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고승들은 특정 보살을 친견하기를 서원하여 수행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신라 때 자장 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하며, 의상 대사는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 한다. 이는 모두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다. 지극한 신심의 정성에 의한 감응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선화(禪話)에서도 보살친견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문수보살과 나눈 대화가 많다.
무착문희(無着文喜:821~900) 선사는 위앙종 스님으로 앙산혜적(仰山慧寂)의 제자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비구가 된 후 〈사분율〉을 배우고 제방을 편력하다 당 무종의 불교말살을 획책한 회창폐불사태(會昌廢佛沙汰)를 만나 한때 일시적으로 환속하여 살다 다시 절에 들어와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그러던 중 홍주 관음원에 이르러 앙산을 만나 법을 묻고 깨달음을 얻어 그의 법을 이었다.

무착 선사가 오대산을 찾아가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설화다.
〈선문염송설화〉에는 무착 선사가 문수보살과 나눈 대화가 네 칙(則)으로 소개되어 있다. 1436칙에 나오는 대화다. 무착 선사가 문수 보살을 친견하고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나오는 문수 보살의 주처(住處)로 알려진 오대산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으로 화현한 문수 보살을 만났다.
문수 보살이 무착 선사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방에서 옵니다.”
“남방의 불법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말법의 비구가 계율을 지키는 이가 적습니다.”
“대중들은 얼마나 되는가?”
“혹 3백, 홀 5백이 되기도 합니다.”
무착 선사가 되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살고, 용과 뱀이 섞여 지내네.”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 “앞도 삼삼(三三) 뒤도 삼삼(三三)이라네.”
이 말이 후에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란 공안(公案)이 널리 알려졌다.
이 이야기에 이어 다음 1437칙에서는 또 이런 대화가 전개된다. 

문수보살이 유리잔을 들어 무착 선사에게 물었다.
“남방에도 이런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없으면 무엇으로 차를 마시는가?”
무착 선사가 대답을 하지 않고 해가 져서 자자고 하니 문수보살이 말했다.
“그대는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니, 여기서 잘 수 없다.”
“나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대는 계를 받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20년입니다.”
문수 보살이 말했다.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을 몹시 좋아하는 구나.”
그리고 균제동자를 시켜 내쫓으라고 하였다. 무착 선사가 동자에게 물었다.
“아까 화상께서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라 했는데 그게 얼마인가?” 동자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무착 선사가 고개를 돌리자 동자가 물었다.
“그게 얼마입니까?” 그러자 무착 선사가 보니 조화로 된 절에 편액(篇額)이 없어 동자에게 물었다. 
“이 절 이름이 무엇인가?” 동자가 손으로 금강(金剛)신장의 등 뒤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무착 선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조화로 된 절도 자취를 감추었다.

1438칙 1439칙에도 목환자(木子:염주)이야기와 문수(文殊)이야기가 이어져 나온다. 무착 선사가 오대산에 갔다가 어느 날 행랑(廊下)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이 물었다.
“대덕은 어디서 왔소?” “남방에서 왔습니다.” “거기에는 목환자 염주가 나온다고 하는데 가지고 오셨소?” “좋은 것은 없고 거친 것 하나 있습니다.” “내게 좀 보여 주겠소?”
그리하여 무착 선사가 목환자를 주었더니 노인은 이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한 노인을 만나 무착이 물었다. “문수가 아니십니까?” “어찌 두 문수가 있으리오.”
절을 하였더니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능엄경〉에 나오는 문수보살이 문수보살일 뿐 제2문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무착 선사가 문수보살을 만났다? 이것도 ‘무착봉문수(無着逢文殊)’라는 공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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