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상여문화가 없다. 죽은 사람을 옷(사리)으로 말아 장대에 끼워 둘이나 넷이 어깨에 메고 화장터로 간다. 티베트에서는 죽은 사람을 자루에 넣어 소 등에 태워 사찰부근의 천장터로 향한다. 천장터에서 자루 속의 시체는 작두칼에 육신이 나뉘어져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몽골에서는 죽은 사람을 마차에 싣고 달리다 시체가 떨어진 곳에 봉분없이 평장을 한다. 말과 소, 염소들에게 평장한 곳에서 자라난 풀을 보시하는 의미이다.

세속화된 장례문화, 승가에도 만연
생가 복원·기념관이 고승 만드는가

 

중국의 운남성에는 바위절벽에 시체를 둬 바람과 새들에 의해 두개골만 남기게 하는 장례풍습의 소수민족도 있다.
네팔에서는 인도처럼 화장 문화가 앞서가고 있으나 강 주변의 주민들은 시체를 강물 깊은 곳에 수장해 물고기에게 육체를 보시하는 곳이 많다.
인도의 타르사막같은 곳에서는 화장할 나무도 강물도 없어 죽은 사람을 사막의 공동묘지에 옷 입은 그대로 버려두고 떠난다. 시체를 처리하는 생쥐 떼들이 시체의 옷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케멀사파리 중에 누구나 보게 된다.
바라나시의 강가에서는 새벽시간에 어린 아이의 시체를 긴 천에 담아 엄마아빠가 앞 뒤 에서 들고 와 강가에서 간단한 의식을 치룬 후 발가벗긴 죽은 아이를 강물로 던진다. 팔뚝만한 고기떼들이 아기시체에 몰려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몽골의 일부 지방에서는 죽은 시체를 집 앞의 큰 나무에 올려놓아 새와 짐승 낮과 밤의 자연의 변화에 맡기는 곳이 있다.

장자(莊子)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제자와 나눈 대화다. 제자들은 스승의 장례준비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며 석관(石棺)과 옥관(玉棺)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장자가 누운 자세로 제자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은 웬일로 그리 분주하느냐?” 제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위대하신 스승님이 돌아가시면 장례를 후하게 지내는 것이 저희들의 도리라고 생각해 소홀함이 없도록 챙기고 있을 따름입니다.”

장자는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 나의 관(棺)을 삼을 것이며 해와 달로써 무덤의 석등(石燈)을 삼을 것이다. 또한 하늘의 무수한 별로써 상여의 장식을 이룰 것이며 만물은 있는 그대로 제물(祭物)이 마련됨과 다름없으니 한 가지도 부족할게 없다. 이미 내가 내 스스로 장례의 도구를 완비하고 있는데 무엇이 부족해 여기에 더한단 말인가?”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은 관도 없이 그냥 하늘과 땅의 기운에 스승님의 몸을 맡겨두라는 말씀이온데 그리하면 독수리나 솔개 까마귀들이 스승님의 몸에 생체기를 낼까 두려워 석관과 옥관을 이미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죽은 몸을 옥관에 넣고 옥관을 석관에 넣어 독수리나 솔개를 피해 땅속 깊이 묻는다고 치자, 그럴 경우 땅 밑에서 개미나 구더기 등이 죽은 시체를 먹이삼아 득실거릴 터인데 이쪽의 먹이를 저쪽의 먹이로 주려하느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현상계에 집착한 모습이 안쓰럽구나.”

자, 한국 불교계의 고승들은 살아서도 개운한 자유인의 모습에서 흔들리더니 죽어서는 세속화된 장례문화가 뱀의 허물처럼 개운치 못한 모습으로 긴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조의금 접수대가 등급별로 마련되어 있고 3일 장례는 찾기 어렵고 5일 장례가 대세이다. 꽃상여는 상식이요 유교문화인 만장행렬은 필수이다. 살아생전에 진리와 한 몸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49재는 생략해야할 터인데 이 절(寺) 저 절(寺)로 일주일 간격으로 옮겨 다니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라져야할 세태이다.

한 인물의 바른 평가는 사후(死後) 최소한 한 세기는 지나야할 터인데도 고승의 생가(生家)복원에 기념관 짓는 모습이 진정한 고승(高僧)의 뜻인지 묻고 싶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수행자답길, 살피고 또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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