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작가의 스님이야기] 대통령이 법정 스님을 초대한 이유

일러스트 정윤경

어느 해 7월 중순쯤이었다. 갑자기 법정 스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비원은 내가 일하는 샘터사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스님께서 ‘맑고 향기롭게’ 단체를 준비하고 계시는 비원 앞 사무실로 달려갔다. 스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대뜸 비원을 함께 가자고 하셨다. 마침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으므로 우산을 챙겨들고 나섰다. 비원은 입장객이 모아지면 안내자의 인솔을 받아 정해진 코스로 들어갔다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스님과 나는 오전 11시쯤까지 기다리다가 입장했다. 나는 해설하는 인솔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대신 정해주는 시간까지 나오겠다며 부탁했다. 인솔자는 스님을 보더니 허락했다. 스님과 나는 입장객들과 달리 부용지로 가는 길을 걸었다.

“독립기념관 백련지에 연꽃이 없다고 해요. 기독교 신자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 뽑아버렸다는 거예요. 비원 부용지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확인해 보려고 왔어요.”

비가 멎은 듯해서 우산을 접었다. 부용지 가에는 부용정이라는 단아한 정자도 있었다. 아마도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가 부용지의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부용지에도 연꽃은 없었다. 여기도 관리자가 연꽃을 뽑아내 버렸음이 분명했다. 스님은 언짢으신지 표정이 어두웠다. 비원을 나와 스님과 나는 말없이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스님께서는 모 일간지에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발표하셨다. 칼럼 뒷부분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원에는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容)에서 따 온 부용정(芙容亭)과 부용지(芙容池)가 있지만 역시 연꽃은 볼 수 없었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말할 수 없이 심했던 조선왕조 때 심어서 가꾸어 온 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뽑혀 나간 이 연꽃의 수난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꽃에게 물어보라. 꽃이 어떤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 불교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로 드는 것은 어지럽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불교 신자들은 연꽃보다 오히려 백합이나 장미꽃을 더 많이 불전에 공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칼럼이 나간 뒤 스님께서 또 서울에 올라오시어 ‘맑고 향기롭게’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대통령이 공무원을 보내 ‘연못에 다시 연꽃을 심도록 조치했다’고 전하면서 스님을 청와대로 초청하려 했지만 사양했다고 말씀하셨다. 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한 셈이었다. 권력자를 멀리 하고 힘없는 자를 가깝게 하는 이가 수행자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사실이지만 스님은 심지어 조계종 총무원도 피해 다니셨다. 한 번은 부근에 모시고 갈 일이 있었는데 총무원 옆을 지나치시지 않고 멀리 돌아가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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