법 예고했다. 인사처는 “불교계서 ‘부처님오신날’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 등을 고려해 변경하려 한다”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별다른 이견이 없는 한 인사처는 8월 16일까지 명칭 변경에 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차관·국무회의 등을 거쳐 확정된다. 석가탄신일에서 부처님오신날까지의 과정을 ‘Fact Check Q&A’를 통해 살펴봤다.  〈편집자 주〉

1963년 조계종 공휴일 제정 추진
번번이 거부… 10여 년 ‘제자리’
1975년 용태영 변호사 등 노력에
마침내 ‘석가탄신일’ 공휴일 제정

불교계 ‘부처님오신날’ 변경 요구
“석가는 ‘석가족’을 의미, 안맞아”


부처님오신날의 시작은 어떻게 되는가?
그동안 법적인 정식 명칭은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이었다.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1975년 1월 대통령령에 의해서다. 당시 정부 대변인 이원경 문공부 장관은 1월 14일 국무회의에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 음력 4월 8일 석가탄신일을 관공서 공휴일로 추가제정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제정 이유로는 “1600년 전통을 이어온 불교를 800만 불자로 하여금 경축하고 기념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은 1월 15일 ‘5000만 전 민족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석가탄신일 공휴일 제정을 축하했다.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국가의 명절로 정하여 온 민족이 함께 경축하게 된 것은 1000만 불교도와 5000만 민족의 숙원이 이룩된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우리 국민이 크리스마스로 알고 있는 성탄절의 법적 공식 명칭은 ‘기독탄신일(基督誕辰日)’이다. 기독탄신일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불교보다 20여 년 이른 1949년이다.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과정은?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위한 노력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1963년 1월 조계종은 4월 초파일을 공휴일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문교부에 보내지만, 문교부장관은 “특정 국교가 없는 한국에서 특정종교의 기념일을 공휴일로 제정할 수 없다”는 다소 생뚱맞은 이유의 답변서를 보냈다. 기독탄신일에 대해서는 “세계적 추세”라고 답했다. 이에 조계종은 즉시 반발했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불탄일(佛誕日) 공휴일 제정 추진 범국민 운동’을 전개한다. 

추진위는 공휴일 제정 서명 운동을 펼쳤고, 같은 해 5월까지 30만 명이 서명에 동참하는 성과를 냈다. 연판장은 건의문과 함께 정부에 전달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대응했다. 이후 1960년대는 추진위 차원에서 의견을 모으며, 공휴일 추진을 시작했다.

지지부진하던 추진사업은 1970년대로 넘어서면서 다시 활기를 띤다. 1971년 9월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추진위원회’ 창립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 정치·법조계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추진에 나섰다.

당시 신문 기록들을 보면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위해 발벗고 나선 유력 재가 인사들을 잘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故 유성범 국회의원(1923~ 2008)과 故 용태영 변호사(1929~2010)이다.

1972년 3월 유성범 신민당 국회의원은 서일교 총무처장관을 방문해 “지난 총무처가 공휴일 조정을 위해 여론 조사를 할 때 초파일 공휴일 희망자 수가 많았던 것을 감안해 달라”며 “문교부 통계자료에 의하면 천주교, 기독교 신도수가 319만 명이고 단일 불교 신도수는 490만명에 이른다. 이탈리아에서도 석가·예수 탄일을 모두 공휴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선사 신도였던 용태용 당시 수도변호사회장은 조금 더 도발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1973년 3월 27일 총무처장관을 상대로 ‘석가탄신일공휴권확인’ 청구 소송을 서울 고법에 제기했다.

용 변호사는 소장에서 “기독탄신일인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헌법상 위헌”이라며 “석가탄신일 음력 4월 초파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든지 아니면 기독탄신일인 12월 25일의 공휴일 지정을 취소하라”고 주장했다.

용 변호사의 이 같은 소송 제기에 불자들은 재판장에 몰려가서 승소하기를 응원했지만 11차까지 이어진 심리를 통해 소송은 결국 각하 결정이 난다. 그러나 여론 결집과 다른 소송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판사·검사·변호사·법학자 등 법조계 불교신자들의 모임인 대한불교법조인회는 1974년 4월 2일 총무처장관을 상대로 ‘석가세존탄신일 공휴권 확인 등 청구 소송’을 서울 고법 특별부에 제기한다.

이들은 소장을 통해 “예수 탄신일인 12월 25일은 공휴일로 정하고 있으면서 삼국시대부터 우리 생활과 풍속, 전통, 문화 등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불교의 성일인 4월 초파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이 여론이 결집되고 소송과 청원이 이어지자 정부 역시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1975년 1월 14일 국무회의를 통해 제정하게 된다.


왜 명칭을 ‘석가탄신일’로 했는가?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보자. 정부는 1975년 1월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 제정하면서 기독탄생일을 기독탄신일로 명칭을 변경한다. 그리스도를 음역한 ‘기독(基督)’에 탄생의 높임 표현으로 ‘탄신(誕辰)’을 조합한 것으로, 석가탄신일도 이와 같은 이유로 명칭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에서 ‘석가’와 ‘탄신’을 합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12월 25일 ‘기독탄신일’로 표기하거나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불교계 달력에도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나 ‘성탄절’로 표기된다. 반대로 부처님오신날은 현재 불교계의 바람과는 달리 석가탄신일, 석탄일로 불렸다.


왜 ‘부처님오신날’인가?
우선적으로 ‘석가탄신일’은 말이 안 맞는다. 석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 전 소속됐던 ‘석가족’에서 따온 것으로 부처님을 지칭하기에 맞지 않는다. 여기에 한글화 추세를 감안했을 때에도 석가탄신일보다는 부처님오신날이 어감 상 합당한 표현이다.

이에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이 같은 이유로 “1975년 석가탄신일의 공휴일 지정 이전부터 불교계서 ‘부처님오신날’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공식명칭을 변경해달라”고 지난 2월 관련 부처에 요청한 바 있다.


부처님오신날은 언제부터 사용됐나?
〈불교신문〉과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명칭은 1960년대 공식화됐다. 〈한국세시풍속사전〉은 “부처님오신날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되어 있는 불탄일(佛誕日) 또는 석탄일(釋誕日)을 쉽게 풀이하여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명칭이 범불교적으로 공인된 시기는 1968년으로 보인다. 〈불교신문〉의 지난 2015년 5월 기사에 따르면 “1968년 3월 봉축준비회의에서 공휴일 명칭을 ‘부처님오신날’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한 가지 추가하면,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故 목정배 동국대 명예교수(1937~2014)로 추정된다. 민족사에서 발간한 〈한국불교 100년〉에는 “목정배 교수 회고에 의하면 1963년 초파일 행사를 맞아 자신의 제의에 의해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이 명명됐다”고 기술돼 있다. 실제 기원학사 사진에는 부처님오신날이라는 봉축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글씨는 김인덕 교수가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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